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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난존자의 일기-2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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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담마의 법칙이 어김없다는 사실을 확인할 분이다.
                                                          &&&&&&&&&&&&&&&&&&&&&&&&&&&&&&&&&&&&&&&&&&&&&&
    그러나 그때 나는 이렇게 담마의 성품으로만 내려놓을 수 없었다.

 사랑과 살아, 존경과존경, 그보다 더한 단어로도 모자랄 만큼 사랑하고 존경했던 형님을 가까이서 모시는 일 외에 어떠한 것도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나에게는 형님의 얼굴을 항상 뵐 수 있는 기회를 얻는 것으로, 모든것이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나에게 '부처님 곁에 지내면서 그 정도로 담마와 멀던가?'라고 말하더라도 받아들일 것이다.
부처님께 집착을 가지므로 나에게 법은 참으로 거리가 먼 것이었다.

    이것을 분명하게 드러내자면 조금은 뒤로 거슬러 가야 할 것이다.
다른 비구들은 이 오온에 무상, 고, 무아의 세 가지 성품을 위빠사나 지혜로 관찰하여서 아라하따 팔라까지 이르렀다.
그들이 얻은 아라하따 팔라를 부처님 앞에 와서 기쁘게 여쭈었다.
그들을 부러워해서 나도 부처님께 담마를 청하였다.


    부처님께서도 이 오온을 기본으로 하여서 무상한 것, 고통스러운 것, 무아의 성품들을 부분부분 자세하게 볼 수  있도록 설하여 주셨다.
이 가르침을 기초 기본으로 삼아서 나중에 나의 아라한 과의 지혜가 성숙해졌다.


    그러나 부처님께서 현존해 계실 때에는 아하한 과의 지혜를 얻지 못했다.
그렇게 얻지 못했던 것은 부처님께서 수행하지 못하도록 막으신 것도 물론 아니다.
그러나 담마가 나의 가슴속에 오래오래 머물지 못했다.
한 번이나 두 번 쯤 생겼다가는 사라졌다.
부처님을 시중들어야지 하는 걱정하는 마음이 담마가 머물지 못하도록 쫒아 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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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까이서 시중들기 때문에 부처님 육신의 늙음의 특징들이 하나 하나 드러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가도 오고, 앉고 서고 하는 것이 느려지는 것을 보면서 가슴이 뜨끔하고 놀라기도 한다.
다른 이 같으면 머리가 희어지고 치아가 빠지며 힘이 없어서 허리가 굽어질 것이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나이로 인해서 늦어지는 것 외에 혐오스러운 부분이라고는 전혀 없었다.
몸으로나 입으로나 모자라는 것을 전혀 없었다.
'늙었지만 늙었다고 말할 수 없다.'라고 하는 말처럼 연세가 많아졌어도 존경스러뭄과 고상하고 거룩하심은 그대로 전신에 흘러 넘쳤다.


    그것은 두 가지 이유가 있어서일 것이다.
첫째, 부처님의 육신은 특별하게 크고 또한 건장하시다.
그래서 사장왕이나 큰 황소에 비유해서 나라시하, 나라뽕가와라고 부르기도 한다.
건강하고 튼튼한 대장부의 공덕을 갖추신 것이다.
대장부 영웅호걸의 기상을 드러내 보여 주신다.


    이 정도로 이 교단이 번성해지는 데 그러한 대장부 상도 또한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다.
부처님 모습만 뵈어도 깊이 존경하고 의지할 수 있는 분인 줄 알아서 여러 종류의 모든 사람들이 의지할 모여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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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로헌 기초 위에 먹고 마시는 것, 행주좌와를 적절하게 균형을 맞추시고 과의 선정에 드시는 것은 또한 도움이 외었다.
그래서 부처님께는 병이 적었다.
자리에 누울 만큼의 병은 없었다.
가끔씩 배탈이 나는 것과 많이 앚았을 때 허리가 당기는 정도였다.

  이러한 상황이라면 일백 세가 되더라도 별다른 병 없이 건장한 모습을 뵐 수 있을 것이다.
나 역시 그때까지 시중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형님의 몸은 나의 바람을 채워주지 않았다.

    '나 자신이 번뇌에서 완전히 벗어남으 ㄹ늦게 받더라도 좋으니 형님의 건강이 좀 더 오래 유지되지이다.'라고 이런 정도로 원하고 바라더라도 나의 바람과는 상관없이 진행되어 갔다.


    암바빨리의 망고나무 동산에서 다시 왤루와나라는 작은 마은에서 우기 안거를 하게 되었다.
이 작은 마을, 작은 초암에서 부처님과 나, 둘이서만 안거를 시작하였다.
그 안거 중 그 작은 초암에서 나는 가슴이 찢어질 만큼 큰일과 부딪치게 되었다.


    형님의 건장한 대장부의 체격을 가진 그 몸에 설사하는 병이 생겨서 점점 야위어 갔다.
모든 피와 살이 모두 설사로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좋다고 생각되는 음식을 모두 올리고, 치료가 될거 같은 좋다는 약은 모두 올렸지만 마치 도랑물에 쏟아 붓는 것과도 같이 됭ㅆ다.

    라가가하를 떠날 때 같이 따르던 대중 스님들은 왜살리 주변의 정사들이 있는 곳으로 안거하였다.
이 왤루와나 작은 마을에는 제대로 된 벽돌로 지은 튼튼한 건물이 없었으며, 모든 비구들이 적당할 만큼의 음식을 얻을 수도 없었다.


    그렇다면 다른 큰 마을이나 도시에까지 왜 보내지 않았는가?
보낼 수 없는 이유가 있다.
그때 그 안거가 마지막 안거가 될 것이라고 나는 아직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나는 공양하는 일과 약에 관한 일로만 마을에 가곤 했다.
가사를 씻을 때만 우물 있는 곳에 갔다.

    그러나 그 짧은 사간에도 나의 마음은 부처님 곁에만 맨돌았다.
다른 일이 없으면 부처님 발처에 앉아서 가사를 깁고는 하였다.
내가 가사를 기울 때는 한쪽 끝을 발로 누르고 탄탄하게 무릎을 받치고서 내 식대로 기웠다.


    스님들의 가사를 마가다국의 들판을 본보기로 해서 깁도록 내가 먼저 준비했었다.
그래서 나는 깁는 일에 취미가 있었다.
그렇게 하다 보니 어느새 능숙하게 되어서 부처님 가사를 기울 때는 나의 지혜 능력껏, 솜씨 능력껏 아름답고 펀안하도록 깁고는 하였다.

    부처님의 가사를 기울 때는 자극한 정성과 존경으로 한쩍 끝을 발로 누르고 갑지 않는다.
다른 한 스님에게 잡게 한다든가, 아니면 사마 한 사람에게 잡고 있도록 한 다음에나, 그도 아니면 한쩍 ㄱㅣ둥에 매어 놓고서 깁고는 하였다.

    그러나 그 안거 중에는 어느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행동을 하였다.
가까이 있는 스님도 없었고, 마을에 가서 사람들의 도움을 받기도 뭣하고, 걸어 놓기 적당한 곳도 없었기 때문에 부처님의 목욕가사를 깁는 동안 한쪽 끝을 발로 누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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