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배너메인배너참  좋은  세상참 좋은 세상

밀레르빠의 십만송 13 마음을 찾는 목동

페이지 정보

본문

이 노래를 들은 부부는 밀레르빠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신심을 지니게 되었다. 그들은 모은 재산을 진리를 위해 바치고 스승의 가르침을 실천하여 삼악도에서 영원히 벗어났다. 그들은 죽어서 깨달음의 대도(大道)로 들어섰고, 점차 불타의 결지로 나아갔다.

이 일이 있은 뒤 스승은 락마에 있는 깨달음의 돌굴로 돌아갔다.
예전의 신도들이 더러 찾아와 봉사하고 예물을 바쳤다. 스승은 이 동굴에 머물며 삼매에 젖어 있었다. 어느 날, 두 명의 목동이 밀레르빠를 찾아왔다. 그중 어린 목동이 여쭈었다.
선생님 선생님에게도 친구가 있나요?
밀레르빠는 대답했다.
그래 나에게도 친구가 있단다.
누구죠?
그의 이름은 보리심(菩提心)이란다.
지금 어딩 있나요?
우주의 씨앗(아뢰아식)이라는 집안에 있지.
그게 어디에 있는 집인가요?
이 육신이 바로 그 집이란다.
그러나 나이든 목동이 말했다.
선생님 저희들은 돌아가는 편이 낫겠어요. 선생님은 저희들에겍 길을 가리켜 줄 수 없잖아요.
그러자 어린 목동은 다시 여쭈었다.
우주 의식은 마음을 뜻하고 육신은 마음의 집을 뜻하는가요?
바로 그렇단다.
소년은 계속 물었다.
선생님 집이라는 것은 한 사람의 소유이지만 그곳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들어갈 수 있으며 언제나 많은 사람이 하나의 집에 살고 있지요. 그렇다면 마찬가지로 하나의 육신에는 오직 하나의 마음만이 살고 있나요. 아니면 수많은 마음들이 살고 있나요? 만약 많은 마음들이 살고 있다면 어떻게 함께 살고 있을까요?
자 이제부터 육신 속에 마음이 하나 살고 있는지 여럿이 살고 있는지는 네가 스스로 찾아보도록 하여라.
선생님 그럼 제가 한번 찾아보겠습니다.
소년은 밀레르빠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다음날 아침 어린 목동이 밀레르빠에게 찾아와서 말씀드렸다.
선생님 제가 어젯밤에 밤늦도록 마음을 이리저리 살펴보았더니 마음은 아나뿐이잖아요. 그 마음은 없애려 하여도 없어지지 않고 죽이려 하여도 죽일 수 없고, 붙잡으려 하여도 잡히지 않고 눌러두려하여도 눌러둘 수가 없었어요. 머물게 하려 해도 가만히 있지 않고 도망가게 버려둬도 달아나지 않고 모아두려 하여도 묶여 있지 않았어요. 보려고 하여도 보이지 않고 알려고 하여도 알 수가 없었어요. 그것이 있은 것이라면 버릴 수도 있을 텐데 항상 움직이고 있었어요. 그것은 깨어 있고 살아 있는 것이지만 이해할 순 없어요. 마음이 어떤 것인지는 도무지 말로 설명하기 어려워요. 선생님 부디 마음이 무엇인지 설명해 주세요.
밀레르빠는 소년을 위해 노래하였다.

양치는 목동아, 나의 노래 들으렴,
아무리 설탕에 관해 이야기를 들어도
단맛을 체험할 수는 없는 법.

달콤한 맛이 어떻다고 마음으로 알지라도
혀 끝에 닿아야만 체험하듯이
마음의 본성 또한 온전히 알기 어렵네.
하지만 스승이 곧바로 가리켜주면
어뜻 볼 수는 있다네.

하나 이렇게 언뜻 보지 않더라도
마음의 본성을 찾고 또 찾으면
마침내 온전히 알게 되나니
사랑하는 목동아
내 마음 지켜보려무나.

