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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난존자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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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우리 교단의 가르침과 일치되지 아니하는 것은 그르다고 하더라도, 부처님 가르침과 일치되는 이 한가지도 어째서 그른 일에 넣어서 포함시켜야 하는가?' 이렇게 묻는 이가 있다면 내가 대답하겠다.
실행하는 모습이 그릇되면 알고 보는 견해가 깨끗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목적은 불선업을 빼어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불선업(아꾸살라)을 사실대로 법답게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영혼이라는 것은 중생들 마음의 성품뿐이구나.'라고 이해하지 못한다.
어떤 주인이 있어서 마음대로 하는 어느 누구도 없으며, '나'라는 어떠한 개체라는 것이 먼지만큼도 없으며,  행하는 이도 없어서 오직함(행동)뿐인 법이구나라고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에 함(행동)뿐인 불선업에 하는 이(행위자)를 만들어낸다.
어떤 주인이 있어서 마음대로 하는 이도 없으며, '나'라는 것은 먼지만큼도 없는 무아에 '나'라는 생각으로 주인을 만든다.

    중생 마음(삿따지와 마노)뿐인 그 성품에 중생과 지와(생명)들을 만들어낸다.
그렇게 '내가'라거나 '내 것'이라는 불선업을 없애려고 힘들고 고통스러운 수행으로 갖가지로 불선업을 짓는다.

    지금까지 살아 있는 중생, 미래에 살아 있을 중생에게 가지가지로 형벌을 가한다.
그들이 중생에게 죽기 살기로 벌을 주지만 벌을 받는 중생이란 없는 중생 대신 벌을 받는 이는 그 업의결과로 받은 이 몸뿐이다.
불선업이 아니며, 선업도 아닌 이 몸뿐이다.

    불선업을 빼어버린다는 것은 소멸의 진리를 체험함과 동시에 무량한 모든 불선업, 묵은 빚을 빼어버리는 일이 끝나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다.
빼어버릴 불선업을을 이리저리 생각하든 대신 버릴 수 있는 지혜가 생기도록 노력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지헤가 생기면 모든 불선업은 사라진다.
                                                                  &&&&&&&&&&&&&&&&&&&&&&&
    그러나 니간타 스승은 지헤는 갖추지 아니하고 업 한 가지만 중요하게 여겨서 지낸다.
'업'을 빼어내는 것도 한 가지 업이 아닌가? 업 위에 다시 업을 짓는 것이 아닌가?'라는 것을 지혜가 없어서 알지 못하면 견해가 깨끗하게
못한 것이다.

    그래서 이 교단과 한 부분 비슷한 것 같은 목적조차도 그릇됨이라는 곳에 포함된 것이다.
니간타 스승의사시상을 이렇게 기초부터 자세하게 이해했더라면 아바야가 이 교단의 바깥으로 갈 일이 없었으리라.

    그러나 그 딱한 이는 나이가 아직 어리다.
담마에 관해서 배우기 시작할 때부터 니간타 스승과 만났던 것이다.
니간타 스승은 그와 같은 락차위 사람이며 그와 같이 왜살리 수도에서 태어났다.
그래서 니간타 스승의 힘이 아바야에게 모든 면으로 덮혀 있었을 것이다.

    어릴 적부터의스승에게 깊이 빠져 있는 아바야에게 그 스승의 허물을 말해 주면 매우 날카롭게 아파질 것이다.
그래서 나는 삽빈뉴 라는 이름을 붙인 그 스승의 제멋대로 된 모습은 그에게 사실대로 말해주지 못하였다.

    그의 법이 그릇된 것임도 말하지 못했다.
윤회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부처님께서 설하셨던 세 가지 길만 그에게 말해 주었다.
실라(게율), 사마디(선정), 빤냐(지혜), 이 세 가지 법만 널리 설해 주었다.

    내가 그렇게 법을 설해 줄 때 아바야는 앞을 멀거나 바라보면서 이리저리 생각을 굴리고 있었다.
그의 스승의 법과 우리 교단의 세 가지 길을 비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친구 아바야, 아난다 테라께서 설하신 법을 어째서 싸두를 부르지 않고 있는가?''

    친구의 얼굴을 보고 만족치 못한 빤띠따 왕자가 주의를 주자 아바야는 흠칫 눌라서
  ''어찌 싸두를 부르지 않고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친구 빤띠따여, 아난다 테라께서 설하신 버비에 누가 싸두를 부르지 않고 지낼 수 있겠는가?
싸두를 부르지 않고 지내면 내 머리가 땅에 떨어짐을 면치 못하리라.''

    친구의 말에 싸두를 부르는 아바야의 목소리는 겨우 겨우 들릴 정도였다.
나는 그가 지닌 어릴 때의 사상과 비교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었다.
아바야가 멍하니 있었던 것은 이것저것 비교하느라고가 아니라 내가 그의 스승의 견해를 칭찬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에게 불만족스런
마음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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