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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한 마음이면 즐거움이 따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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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찬주 작가의 소설 법구경 <3>
그림자가 자신을 떠나지 않듯

마음이 그것들의 으뜸이고 그것들은 마음으로 이루어진 것이니
순수한 마음으로 말하거나 행동하면 즐거움이 그를 따르리
천인 맛타꾼달라는 성자의 흐름에 든 경지, 수다원과를 얻었다

삽화=정윤경 작가
삽화=정윤경 작가

인구 3백 만 명이 넘는 사왓티 시에는 별별 사람들이 다 모여 살았다. 저택에서 수십 명의 하인을 거느리고 사는 부자도, 그에 못지않게 집 없이 구걸하는 비렁뱅이도 많았다. 부자들은 대부분 비렁뱅이들에게 적선을 하면서 살았다. 이른바 부자와 빈자가 공생하는 사왓티 시였다. 그러나 부자들 중에는 구두쇠도 더러 있었다.

아딘나빠까는 구두쇠들 중에서도 바라문 친구들이 혀를 내두를 만큼 몹시 인색했다. 외아들 맛타꾼달라가 태어난 이후 재산이 제법 불어났지만 배고픈 비렁뱅이들에게 적선 한 번 해본 적이 없었다. 외아들 맛타꾼달라에게 생일선물로 주려고 마음먹은 금목걸이도 세공 장인에게 맡기지 않고 세공기술을 배워서 손수 만들었다. 자신의 호주머니에서 세공 장인에게 나갈 얼마간의 돈이 아까웠던 것이다. 아딘나빠까는 절대로 지갑을 여는 법이 없었다.

맛타꾼달라가 바라문 학생으로서 베다, 천문, 지리 등을 배워야 할 열여섯 살이 되었을 때였다. 갑자기 맛타꾼달라는 황달병에 걸려 어머니 마음을 아프게 했다. 그녀는 남편인 아딘나빠까에게 곧장 의원을 찾아가 아들을 입원시키자고 몇 번이나 간청했지만 아딘나빠까는 치료비가 아까워서 망설였다.

아딘나빠까는 꾀를 냈다. 그는 의원들을 찾아다니며 황달 치료약 제조법을 귀동냥한 뒤 약을 만들기로 작심했다. 그 방법이 한 푼도 돈이 들지 않을 터였다. 몇몇 의원을 면담한 그는 이윽고 자신이 만든 약을 아들 맛타꾼달라에게 먹였다. 그러나 며칠 동안 약을 먹은 아들에게 효과가 있을 리 만무했다. 의원들이 약제조의 비법을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들 맛타꾼달라의 황달병은 점점 더 심해졌다. 눈빛이 숫제 달걀 노른자위처럼 노랬고, 얼굴은 검은빛으로 변했다. 아내가 눈물을 흘리며 하소연하자, 아딘나빠까는 할 수 없이 비쩍 마른 아들을 데리고 의원을 찾아갔다. 그러나 의원은 치료시기를 놓쳤다며 고개를 저었다.

“내 약으로 치료할 시기를 놓쳤소. 너무 늦었소. 그러니 다른 의원에게 가보시오.”

“치료비는 얼마든지 내겠소. 의원님은 사밧티 시에서 가장 유명한 명의가 아닙니까? 그러니 내 아들 병을 고쳐주시오.”

“안타깝지만 나는 더 할 말이 없소.”

의원은 실망한 채 돌아서는 바라문 아딘나빠까에게 작은 소리로 충고했다.

“신께서 너그럽게 심판하시기를 기도하는 일만 남은 것 같소.”

신의 심판이라면 죽음을 뜻했다. 아딘나빠까는 아들이 곧 죽는다는 것을 눈치 채고는 대문 밖 정자에 누워 있게 했다. 그가 하인들에게 일을 지시하거나 야단치는 정자였다. 아내가 반대했지만 그의 고집을 꺾지는 못했다. 그가 그렇게 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조문객들이 저택 안까지 들어오면 자신의 재산이 많다고 소문이 날 것 같아서였다. 누구에게도 자신의 돈을 빌려주고 싶지 않았고, 비렁뱅이들에게 적선하기가 싫었던 것이다. 아무튼 아딘나빠까는 아들 맛타꾼달라가 죽으면 정자 부근 천변에서 곧바로 화장시키려고 생각했다.

며칠 뒤 아침.

부처님은 사왓티 시에 탁발을 나가려고 준비 중이었다. 그때 부처님은 선정에서 깨어나 맛타꾼달라가 정자에 누워서 사경을 헤매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부처님은 사왓티 시 성문 안으로 들어와 바라문 아딘나빠까 저택 대문 앞에 섰다. 맛타꾼달라는 부모가 사는 저택 쪽으로 누워 있었기 때문에 부처님을 보지 못했다. 그러나 부처님이 맛타꾼달라를 향해 밝은 빛을 보내자 죽어가던 그가 일어났다. 그는 부처님께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어 마음속으로 빌었다.