소년은 말씀드렸다.
선생님 그렇다면 저에게 마음의 본성을 곧바로 알게 해주는 가르침을 주세요. 그러면 오늘밤 집에 가서 곰곰이 생각해 보고 내일 아침에 그 결과를 말씀드릴께요.
밀레르빠는 소년에게 말했다.
그래 그렇게 하도록 하자 네가 돌아가거든 마음의 색깔이 어떤지 알아보아라. 만약 하얀 색깔인지. 빨간 색깔인지. 아니면 다른 무슨 색깔인지? 그리고 마음의 모양이 어떤지도 알ㅇ아보아라. 길쭉한가 둥근지 아니면 다른 모양인지? 그리고 또 그것이 너의 몸속 어느 구석에 숨어 있는지도 알아보아라.
이튼날 아침, 해가 산머리에 떠오를 때 목동은 양떼를 몰고 동굴로 찾아왔다. 밀레르빠는 목동에게 물었다.
마음이 어떤 것인지 알아보았느냐?
소년은 대답했다.
예. 알아봤어요.
어떻게 생겼더냐?
마음은 색깔도 없고 모양도 없어요. 맑은 것도 같고, 투명한 것도 같고 움직이는 것도 같으나 예측할 수도 없고, 잡을 수도 없어요. 마음이란 것이 눈과 관련을 맺으면 볼 수 있고, 귀와 관련을 맺으면 들을 수 있고, 코와 관련을 맺으면 냄새를 맡을 수 있고, 혀와 관련을 맺으면 맛을 볼 nt 있고 말할 수 있으며, 발과 관련을 맺으면 걸어 다닐 수가 있어요. 몸이 난절부절못하면 마음도 또한 초조해져요. 몸이 건강할 때는 마음이 몸을 다스리지요. 하지만 몸이 늙고 병들어 죽게 되면 마음은 아무런 미련도 없이 그걸 던져 버려요. 마치 밑을 닦은 더러운 것을 집어던져 버리듯이 마음은 매우 실질적이고 융통성이 잉ㅆ어요. 그러나 몸은 고분고분하게 조용히 있질 않고 자꾸만 마음을 괴롭혀요. 아파서 못 견딜 정도로 마음을 괴롭히기도 해요. 밤에 잠이 들면 마은은 도망가 버려요. 하지만 꿈을 꾸면 마음은 또 열심히 활동해요. 모든 고통은 바로 이 마음에 원인이 있다는 걸 알았어요.
그러자 밀레르빠는 소년에게 노래를 불려주었다.

양치는 목동아
귀담아 들으렴

몸은 의식과 무의식 사이에 있고,
마음은 몸의 결정적인 요소라네.
악도(惡道)에서 고통 받는 사람들은
윤회 세계의 죄수
마음이야말로 윤회 세계 벗어나는 열쇠라네.

소년아, 저 언던(彼岸) 가고 싶으냐?
소년아, 해탈의 행복한 도시에 살고 싶으냐?
소년아, 원한다면 그 길을 보여주리라
거기 가는 길 내 가르쳐주리라.

노래를 듣고 목동은 외쳤다.
그렇고 말고요. 선생님, 저는 이미 마음의 길을 찾으려고 결심했어요.
밀레르빠는 소년에게 물었다.
소년아, 네 이름은 무엇이지?
쌍계깝이에요.
나이는?
열여섯 살이에요.
이에 스승은 삼귀의(三歸依)의 가르침을 전해주면서 그 뜻과 중요성을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소년에게 당부하였다.
집에 돌아가거든 오늘밤 이 삼귀의를 계속 염송하고 귀의하는 것은 무엇인지, 마음인지 몸인지 알아보고 내일 다시 와서 알려주도록 하여라.
다음날 아침 목동은 다시 찾아와서 말씀드렸다.
선생님 어젯밤에 저는 귀의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보았어요. 그런데 몸도 마음도 아니었어요. 몸을 관찰하면 머리에서 발가락까지 각각 기관이 있고 이름이 있지요. 이 전체가 몸인데 이것이 돌아가 의지할까요? 그럴 순 없어요. 왜냐하면 마음이 떠나버리면 몸은 죽어버리잖아요. 몸이 죽어버리면 시체가 되는데, 시체가 어떻게 돌아가 의지하겠어요? 게다가 ㅅ;체는썩으면 없어져 버리니 몸은 결코 부처님에게 돌아가 의지할 수가 없어요.

