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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난존자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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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한 여자가 가는 곳






  세간의 거친 파도에서 행복의 섬으로 올라왔던 기싸 고따미 비구니는 누더기 가사를 입는 것에 있어 첫째가는 사람이라는 특별한 칭호를 얻었다.

  그분처럼 험한 파도를 지나온 다음 게율을  잘 간직하는것에 있어 첫째가는 사람의 칭호를 받은 분이 계시다.
나와 몸과 마음을 같이하쳐 교단에 들어왔돈 우빨리 존자님처럼 이분깨서도 계율에 관해서 아주 능숙하게 잘 아시는 분이다.

    부처님께서 계율에 관해 자세하고도 능숙하게 잘 아는 이 비구니를 특별한 칭호로써 칭찬해 주셨다.
이렇게 부처님께서 금구로 칭찬해 주심을 받았기 때문에 그 비구니의 이름은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교단과 함께 사방으로 이름이 퍼지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 칭호를 줄 때 큰 축하잔치를 벌이고 이름을 준 것은 아니다.
자기 스스로 마음 내키는 대로 골라서 부르게 된 이름도 역시 아니다.
사와띠 수도의 남자들이 우스개로 놀리느라고 지어준 이름이며, 성안의 여자들이 얼굴을 돌리고 코를 찡그리며 불러왔던 이름이다.

  그러나 그때의 상황으로서는 그 이름이 딱 들어맞는 형편이었다.
그 이름으로 유명해져서 아는 사람들이 많았던 불행한 여자가 어느 날 정사로 왔다.
그녀가 왔을 때는 법회가 진행되는 중이어서 상가 대중고 재가 대중, 많은 이들이 같이 모여 있을 때였다.
그러한 때에 보기에 적당치 못한 모습으로 나타난 불행한 여자를 대중들이 막았다.
욕하고 야단치며 돌아가라고 했다.

  그렇게 하여도 듣지 않자 모두들 고개글 돌리고 말았다.
얼굴을 찡그리는 이들도 많았다.
의지할 곳 없던 그녀가, 그때 법문 듣는 대중들을 당황하게 하였던 그녀가 지금은 교단 안의 반짝이는 큰 별로 빛나고 있다.
    그래서 그분이 법문 하신 차례가 되었을 때 법회장 가득 대중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지금이 그분의 법문 시간이다.
                                                                    &&&&&&&&&&&&&&&&&&&&&&&&&&&&&&&&&&
    '잘 오신 여러분들, 이 교단의 공덕과 은혜를 드러내는 곳에 저의 인생 여정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조용하고 평화로워서 일체의 위험이 없는 이곳의 공덕을 나타내려면 뜨겁고 번뇌가 많고 위험이 믾은 곳과 비교하면서 보여드려야 할 것입니다.
  지금은 사왓띠 수도에 친척들이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도시  큰 장자의 집에서 태어났습니다.
저는 남동생과 단 두 남매였습니다.
부모님은 저희들이 원하는 것을 모두 갖추어 주었습니다.
입은 옷, 치장한는 보석들 등 필요한 것들은 모두 말 한 마디로 가질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평화롭고 마냥 행복했던 인생의 여정이 중간 부분에 이르자 뜨겁고 심한 고통들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고통의 원인은 갈망과 탐착, 좋아하는 집착 때문이었습니다.
  부모님께서 정해 놓은 남편은 저의 집안과 같은 수준의 장자의 아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저에게는 아무도 몰래 비밀리에 좋아하는 이가 있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공교롭게도 우리 집안의 거친 일을 모두 해 주는 하인이었습니다.
  부모님들은 저를 너무 아뼈서 사람들과 못 만나게 높은 누각 위에서만 지내게 했습니다.
혹시 나쁜 사람들이 딸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엉뚱한 생각을 낼까봐 금지옥엽처럼 키웠습니다.
  제가 만나는 남자라고는 심부름하는 하인뿐이었습니다.
오직 한 사람과 한 사람, 젊은 남녀가 가까이 지내면서 불이 붙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사실을 부모님들이 알까봐 언제나 가슴을 조려야만 했습니다.
말씀드리든지 말씀드리지 않든지 결국은 부모님께서 아실 것입니다.
저는 앞날을 두려워하지 않았지만 제가 좋아하는 그이는 글허지 못했습니다.
목숨이 경각에 달린 살어음판을 딛고 서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집에서 부리는 하인은 자기 물건처럼 할 수 있는 주인들이 그들의 권한을 모두 쓸 것은 틀림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사실을 조금만 살펴보면 문제가 어디서 시작도었는지 쉽게 알게 되고 그러면 헤어져야 할 것이 분명할 터였으나, 탐착하는
갈망의 마음은 그렇게 하고 싶지 않은 쪽으로 일을 만들어 갔습니다.

