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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난존자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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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 딱한 이들은 그리워하는 마음만 샅샅이 드러내고 있는 중이었다.
그들의 눈동자와 태도에서 마음의 고통을 찾아볼 수 있었다.
  그 중에는 로히니 강변에서 생긴 일로 만들어진 오백 명의 과부도 들어 있었다.
꼴리야 성에 간다면 그들과 처지가 같은 과부 오백명이 역시 눈물을 흘리면서 서러운 말을 할 것이다.
  부처님과 고따미 어머니가 계시는 앞이나 그들의 자세가 조용하다.
우리들끼리만 있었다면 여기저기서 질문이 터져 나왔을 것이다.
그 질문들은 끝도 없이 계속될 것이지만 내 대답은 한 가지뿐이었다.
  ''그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
  로히니 강변 사건에서 생겨난 오백 명의 비구들은 어른들의 명령에 따라 들어왔다.
자기들이 마음을 내고 자유롭게 들어온 것이 아니기 때문에 교단의 생활에 즐거워하지 못했다.
그러던중에서 남아 있던 사람들이 편지나 사람을 보내어 여러 가지 전갈을 보내왔다.
  ''여보, 빨리빨리 돌아오세요.  당신이 없으면 집안 일 어느 한 가지도 되지 않습니다.  도대체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잡아야 할지
몰라요.  제발 돌아오세요.''
  여러 가지 딱한 일과 그리움을 보내왔다.
그러나 그 그리운 사연들을 읽고 눈물을 흘려줄 그분들은 다른 생으로 떠나갔다.
  형님이 주신 진리의 약을 먹고는 그리워하고 가슴 아파하는 세계에서 훌훌 넘어 다시는 아파하지 않는 곳, 돌아오지 않는 곳으로
넘어가 버렸다.
  새 과부들을 위해서 즐겁고 힘이 날 일, 힘이 날 대답을 가지고 오지 않았듯이 묵은 과부들 역시 나에게서 어느 한 가지 바랠 것이
없었다.
그렇다, 이번에도 역시 동생 난다와 아들 라훌라는 없었다.
  누더기 가사 입은 수행을 하는 동생 난다는 지금 숲 속 절에서만 지내는 수행도 같이 하고 있다.
그가 걸식하러 가는 곳도 큰 마음이나 큰 부자 집이 아니다.
그가 지내는 작은 절 근처의 가난한 마음이다.
그 전에 형님이 원하고 바라던 대로이다.
  아들 라훌라도 그의 스승님과 같이 제따와나 정사에 남아 있다.
세상사람들이 사는 세계에 어울려 번듯하게 살 수 있는 기회가 없어진 그 가련한 여자들이 만든 음식을 우리는 조용히 먹어야
했다.
그리고 니로다 정사로 조용하게 돌아왔다.
  정사에 부처님께서 혼자 남아 계시던 어느 날 나는 까삘라 왕궁의 과부들에게 사까 종족 남자들 오백 명이 새로 수행자가
된 사실을 말해 주었다.
'불이란 멀면 뜨겁지 않다.  가까워야 뜨겁다'란 속담처럼 이러한 일을 틀림없이 만날 것이라고 일찍이 전부터 짐작했었다.
                                                                    &&&&&&&&&&&&&&&&&&&&&&&&&&&&&&&&&&&&&
  눈물 잔치를 치르는 누이들의 모습을 그 이전부터 보았다.
지금 보는 장면 역시 그때 보았던 그대로이다.
그러나 이전에는 지금과 같지 않았다.
이 말을 하는 순간 이러한 일들을 만날 것이라고 예측했으며 그런 장면이 전개되면 마음을 어떻게 하리라고 생각하고 단단하게
결정해 놓았었다.
  그렇게 다짐해 놓았던 일들을 지금 눈앞에 만나게 되지 흔들리지 않도록 결정해 놓았던 나의 마음도 다시 흔들리고 눈시울이
ㅅㅣ큰거려 왔다.
같이 간 대중들이 없었다면 그들과 섞여서 함께 울었을지도 모른다.
  정말로 같이 울었더라면 차라리 나았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울어서 그로 인해 같이 지내는 대중들에게 멸시를 받고 존경을 받은 것이 멈추었어도 상관 없다.
실컷 울어서 마음이 조금 풀어졌다면 저녁 무렵에 생겨난 일에 대해서 마음이 가벼워졌을 것이다.
  편안히 걱정이나 근심이 없는 마음으로 조용히 생각했다면 그날 저녁 일은 잘 끝났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기회를 놓쳐버렸다.
어머니 한 무리들에 대해 딱하고 가련하게 여기는 마음 때문에 그 반대로 딱하게 여기지 않고 가련하게 여기지 않는 꼴이 되어
버렸다.
  어머니 마하 빠자빠띠 고따미는 과부 여인들 오백 명과 함께 그날 오후 정사에 도착했다.
사까족과 꼴리야 두 나라에서 처지가 같은 여자들이 함께 온 것이다.
오전에는 인생의 모든 희망이 사라진 슬픈 모습으로 눈물잔치를 치르던 누이들이 지금 오후에는 비맞은 꽃들처럼 싱싱하니 즐거워
하는 모습이다.
  각자 미소를 머금고 방긋 웃는 얼굴에 희망히 하나 어려 있는 것을 읽을 수 있었다,
그들의 가슴에 뜨거워하는 슬픔을 같이 나누던 나도 오후에는 그들과 같이 미소를 지었다.
오랫동안 내가 바라던 그 특별한 날이 바로 오늘이 아니겠는가?
  불교 교단에는 오늘까지 비구와 사미만 있었고 비구니와 사미니는 아직 없었다.
여자들은 오늘까지 이 교단의 바깥쪽에만 있었다.
이 지상에 있는 사람들의 반을 차지하는 여자들이 아직 오직 않았고 도착하지 않은 것은 우리 교단의 영역이 충분히 넓혀지지 않은
것이다.
  오늘 그 비어 있는 한 쪽을 채울 이들이 온 것이다.
세상에 관해서 어느 한 가지 의지할 것 없는 이들이지만 의기양양하고 당당해진 모습은 이 교단에 희망을 걸고있는 것이다.
  비구니 교단에 제일 먼저 기념비를 세울 여자 영웅들을 부처님 앞에 기쁜 마음으로 안내했다.
사까족 여자들이 다른 이들보다 먼저 온 것에 대해서 부처님께서는 칭찬하시는 소리를 들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지니고
                                                            &&&&&&&&&&&&&&&&&&&&&&&&&&&&&
  ''부처님!  알고 보고 수행하는 것과 함께 부처님께서 설하여 주신 가르침을 여자들이 들어와서 수행하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부처님!''
  ''고떠마여, 이 교단 안에 여자들이 들어오는 것을 칭하지 말라.''
  부드럽고 아름다운 목소리이긴 했다.
다른 때에 이러한 목소리를 들었다면 한 발자국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밤을 새워 지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 말씀만은 받아낼 수 없었다.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귓속에서는 아름답고 부드러눈 소리이지만 간과 심장을 흔들어 놓는 말슴이었다.
옆에서 듣는 나도 이 정도로 심하게 동요하는데 정작 그 본인들은 어떻게 감당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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