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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난존자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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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를 다스림에 있어 사까족들은 국회라고 부르는 모임의 결정에 따라야 한다.
사까족의  남자들은 일정한 나이가 되면 그 모임에 들어갈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그리고 나라의 중요한 정책을 결정하는 것에 있어서 자기들의 생각이나 자유롭게 펴 보일 수 있는 기회를 가진다.
  이렇게 자신의 의견을 펴 보이고 여러 사람의 지원이나 찬성을 받으면 법으로 정해지는 경우도 있고, 어떤 의견은 자기 생각과
같거나 다르거나 상관없이 많은 이들의 동의를 얻어 결정되고, 그 후에는 함께 손을 잡고 추진하는 것이 우리 사까족 남자들의 힘이다.
  이 모임을 주재하고, 그 결정에 따라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을 왕이라고 불렀다.
다른 이들은 무역, 농업 등 각기 자기 일을 하면서 지냈다.
이러한 사까족들은 말라족들과  매우 비슷했다.
말라족들은 차례대로 돌아가면서 나라를 다스렸고 그 책임을 맡는 동안만 왕이라고 불렀다.
차례가 아닌 이들은 마을과 도시를 오가면서 무역이나 장사를 하며 지냈다.
  그 말라족과 달리 우리 사까족들은 한 가지가 특별했다.
나의 백부님인 숟도다나께서 모임을 주재하는 책임과 나라를 다스리는 힘을 얻었을 때 사까족 모두의 일치된 지지를 얻었고,
따라서 왕의 권위를 평생 유지하도록 결정된 것이다.
그래서 그를 특별히 대왕이라고 부르며 그 덕을 칭송했다.
  나와 함께 비구가 된 받디야도 숟도다나 대왕 아래에서 나라를 다스리는 책임을 맡았던 왕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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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스로 종족 혈통에 관한 것을 드러내고, 자신들의 공덕을 말하는 것은 선한 이들이 하지 않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이사까 혈족에 부처님, 그분께서 직접 포함되기 때문에 있는 그대로의 공덕과 위엄을 알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까족들은 브라만 (사제계급)에게 고개를 숙이지 않는다.
브라만들의 베다(경전)에도 예배하지 않는다.
그들의 예배는 브라만들의 전통과 풍습에 의해 내려오는 것일 뿐이다.
사까족 모두가 중요히 여겨 존중하고 예배를 드리는 이는 오직 숟도다나 대왕뿐이었다.
  또 우리 사까족 모두의 예배를 받는 이는 우리 종족의 공덕과 위엄을 이끌어 나가는 오다나 형제들뿐으로, 그 다섯 형제들 중
첫째가 숟도나나, 다음이 숟꼬다나, 도또다나,아미또다나이며, 마지막이 누이 아미따이다.

  숟도다나 대왕은 부처님이 되신 싯달타와 난다 왕자의 부왕이시다.
싯달타 태자는 마하 마야 왕비께서 낳으셨드며, 난다 왕자는 동생인 마하 빠자빠띠 고따미께서 낳으셨다.

  룸비니 동산에 싯달타 태자를 낳으신 후 마야 왕비께서 세상을 떠나셨기 때문에 동생인 고따미께서 직접 태자에게
젖을 먹여 키우셨다.
  둘째인 숫꼬다나 사까께서는 마하나마와 아누루다 존자 형제분의 부친이시다.
나는 네 번째 아미또다나의 아들이다.
우리 교단이 번성했들 때 같이 지내는 대중들과 맞지 아니하여 잠깐 문제를 일으켰던 때이사 비구는 숟도다나 대왕의 막내
누이인 아미따의 아들이다.
우리 사촌들 중에서는 마하나마만 싯달타 태자보다 위이고 난다.
아누루다, 때이사와 나 아난다는 그분의 동생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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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교단 안에는 많은 이들에게 이름이 알려진 여자분들이 계신다.
마음 씀씀이와 신심이 장하며, 부처님의 가르침을 잘 이해하는 등 여러 가지에 모범을 보이시는 여제자분들도 계신다.
  마하빠자빠띠 고따미께서도 그처럼 이름이 알려지고 많은 이들이 존경할 뿐 아니라, 어느 한 가지가 아니라 모든 것에 모범을
보이시는 분으로 교단 전체가 존경을 드리는 상가의 큰어머님이시다.
  마야 왕비께서 남기신 어린 왕자를 그분은 직접 자기 젖을 먹여 키우셨다.
그분이 낳은 난다 왕자는 유모에게 맡기고, 싯달타 태자에게 어떤 위험도 접근하지 못하도록 보호하셨으며 날마다 몇차례
씻기고 향수를 뿌리는 정성을 들이셨다.
스스로 먹고 마실 수 있을 나이가 되었어도 유모들에게 맡기지 않고, 직접 좋은 것을 찾아 먹이고 입혀야만 만족해 하셨다.

