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과 역사, 역사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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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과 역사, 역사교육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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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10.24 (토) 12:53:17 | 박병기_한국교원대 교수 |
우리는 주어진 시간을 살다가 가는 존재들이다. 불교에서는 인간 생명의 구성 요소를 수명과 남녀의 교합, 중음(中陰) 등 셋으로 규정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 특히 의미심장한 것은 수명이다. 우리에게 수명이 주어져야만 비로소 출생이 가능하고, 그 수명의 범위 안에서 자신의 노력 여하에 따라 구체적으로 주어지는 시간을 살다가 구름처럼 흩어질 뿐인 존재임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근대 문명의 정착과 함께 나이 들어가는 것에 대한 거부가 하나의 추세로 굳어졌고, 이미 우리사회에도 동안(童顏)을 높이 평가하고 나이 듦을 거부하는 문화가 정착해 있다. 이런 사회에서 나이가 드는 일은 자신의 무능력과 외모의 추함을 드러내는 일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성형을 해서라도 어떻게든 젊어 보이려 노력하는 간절한 아우성을 꼭 그 사람의 잘못으로만 치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시간과 그 체험으로서의 역사 체험은 역사가 된다. 우리 삶은 각각에게 주어진 시간을 몸으로 받아들여 일구어내는 이야기들로 구성된다. 과거의 체험을 오늘의 시점에서 기억해내면서 재구성하고, 그것을 다시 미래로 연속시키는 과정이 곧 역사이다. 그런 점에서 모든 인간은 역사적 존재라고 할 수 있고, 그 역사성은 인간의 특성임과 동시에 과거와 현재, 미래로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시간에 대한 인간의 주체적인 기록이자 포용이기도 하다. 본래 객관적이고 타자적인 성격을 지닌 시간은 이처럼 각 개인과 그 개인들의 공동체가 그것과 주체적으로 만나고자 하면서 역사를 이루고, 이 역사는 다시 문화의 형태로 구성되어 한 인간의 토대를 이룬다. 다시 말해서 한 인간은 진공상태로 태어나 자라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문화 속에서 태어나 그 문화가 축적해온 다양한 가치와 특성을 내면화하는 사회화 과정을 거쳐 구체성을 지닌 인간으로 자리하게 되는 것이다. 이 과정을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당시의 사회인 폴리스(polis)의 구성원이 되어야만 비로소 온전한 인간이 될 수 있다는 의미로 ‘폴리스적 동물(zoon politicon)’이라는 말로 표현해내고자 했다. 그 말이 우리에게는 사회적 동물로 해석되어 전해지고 있다. 그렇게 본다면 교육은 일차적으로는 사회화의 과정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만약 인간사회의 사회화 과정을 거치지 못하면 늑대인간과 같은, 외형만 인간이고 실제로는 늑대가 되는 결과를 빚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교육이 사회화 과정으로만 완결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만약 그것으로 끝난다면, 모든 인간은 동일한 모습을 지닌 채 동물 수준의 진화 이상을 이루어내지 못했을 것이다. 인간의 교육에는 자신을 사회화시킨 역사와 문화, 공동체에 대한 비판적 인식과 극복의 과정이 반드시 포함된다. 발달의 어느 단계에 이르면, 이러한 저항의 과정이 나타나게 되고 우리는 그것을 ‘미운 일곱 살’이나 ‘질풍노도의 시기’ 등의 말로 표현해왔다. 이러한 교육의 사회화와 자율성 사이의 역설적 과정은 영국의 교육철학자 피터스(R.S. Peters)에 의해 ‘도덕교육의 역설’로 표현되었고 현재까지도 여전히 살아있는 교육의 핵심적인 화두이기도 하다. 불교에서 교육은 일차적으로 스승과 도반이 함께하는 훈습(熏習)의 과정이지만, 동시에 그 훈습의 과정 자체에 대한 비판적 성찰과 극복의 과정이기도 하다. 특히 선불교에서 부각된 살불살조(殺佛殺祖)의 전통은 이러한 성찰과 극복의 과정을 궁극적인 깨달음 과정의 고독한 분투 과정으로 만들었다. 화두를 마음속에 간직한 채 스스로 나가는 문을 봉쇄해버리는 무문관 수행의 전통이 그 전형적인 사례이다. 인간의 역사 또한 사회화와 자율적 발달이라는 교육의 역설을 그대로 수용하면서 이루어진다. 어린 시절에는 주로 자신에게 주어지는 부모의 가르침과 명령을 수용하는 방식으로 시간을 경험하다가 어느 지점을 통과해내면서 그것을 거부하는 몸짓과 말을 통한 체험의 방식으로 시간을 받아들인다. 점점 더 낮추어지는 ‘미운 일곱 살’의 저항이 그 시작이고, 사춘기의 저항과 성인이 된 이후의 지속적인 저항이 그 연속적인 과정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것들을 뿌리치고 출가를 감행한 석가모니 붓다의 경우가 그러한 위대한 저항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를 만들어낸 인도의 모든 문화에 대한 수용과 거부의 동시성은 현재의 우리에게도 자신을 형성한 역사와 문화에 대한 비판적 수용과 창조라는 준엄한 요청으로 재해석되어 부여되고 있다.
