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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난존자의 일기-2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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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누구에게도 우선권이나 특권은 없었던 것이다.

  게간에 살 때에는 존재였던 산다가 수행자의 생이 시작되고 나서부터 쓸모없는 존재가 되고 말았다.
스님들에게 적당하지 못한 행동을 일으켜서 자주 말썽을 일으키고 몸으로 입으로 나쁜 것이란 모조리 범하고 다녔다.
치료할 수 없는 큰 허물을 범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 만했다.

  지금 현재 어떻든지 태자시절에 그분에게 그의 공로가 있었던 것을 생각해서 같이 지내는 대중들이 마음을 길게 하여 참아서 고쳐주고는 했다.
그릇되게 보고 있는 쓰레기더미를 모두가 도와서 깨끗하도록 해주었다.
그러나 산다는 그 고쳐줌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쓰레기를 치워주려고 오는 스님들에게 도리어 욕설을 퍼부었다.

  ''스님들! 어째서 내가 여러분들이 말하는 대로 고개를 숙이고 받아들일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말하려고 한다면 도리어 내가 여러분들에게 말해야 하는 것 아닌가?

    나의 주인이신 그분께서 법을 확철하게 깨달으셨다.
그래서 부처님은  나의 부처님이다.
법이라는 것도 나의 법이다.
가는 곳마다 보시하는 것도 당신들을 위해서 비교해야 할 비유를 들자면 이러하다.
큰 태풍이 불어올 때 산 속이나 숲 속의 나뭇잎이 떨어져서 수북히 쌓인것처럼 , 언덕 아래 웅덩이에 크고 작은 이끼가 모여 있는 것처럼, 그와 같이 모든 종족, 모든 계급에서 이 교단으로 모여왔다.''

    자기 스스로 왕족의 하인이었던 신분이면서도 다른 스님들을 누르려고 들었다.
세간에서처럼 주인의 위세를 업고 하인이 득세를 한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그의 말 속에 포함된 것처럼 그의 주인이 스스로 직접 담마를 깨달으신 것은 사실이다.

  이렇게 그의 주인이 법을 깨달아서 붓다가 된 것이 그 한사람을 위해서인가?
보통으로 생각하는 지혜가 있는이라면 그가 보여주는 이유가 적당하지 못한 것을 알 수 있다.

    그의 주인을 위해서 아무것도 하는 것이 없으면서 그가 하는 일이란 맥박이 높아지는 것뿐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눈에 백태가 낀 ㅇㅣ는 의사가 치료해야 고쳐 줄 수 있다.
훌륭한 의사만이 백태를 걷어 내고 모양을 선명하게 보도록 해줄 수 있다.

  그러나 보지 않으려고 일부러 눈을 감은 이에게는 의시도 어떻게 할 수가 없다.
우리들의 산다 역시 일부러 눈을 감고 있는 이였다.
눈을 감고서도 가고 싶은 곳으로 가려고 하니 가는 곳마다 부딪히는 것이 특별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그는 이 교단 안에서 혼자서 지내는 이가 아니었다.
함께 피와 살을 나눈 우리 대중으로서 있었다.
서로서로 가르쳐 주고 허물이 있으면 서로 치료해 줌으로써 상가 대중이 발전하고 커질 수 있었다
                                                            &&&&&&&&&&&&&&&&&&&&&&&&&&&&&&&&&&&&&&&&&&&&
  지금 산다가 하는 행동은 상가 대중을 번영하고 향상하도록 하는 행동이 아니었다.
하루하루 줄어들고 무너지게 하는 하는 것뿐이었다.
이러한 상황을 알기 때문에 말하기 어려운 산다를 부처님앞으로보냈다.
부처님께서
  ''세 번, 세 차례 타일러 주어도 계속하여서 거칠게 행동하면 상가디시사 허물을 지운다.''라고 게율을 정해서 발표하셨다.

  이 허물을 치료하려면 매우 오래 걸리고 책임 역시 크다.
처음.중간. 끝. 세 군대 모두에 상가가 도와주어야만 그 허물에서 벗어날 수 있다.
5달 이상 상가 대중의 가장 아래 위치에서 참회하여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상가디시사라고 이름 붙였다.
이것은 빠라지까 다음으로 큰 범계이다.

    이러한 명령을 내렸으므로 산다는 그전처럼 함부로 지껄일 수는 없었다.
그러나 그 역시 우빠난다 테라와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이쪽을 막으면 저쪽으로 뚫고 나가는 이였다.
그가 뚫고 나가는 것마다 부처님께서 따라서 막으시는 것이 꾸시나가라의 빠리닙바나에 드시는 침상에까지 이르렀다.
그것은 그자리에 이어서 다시 보여 주리라.


    다른 비구들이 '사까의 아들들'이라는 호칭을 공덕으로 생각하는 동안에도 그 세 사람은 '사까의 아들'이라는 초칭이 두 번이나 겹쳐서 가장 가까운 처지이면서도 사까의 공덕을 지켜 나가지 못했다.
그러나 그들이 이 교단의 생애에서 완전히 손을 놓쳐버리는 데까지는 이르지 않았다.

  그들의 행동을 그들  스스로가 그릇된 줄 알아차리는 순간에 그들 스스로 고쳐 나갈 것이다.
자기 행동을 자기 스스로 그릇된 줄 알면서도 고칠 기회를 얻지 못하는 아들에게 비교한다면 그래도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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