  태자가 점점 커서 어른이 되었어도 어머니의 사랑은 마르지 않고 항상 넘쳐흘렀다.
나이 29세가 될 때까지 그분의 마음속에는 항상 어린 이들이며 옥동자 금동자로만 생각되어 어머니로서 보호 하고 사랑하셨다.
  어머니의 한없는 사랑으로 큰 왕자인 싯달타 태자와 작은 왕자인 난다를 같이 사랑하시는 것에는 의심이 없었으나,
단 한 가지 생모가 없다는 마음에 난다 왕자보다 큰 왕자를 더욱 사랑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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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것마으로도 형님 싯달타 태자는 세간의 부귀와 사치를 다른 이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풍족히 누릴 수 있었다.
사람이 원하고 좋아하는 모양,소리,냄새,맛,감촉들을 즐기는 것을 깜마 오옥락이라 한다.
그 깜마 오욕락을 형님께서는 가지가지 안 갖춘 것이 없을 정도로 모두 갖추어 받으시고 즐ㄱㅣ셨다.
  태자에게 자비와 연민심이 가득했던 부왕과 왕비는 그를 위해 여름 궁전, 우기 궁전, 겨울 궁전 등 계절에 알맞는 세 개의 궁전을
지어 생활하게 하였으며, 그 부귀의 주인 싯달타 태자는 계절에 맞추어 그 세 곳에서 야소다라 공주를 비롯한 많은 궁녀들과 함께
지내셨다.

  남자는 전혀 포함되지 않은 아름다운 여자들로 이루어진 막내를 거느리고 즐겁고 아름다운 소리를 즐겼다.
비오는 계절인 우기에는 넉 달 내내 궁전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출가를 위해 깜마 오욕락을 분명히 끊지 않았을 때, 그분께서는 골고루 깊이깊이 구족하게 갖추어서 즐길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시절, 이러한 호사를 받는 기회를 가진 이가 그분만은 아니었다.
다른 나라의 왕자나 거부 장자의 아들들도 그처럼 즐겼다.
그 시대에 오욕락을 즐기는 이들은 각각 그들 능력대로 대문을 다고서 한껏 즐겼다.

  세상에서 벗어나는 길을 찾는 사람들 또한 그들의 몸이 견딜 수 있는 한 괴롭고 힘든 고행을 행하였다.
지나치게 쾌락을 즐기는 것과 지나친 행하는 양쪽 끝으로 있는 힘껏 달려가는 시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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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싯달타 태자는 어떤 어려움도 겪지 않고 번성하는 사까족의 왕자로 인생의 아침을 편안하고 만족스럽게 즐기며
보냈다.
나이가 들어 어른이 되었을 때는 왕자들의 책임과 의무인 나라를 방어하고 보호하는 법, 나라를 다스리는 법, 그리고 모든
분야의 지혜를 배우고 익혀야 했다.

  나는 다른 왕자들과 같이 취미였던 무역 일을 배웠다.
이 일을 배우고 나서는 언제나 집에서 지내지 못했다.
까벨라를 벗어나서 다른 나라에 이르기도 했는데, 그 중에서가장 많이 가본 곳이  말라국이었다.
그들은 우리 왕족들과 많이 비슷했다.
그래서 가장 가까운 친구도 말라국의 왕자인 로사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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