역사 인식과 교육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한편 역사를 인식하는 과정은 일정한 거리두기와 비판적 재구성의 과정을 반드시 포함한다. 자신을 제대로 볼 수 있기 위해서는 먼저 한 걸음 물러서는 거리두기를 시도해야 하고, 그 거리를 바탕으로 삼아 비판적이고 객관적으로 재구성하고자 하는 지난한 노력의 과정을 감내할 수 있어야만 한다. 그런 과정을 거쳐 우리가 형성할 수 있는 인식틀은 자신과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소중한 창문이자 통로가 된다. 그것을 우리는 세계관이라고 일컫기도 하고 역사관이라고 부를 수도 있다. 『금강경』에서는 이것을 상(相)이라고 표현하면서 비판적 극복의 대상으로 설정하고 있지만, 그 비판적 극복의 과정 이전에 반드시 자신이 세상을 바라보는 창문을 만들어내는 상의 형성 과정이 전제되어야만 한다는 가르침 또한 소중한 것이다. 그렇게 보면 교육의 과정은 우선 자신만의 상을 세우고 그것을 다른 사람들의 것과 비교해가면서 궁극적으로는 극복해내는 과정 자체로 정의될 수 있다. 바로 그런 점에서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세울 수 있는 상은 세상을 바라보는 하나의 창에 불과하다는 겸허한 인식을 전제로 해야만 한다. 그 겸허함의 미덕은 원효가 ‘시각 장애인의 코끼리 만지기’ 우화를 통해 우리에게 보여주고자 했던 화쟁(和諍) 속에 포함되어 있기도 하고, 독일 철학자 니체가 우리가 지닐 수 있는 견해는 모두 하나의 관점에 불과하다는 관점주의를 통해 강조하고자 했던 것이기도 하다. 역사 또한 마찬가지다. 나 자신과 우리 사회의 역사에 관한 인식은 삶의 필수 요소이지만, 그 인식의 과정 속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관점은 하나의 해석에 불과한 것일 수밖에 없다는 겸허함을 지니지 않은 채 자신의 관점만을 내세운다면 거꾸로 그 관점 속에 갇혀 진리로부터 멀어지는 결과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역사교육은 그런 점에서 역사가 다양한 관점에서 해석될 수 있고 또 해석되어야만 하는 대상이라는 엄연한 사실을 받아들이게 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자신의 관점을 명료하게 드러내면서도 그 관점이 하나의 관점이자 과정적인 것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 또한 잊지 않는 화쟁의 정신을 갖게 하는 것이 역사교육의 핵심적인 목표인 이유이다. 권력은 늘 역사를 자신의 관점에서 해석하고 확장하고자 하는 속성을 지녀왔다. 권력을 영향력 확대의 본능으로 해석할 수 있다면 그런 권력의 속성 또한 자연스런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지만,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권력에 대한 제도적 견제와 균형 맞추기를 시도하는 민주주의 의 확산이 인류 역사 발전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21세기 초반 한국사회에서 역사에 관한 해석을 독점하려는 의도를 숨기지 않는 권력의 역사 교과서 국정화 시도는 그런 역사 자체의 흐름에 반하는 무모한 저항일 뿐이다. 권력은 짧아 곧 끝나고 말지만, 사람들이 살아 있는 한 역사는 지속된다는 교훈을 권력자들이 어느 구비에서라도 깨우칠 수 있기를 기원할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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