‘밝은 빛을 내는 분이라면 부처님이 틀림없을 거야. 부처님의 밝은 빛이 나에게 믿음을 주고 있지 않은가. 부처님께서는 내가 죽기 전에 귀의할 기회를 주려고 오신 것이다. 그러니 나는 지금 부처님께 귀의할 것이다.’

부처님은 맛타꾼달라의 마음을 다 읽고 있었다. 실제로 맛타꾼달라는 마음속으로 부처님께 귀의했고, 부처님은 그의 소원을 받아주었다. 맛타꾼달라는 숨을 거두자마자 부처님께 귀의한 공덕으로 서른 세 명의 신들이 사는 천상에 태어났다. 순수한 마음과 간절한 믿음으로 부처님께 귀의했기 때문에 받은 큰 정복(淨福)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천인(天人) 맛타꾼달라는 천상의 거처에서 자신이 살았던 사왓티 시를 내려다보다가 아버지 아딘나빠까를 발견하고 말았다. 노인이 된 아딘나빠까는 화장하여 재를 묻은 아들의 묘지에서 흐느끼고 있었다. 외아들을 잃은 자책감으로 후회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맛타꾼달라는 중얼거렸다.

‘생전에 일찍 나를 데리고 의원을 찾아가기는커녕 약 한 봉지 제대로 지어주지 않던 아버지께서 이제 내가 보고 싶어 저렇게 손을 휘저으며 흐느끼고 계시는구나. 내가 있는 힘을 다해서 아버지 마음을 돌려 부처님께 귀의하게 해드리자.’

마침내 맛타꾼달라는 천인의 부드러운 옷을 입고 생전의 바라문 학생 모습으로 노인이 된 아버지 아딘나빠까 앞에 나타났다. 천인의 옷을 입으면 하늘을 날아서 어디든 갈 수 있었던 것이다. 노인 아딘나빠까는 바라문 학생 모습을 한 외아들 맛타꾼달라를 바로 알아보았다.

“아들아, 네가 무슨 일로 천인의 옷을 입고 있느냐?”

“아버지, 이 옷은 날개 같아서 어디든 갈 수 있답니다.”

맛타꾼달라는 자신이 죽기 전에 부처님께 귀의하여 서른 세 명의 신들이 사는 천상에 태어난 사실을 아버지 아딘나빠까에게 말했다. 그런 뒤 구두쇠 소리를 듣고 살아왔지만 부처님께 재산을 아끼지 말고 공양하라고 설득했다.

“믿음을 내어 부처님께 귀의한 것만으로 천상에 태어난 것이 사실이란 말이냐?”

“예, 아버지. 그러니 아버지께서도 인색하게 살면서 모은 재산일지라도 부처님께 공양하시면 천상에 태어나실 수 있답니다.”

잠시 후 맛타꾼달라는 자신이 아버지를 위해 할 일을 마쳤다고 생각하고는 곧 천상으로 날아가 버렸다. 천상에 살고 있다는 증거로 천인이 입는 날개 같은 옷을 아버지에게 보여주었으므로 더 이상의 설득은 필요 없었다.

그러나 아딘나빠까는 물론이고 그가 데리고 있는 수십 명의 하인들은 반신반의했다. 특히 아딘나빠까는 적선을 한 일이 없었고, 계행과 상관없이 살아왔는데도 부처님께 귀의하는 것만으로 천상에 태어날 수 있다는 게 쉽사리 믿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때 부처님은 아딘나빠까의 마음을 읽고서는 그의 저택으로 와서 늙어가는 그에게도 천상에 태어날 수 있는 기회를 주고자 천인 맛타꾼달라를 불렀다. 부처님은 천인들과 한 생각[一念]만으로도 대화가 가능했던 것이다.

잠시 후, 맛타꾼달라는 스승인 부처님의 부름을 받고 곧 나타났다. 천인들이 사용하는 장신구를 단 그는 한 생각만으로도 부처님이 왜 자신을 불렀는지를 알았다. 부처님의 요구는 간단했다. 부처님께 귀의한 공덕으로 천상에 태어난 사실을 이야기해 달라는 것뿐이었다. 맛타꾼달라는 부처님의 요구대로 머리카락이 갈대꽃처럼 허연 아버지 아딘나빠까와 수십 명의 하인들에게 증언했다. 그들은 맛타꾼달라의 이야기에 이신전심으로 서서히 믿음을 냈다. 사경을 헤매던 아딘나빠까의 외아들 맛타꾼달라가 부처님께 순수한 마음과 간절한 믿음으로 귀의함으로써 천인으로 태어났다는 사실을 의심 없이 믿게 되었던 것이다.

그때 부처님이 시로써 청중들에게 가르침을 폈다.

마음이 드러난 모든 것들에 앞서고
마음이 그것들의 으뜸이고
그것들은 마음으로 이루어진 것이니
순수한 마음으로 말하거나 행동하면
즐거움이 그를 따르리.
그림자가 자신을 떠나지 않듯.

부처님의 설법이 끝나자마자 아딘나빠까는 물론이고 청중들은 ‘그림자가 자신을 떠나지 않듯.’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해했고, 천인 맛타꾼달라는성자의 흐름에 든 경지, 수다원과를 얻었다.

[불교신문 3856호/2025년1월2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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