 그렇다면 마음이 돌아가 의지한단 말인가. 하고 곰곰이 생각해 봤어요. 그런데 마음 또한 돌아가 의지할 수 없어요. 마음은 단지 마음일 뿐이에요. 지금의 마음이 있으면 나중에 일어나는 마음이 있거든요. 그래서 마음이 두 개가 되어요. 현재의 마음과 미래의 마음이 실제로 돌아가 의지함이 있다면 이 마음은 고정되고 변하지 않는 것이어야 하겠지요. 그래서 육도(六道) 세계를 윤회해 오면서 과거나 미래의 무수한 생(生)들에 대한 기억이 남아 있어야 할 거에요. 그런데 저에게는 그런 기억이 없거든요. 저는 과거의 생을 기억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미래 생 또한 어떻게 될지 몰라요. 작년의 마음과 어제의 마음은 이미 지나가 버렸고 내일의 마음은 아직 오지 않았고 현재의 마음은 변하고 있어 가만 있질 않아요.
선생님 저에게 설명해 주세요. 저는 선생님에 게 순종할 뿐이에요. 선생님은 저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계시잖아요. 선생님은 모든걸 알고 계시잖아요.
소년의 질문에 응하여 밀래르빠는 노래하였다.

무아(無我)의 진리 체현한 스승에게
몸과 말과 뜻은 온전히 바칩니다.
나와 내 제자들을 축복하소서.
무아의 진리를 깨달을 수 있도록 하소서!
자비를 베푸시어 자아에의 집착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사랑하는 목동아, 귀담아 들으렴.
나(個我)에 대한 집착은
의식의 성향일지라도
이 의식 자체를 가만히 살폅아라.
나라는 것이 어디 있느냐. 마무 것도 없지 안느냐!
마하무드라의 가르침을 행하여
그 어떤 실체도 없음을 보게 되면
그제서야 새로운 눈 뜨게 된단다.
마하무드라의 가르침을 행하려면
큰 신심과 겸손, 진리에의 열망으로
기초를 세워야 하리.

인과응보의 진리를 수행길로 삼고
스승에게의지하여 입문하고
은밀한 가르침과 교의를 수행하면
마침내 대완성을 설취한단다.

가르침을 받으려는 제자는
선한 공덕 쌓아야 하고
고통과 불편을 감수해야 하고
죽음에 대적하는 불굴의 용기 지녀야 한단다.

사랑한ㄴ 목동아. 너는 할 수 있느냐?
있다면 행운의 아들이요.
없다면 더 이상 말하지 않아야 하리라.
스스로에 물어 보고 깊이 생각해 보아라.

간밤에 너는
나라는 것을 찾았지만 찾지 못했나니
이것이 바로 개아(個我)의 나 없음의 수행이란다.
만약 뭇존재가 텅비어 있음(法無我)을 알려거든
내가 보여주는 길을 따라 12년을 명상하렴
그때가 되어서야 마음의 본질을 알게 되리니
소년아. 이를 깊이 생각해 보아라.


참고)
1.  삼귀의(三歸依): 1. 지혜와 복덕을 갖춘 부처님께 돌아가 의지합니다. 2. 탐욕을 떠난 진리에 돌아가 의지합니다.. 3. 모든 무리 가운데 존귀한 수행승가에 돌아가 의지합니다.

돌아가 의지해야할 대상이 있다면 돌아가 의지해야할 주체도 있을 것이다. 그 주체가 무엇인지 에 대한 목동의 탐색이 진지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2. 선한 공덕 쌓아야 하고: 진리를 수용할 훌륭한 그릇이 먼저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지나온 생애에 보시와 같은 선행을 얼마나 쌓아왔느냐는 이생에 훌륭한 스승과 진리를 만날 수 있는 관건이 된다.
3. 나 없음: 무아(無我). 중생들이 헛되이 집착하고 고집하는 에고로서의 나는 실재하지 않는다. 즉 공한 것이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월간베스트

설문조사

전 국민에게 주는 정해진 금액의 기본소득제를 실시해야 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