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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난존자의 일기-2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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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리까 왕비를 그리워하는 것은 그의 업이 다해서 죽었다고 스스로를 위안하며 달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번 반둘라 장군과 그 아들들 모두는 제명에 즉은 것이 아니었다.
모함하는 말에 귀를 기울인 대왕 자신이 죽인 것이다.

  자기의 명령으로 그들 모두 한 날, 한 시,  같은 자리에서 죽은 것이다.


    같이 나라를 다스리며, 친형제처럼 어릴 적부터 친하던 오랜 친구에게 허물을 지은 그때부터 꼬살라 국왕은 어떠한 축제도 잔치도 맛을 잃어버렸다.


  어떤 호사도 즐겁지 않았다.

    오랜 세월 살아왔던 왕의 일이, 왕궁이 지겨워져서 바깥으로 여기저기 다녔다.
80이라는 그의 나이를 조금도 생각지 않게 된 것이다.
아직 다른 생으로 건너가기도 전에 잘못을 저지른 벌을 스스로 받고 있던 그를 마지막 만난 것이 우리들 고향 까삘라성에서 였다.


    우리들이 매다루빠라는 마을에 있을 때 부처님을 뵈로 온 것이다.

    그는 나가라까에서 계속하여 왔다고 했다.
꼬살라 대왕의 호위를 맡은 총사령관으로 따라온 이는 디가까라야나였으며, 사까족에서 건너간 와사바카띠야가 낳은 위따뚜바왕자도 나이가 차서 군인들과 같이 따라왔다.
                                            %%%%%%%%%%%%%%%%%%%%%%%%%%%%%%%%%%%
  제따와나 정사에는 부처님 혼자서만 머무시도록 간다꾸띠 건물이 있었다.
그러나 이 마을에는 우리들이 항상 지내던 건물만이 있었다.
그래서 그 가운데 나은 건물을 부처님의 거처로 정하여 드렸다.


    부처님께서 계시는 건물로 들어갈 때 꼬살라 대왕은 왕의 징표인, 몸에 걸치며 지니고 있던 다섯 가지 물건들을 디가니까라야나 총대장에게 맡겼다.

    이렇게 맡기는 것은 까시국과 꼬살라국이라는 큰 나라 둘을 동시에 맡기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왕만이 지닐 수 있는 상징인 끝이 뾰족한 창 모양으로 생긴 칼, 왕관, 하얀 사슴 꼬리털부채, 하얀 일산과 왕이 신는 황금신발은 나라를 다스리는 왕이 가지는 징표가 아닌가?


  꼬살라 대왕은 이런 뜻을 헤아리지 못했는가 보다.
조금이라도 생각했다면 그렇게 쉽게 내어 맡기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가 너무나 존경하는 부처님 앞에 자랑스럽게 또는 교만스러운 상태로 들어가지 않으려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부처님 앞에 그 혼자만이 홀가분하게 들어가서 부처님께 자기의 잘못도 말씀드리고 위안이라도 받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이 다섯 가지 물건이 있는 곳에 대신들과 모든 호위 병사가 머물러 있는 전통이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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