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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난존자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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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태도를 보신 부처님께서는 참회하기 전에 이미 만족해 하셨다.
그보다 더욱 만족스러운 것을 내가 직접 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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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가지 도와 네 가지 과의 가장 높은 지혜를 얻은 케마 왕비는 온갖 보배 장식을 완전히 갖춘 모습으로 상가 대중 안에 포함 되었다.
이렇게 가장 높은 지혜에 이른 사람들은 속마음의 지혜에 어울리게 가사를 입어야만 세상에 살면서 이익을 줄 수 있다.
  가사를 입지 아니하면 그가 가진 그 특별한 진리의 힘으로, 담마의 높은 힘으로 일주일 이상 이 세상에 머물 수 없다.
그래서 케마 왕비는 절 창건주에게 허락을 받기 위해 왕궁으로 돌아갔다.
전과는 다른 특별한 태도를 보고 절 창건주는 자기의 왕좌에서 내려왔다.
  케마 왕비를 맞이하는 그는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표정이 되었다.
그 전에 아름다움을 좋아하는 케마 왕비는 이 왕궁 안에서 그녀 마음대로 치장하고 단장하고 아름답게 꾸미면서 살았다.
그러나 지금은 이 왕궁을 찾은 손님처럼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걸어왔다.
  ''대왕이시여!
  세간의 풍습대로 주인이셨던 대왕께서 허락하시면 제가 부처님 교단에 들어가서 수행자가 되고 싶습니다.''
  아름다움에 힘입어쇼ㅓ 어린애처럼 졸라왔던 남편에게조차 서먹하게 모르는 사람 부르듯이 불렀다.
결혼한 여자들은 남자들처럼 부모 두 분 허락만으로 충분치 못하여서 남편의 허락을 받아야만 수행자가 되도록 허락하였다.
빔비사라 대왕이 얻었던 그 몸을 교단에 쓰도록 허락을 원하고 있는 것이다.
    땅이 기름지고 물이 넉넉한 곳에서 부모님 두 분의 지극한 보살핌으로 자란 케마 왕비는 원래 아름답고 예뻤다.
아름다움을 좋아해서 잘 단장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녀의 소문은 더욱 널리 퍼졌다.
그러나 이전의 아름다움은 몸의 아름다움뿐이었다.

    교만심을 섬겨오던 아름다움, 깨끗한 높은 자비와 사랑으로 좋아하는 마음보다 갈망과 욕망을 먼저 부르는 아름다움이 있었다.
 지금의 아름다움은 공손하고 예의바르다.
부처님께서 가르쳐 주신 아름답지 않은 것을 관하는 수행 덕분으로 케마 왕비의 아름다움은 갈애를 동반하지 않는 자비심을 받아 들이고 있었다.

    그 나라의 대왕이신 절 창건주는 넓고 큰 마가다국 모든 백성들의 죽고 사는 일들을 날마다 결정해 왔다.
그러나 그 일은 나라의 일, 나라를 다스리는 왕들마다 비킬 수 없이 해야 하는 책임일 뿐이었다.
    ㅈㅣ금 케마 왕비가 여쭙는 이 일은 나라의 일이 아니라 자기의 일이다.
자기 개인의 일이기는 하지만 보통 일이 아니다 마음속 가슴속, 심장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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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단의 가름침의 지혜, 가르침의 안목을 얻었던 제자 한 사람에 맞게 그는 교단을 시봉하기를 원했다.
그가 해야 하는 일을 가장  사랑하는 왕비 케마도 따라 하기를 원했다.

  그러한 소원으로 사람들 몰래 준비하여서 부처님을 꺼리던 케마왕비가 그분 앞에 갔다.
그렇게 그분 앞에 가서는 그 전의 태도를 바꾸어서 가르침을 펴는 교단 안의 한 사람이 되기를 희망했다.
  그의 소원대로 케마 왕비는 가르침을 펴는 쳐자가 되었다.
그러나 그와 함께 손잡고 가르침을 펴려는 것이 아니라 사랑했던 남편의 손조차 떨쳐 버리고 그 혼자서 가르침을 펴겠다고 한다.
  대왕은 애착의 줄 사이에서 교단의 이익을 위하고 싶었다.
케마왕비는 애착의 줄을 하나고 붙이지 않고 훌훌 떨치고 나서 가르침을 펴고 싶어한다.