  좋아하는 사람과 같이 있고 싶은 마음이 들기 전에는 걸릴 것도 없고 뜨겁게 번뇌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뜨거울 것도 걸릴 것도 없는 혼자의 몸으로 자유롭게 사는 것이 편안하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입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것만이 행복한 것이라고 집착했습니다.
사랑하는 이와 함께 하고 싶은 것이 바로 고통의 원인이었습니다.
오직 함께하겠다는 갈망 하나만을 재산으로 안고서, 그허한 고통의 원인을 기본으로 깔고서 저희 두 사람은 떠나갔습니다.
                                            &&&&&&&&&&&&&&&&&&&&&&&&&
  무모님들의 힘이 미치지 않는 곳, 조그만 숲 속에 작은 움막 하나를 짓고서 살았습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길을 선택해야 스스로 갔기 때문에 세간으 모든 힘든 법칙들을 만날 때도 참아야 했습니다.
가난한 고통이 무엇인지 모르던 제가 오직 한 사람의 얼굴만을 바라고보 그 많은 고통을 참아냈습니다.
실은 고통이 아니고 행복이라고 우기면서 말입니다.
  앞에 말씀드렸던 대로 고통의 원인을 기초로 하여 만들어졌던 그 사실은 고통 그대로일 뿐이었습니다.
원인을 만들었으므로 그 결과를 어떠한 길로도 비켜 갈 수 없었습니다.
그 잠깐의 탐닉으로 고통의 순간을 잊었던 것입니다.
옆눈으로 보아서 잠깐은 행복을 얻은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진실한 법칙은 어떤 길로도 거부할 수 없었습니다.
그의 원인이 되는 것의 결과 즉, 고통을 절절히 받아야 했습니다.
전에는 사랑하는 이와 헤어지고 싶지 않아서 난생 처음으로 부모님 곁에서 떠나왔습니다.
지금은 사람하는 이와 함한 결과로 부모님 계신 곳으로 돌아가고 싶었습니다.

    먹는 것, 입는 것, 불편한 집 등, 모든 고통은 그런대로 참을 수 있었지만, 지금 여자들의 천성 한 가지를 그냥 참고 넘어갈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부모님 곁에서 첫 아이를 낳고 싶은 것이었습니다.

  결과를 모르는 어리석은 딸이라고 부모님께소 얼굴을 돌리실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당신들이 젖을 먹여 기른 이 딸이 엄청나게 큰 고통을 당하는 것을 그들이 그대로 보고만 있지 아니할 것이라는 생각에 매달렸습니다.

  다음 한 가지는 제가 직접 뱃속에 아이를 갖게 되자 부모님을 뵙고 싶은 생각이 너무나 간절했습니다.
뱃속의 아이가 점점 자라서 낳을 때가 가까워지자 그 사실을 남편에게 이야기 했습니다.
부모님 계신 곳으로 데려다 달라고 졸랐습니다.

  저를 위해서 좋아하는 것은 무엇이든 해 주던 그였지만 그 일 한 가지는 금방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달이 가고 날이 가고 시간이 흘러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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