  한 순간의 침묵이 지나고 역시 큰 나라의 대왕답게 결정을 내렸다.
나라의 왕관을 손에 잡은 대왕이 교단의 영웅, 이 여자에게 두손 모아 합장을 올렸다.
  ''오!  케마여!  제가 만족하게 허락하겠습니다.
  케마의 수행자가 되는 일을 구족하게 준비하겠습니다.''
  주인의 입장에서 바뀌어 네 가지 물건을 후원하는 신도의 처지에서 공손하게 여쭈었던 것이다.
나라의 크고 작은 모든 일을 완전하고 올바르게 결정해 왔던 빔비사라 대왕이 자기 자신의 마음속의 일도 바르게 결절하였다.
  이 결정으로 가장 사랑하고 아끼던 왕비 케마를 황금으로 만든 가마에 태워서 장안의 큰길을 돌면서 축하를 한 다음 비구니가 머무는 절로 보내드렸다.
비구니 대중의 계단에 들어가서 계를 받고 다시 비구 상가에 가서 계를 허락 받았다.
비구니가 되는 의식은 이렇게 두 번 치루어야 한다.
영웅 같은 마음으로 교단에 들어왔던 케마 비구니를 칭찬함과 동시에 자기 개인의 일보다 부처님 얼굴에 더 비중을 두는 빔비사라 대왕에게 우리 모두가 '선재라, 착하도다.'라고 칭찬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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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용한 곳에 머무시는 것을 즐겨하심은 부처님의 전통이다.
그러나 왤루와나 동산에서는 좋아하시던 픙습을 잠시 버리셨다.
이전에는 이렇게 버리신 적이 없었다.
  부처님께서 기다리셨던 비구니 중에 지혜 제일 제자가 오늘 교단에 들어오자 사람들이 많이 드나드는 그 동산에서 여행을 떠나시었다.
이렇게 시끄러운 왤루와나를 떠나신 것은 다른 계획이 있으시기 때문일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앞에 가시면 우리 상가 대중 역시 차례로 따라간다.
그때는 우리 교단의 누이들도 계속 따라왔다.
버리기 어려운 것을 힘들게 버렸던 빔비사라 대왕은 지내기가 홀가분해졌을 것이다.
  보기만 하고 얻지 못하는 업의 고통에서 벗어날 기회를 얻었을 것이다.
보지 못하면 더욱 그리워지는 것도 당연하다.
사람이 있으면 그리움도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어찌 되었든지 모든 중생들의 이익을 위해서 부처님께서 여행을 떠나신 것이다.
가는 곳마다 법의 감로수를 내리시면서 제따와나 정사에 도착했다.
제따와나에서는 왤루와나 같은 것을 만나지 않았기 때문에 오래 지낼 수 있었다.
케마 비구니도 라자가하에서 떠나올 때 우리들과 함께였다.
  그러나 제따와나까지 따라 오지 않았다.
사와씨와 사깨따 도시 사이에 있는 또라나와투 마을에서 비구니들과 같이 안거하였다.
숲 속 시골 마을에 안거하여 지내더라도 비구니 케마의 공덕에 대한 소문이 제따와나까지 들려왔다.
  향기로운 그녀의 소문은 케마 비구니의 아름다운 몸에 관해서가 아니라 터럭 끝을 갈라내는 날카로운 칼날처럼 예리한 지혜에 관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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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라를 들러보던 꼬살라 대왕이 사깨따 도시와 사왓띠 수도를 떠났을 때 또라나오투 마을에서 하루 저녁을 머물게 되었다.
그날 저녁, 케마 비구니를 만나고 법에 관한 것을 의논한 다음 부처님께 왔다.
조심스럽게 머리 숙여 절한 다음 꼬살라 대왕은 이렇게 여쭈었다.
  ''부처님!  중생들이 죽은 다음 무엇 한 가지가 됩니까?''
  ''대황이시여, 이 문제를 나 붓다가 대답하기를 원치 않습니다.''
  여쭈어 온 문제를 부처님께서 즉각 거절하셨다.
그러자 거절한 문제를 다시 다른 쪽에서 여쭈었다.
  ''그러면 중생이 죽은 다음 무엇 한 가지가 되지 않습니까?''
  ''대왕이시여!  나 붓다가 대답하기를 원치 않습니다.''
  그래도 거절하셨다.
그러나 빠세나디 꼬살라 대왕은 포기하지 않은 채 끝까지 다시 물었다.
  ''무처님!  중생들이 죽은 다음 생기는 것도 아니고 안 생기는 것도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까?''
  ''대왕이시여, 이 문제를 나 여래가 대답하기를 원치 않습니다.''
                                                          &&&&&&&&&&&&&&&&&&&&&&&&&&&&&&&&&&&&
  마가다, 꼬살라 , 왓시싸또, 나라마다 부처님의 가르침이 잘 전해져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다른 사상을 가지고 있는 이들도 나라마다 도시마다 퍼져 있다.
그 다른 사상을 가진 자기 무리끼리는 스스로를 부처님이라고 하고 있다.
그들 지역에서는 이 문제들을 중요하게 생각하였다.
  견해가 같은 이들끼리, 사살이 다른 이들끼리 이 문제를 묻고 대답하고 의논했다.
그러나 완전한 대답을 얻지 못해서 질문만이 돌고 돌았다.
  사상가들 사이에서 일상적인 것이 되어 버린 이 문제가 지금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다.
이 질문의 밑바닥은 중생들이 생애를 건너가는 것이다.
  부처님, 높으신 그분의 가르침 안에는 중생이라는 것이 없다.
원인이 합쳐져서 생겨나는 결과의 연결만이 있다.
다른 쪽으로 말하자면 사람, 중생, 나, 너란 것은 없을 뿐이고 법, 성품 자체만이 있다.

  이렇게 너도 나도 아닌 무아성품만을 설하셨던 부처님께서 기본을둔 문제를 어떻게 대답해야 하겠는가?
대답해서 될 수 없는 문제는 대답하지 않는 것만이 가장 좋은 대답이다.
성인들의 지혜로 조용히 대답하신 것을 성인의 지혜가 셩숙되지 않은 꼬살라 대왕은 만족하지 못하여 다시 여쭙는 것이었다.
  ''부처님!  이 문제에 대답하기를 원치 않으신다고 무엇 때문에 말씀하셨습니까?''
  ''좋습니다.  대왕이시여, 이 대답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비유를 들어서 대왕에게 다시 물어야겠습니다.
이 질문을 대왕당신이 느끼는 대로 대답하시오.
꼬살라 대왕께선 갠지스 강에 있는 모래를 이 정도, 이 만큼이라고 숫자로 셀 수 있겠습니까?''
  ''셀 수 없습니다.  부처님!''
  ''그러면 큰 바다에 있는 물을 됫박으로 어느 정도, 어느 만큼이라고 잴 수 있습니까?''
  ''없습니다.  부처님!''
  ''대왕이시여, 어째서 잴 수 없습니까?''
  ''부처님!  큰 바다는 재어서 비유할 수 없을 만큼 넓고도 넓습니다.
어떤 중생들이라도 그들의 지혜로 의지하고 기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잴 수 없습니다.''
  ''대왕이시여, 나 붓다도 이 비유와 같습니다.  중생이라고 부를뿐인 이 오온을 나의 것이라고 하는 집착을 나 여래가 모두 빼어버렸습니다.
뿌리를 잘라버렸습니다.
그루터기조차 남기지 않고 뽑아버린 것처럼, 없는 것 같이 말끔하게 하였습니다.
다음에 다시 생기지 않도록 하였습니다.
  대왕이시여!
이 오온에 중생이라고 부르는 것에서 벗어난 나 여래의 지혜는 큰 바다처럼 깊고 깊습니다.
큰 바다처럼 넓고 넓습니다.
보통 지혜로는 생각하여 미칠 수 없습니다.
    그 지혜의 주인인 나 붓다가 중생이 죽은 다음 아무것도 안된다고 해도 적당치 않고, 도는 것도 아니고 안 되는 것도 아니라고 말하는 것도 적당치 않습니다.''
                                                                  &&&&&&&&&&&&&&&&&&&&&&&&&&&&&&&&&&&&
  유아에 근거해서 생겨나는 문제들을 무아의 성품으로 설하는 것으로 대답하여 주셨다.
  빠세다니 꼬살라 대왕은 자기의 지혜로 견해가 깨끗하여 청정한 수준까지는 가지 못했으나 다른 사상의 주인들이 말끔하게 대답하여 주지 못한 문제를 자세하게 대답해 주신 모습에 매우 만족해했다.
  그것보다 더욱 흐뭇한 것은 부처님께서 대답하신 모습이 떠라나와투 마을에서 안거하는 케마 비구니가 대답하신 것과 받침 하나 틀림없이
똑같은 것이었다.
  부처님 뒤를 따라 갈 수 있는 지혜를 지닌 이 큰 비구니에게 부처님께서 비구니 가운데 지혜제일이라는 특별한 칭호를 내래시면서 칭찬하신 것은 아주 적당 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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