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경, 가습기 살균제 민원인 응대 백태···“좀 모자란 듯" "치약으로 교환 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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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32 2019.05.23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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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입시 인체에 유해한 가습기 살균제를 판매한 애경산업이 제품의 안정성을 묻는 소비자 민원을 부실 처리한 정황이 계속해서 드러나고 있습니다. 판매기간 동안 최소 981건의 민원이 접수됐습니다. “인체 무해한지”, “임산부나 아이에게 써도 되는지”를 묻는 민원이 상당수입니다. 정작 애경산업은 가습기 살균제 민원인에 대해 “좀 모자란 것 같다”며 비아냥대기도 했는데요.
애경산업은 올초부터 시작된 검찰의 가습기 살균제 수사의 주요 수사 대상입니다. 애경산업은 SK케미칼이 제조한 가습기 살균제 ‘가습기 메이트’를 2002년에서 2011년 8월 사이 판매했습니다. 가습기 메이트에는 정부가 흡입 독성을 인정한 클로로메틸이소티아졸리논(CMIT)·메틸이소티아졸리논(MIT)이 담겨 있습니다. 정
가습기 메이트 제품 | 경향신문 자료 사진
부에 피해 인정을 요구한 피해자만 1400명이 넘습니다.
유해성을 의심할 만한 지속적인 민원 제기에도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았다는 것은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를 적용하는 주요 근거가 될 수 있습니다. 검찰이 SK케미칼·애경산업에게 적용하고 있는 주요 혐의가 업무상 과실치사상입니다.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는 사람을 다치게 하거나 사망하게 할 위험성이 있는 업무 종사자가 해당 업무를 수행하면서 과실로 사람을 사상에 이르게 할 때 성립합니다.
현재 검찰은 안용찬 전 애경산업 대표를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로 재판에 넘기는 것을 검토 중입니다.
애경산업이 보유하고 있던 가습기 살균제 ‘민원 내역’ 표지 | 이정미 의원실 제공
19일 경향신문이 이정미 정의당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가습기 메이트 이플러스 가습기 살균제 상담내역’에는 2003년 5월 12일부터 2011년 8월 30일까지 애경산업에 접수된 총 981건의 문의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이중에는 ‘인체 유해성’과 관련된 질문이 100건이 넘습니다.
애경산업이 지난해 공정거래위원회 조사를 받으면서 제출한 인체 유해성 관련 민원은 7건에 불과한데, 이보다 훨씬 많은 수치입니다. 애경산업이 공정위에 자료를 부실 제출한 것으로 의심할 수밖에 없는 대목입니다. 검찰은 애경산업이 검찰 수사에 대비해 민원 내역 상당수를 지운 사실도 포착하고 민원 대응 팀장을 수차례 소환해 조사하기도 했습니다.
애경산업은 각각의 상담 내용과 그에 대해 자신들이 취한 대응을 정리했습니다. 표지 상단에는 관련 내용을 극비(Strictly Confidential)에 처한다는 표시도 해두었습니다. 민원 981건에는 유효기간·제조일자·사용법 문의부터 가습기 살균제의 안전성에 대해 합리적 의심을 품게 된 정황까지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제품의 안전성을 묻는 민원은 애경산업이 가습기살균제 판매를 시작한 지 1년 뒤인 2003년부터 본격적으로 제기됩니다. ‘아이가 (가습기 메이트를) 조금 먹었는데 괜찮을까요?’(2003년 8월18일)를 시작으로 인체에 유해한지 여부를 구체적으로 묻는 민원이 속출했습니다. 그 예로 ‘사용해도 인체에 전혀 무해한지’(2003년 11월29일), ‘(제시된) 기준 사용량보다 더 많이 사용하면 인체에 해가 있는지’(2003년 12월5일) 등이 있습니다.
2003년 12월24일에는 가습기 메이트가 인체에 해가 없는지 묻는 민원이 2건이나 들어왔습니다. ‘가습기를 하루 종일 틀어놓는데 가습기 메이트가 인체에 해가 없는지’ 묻는 민원(2005년 1월7일)도 있었습니다. 2007년 12월27일에는 ‘인체에 해롭지 않다고 하는데 어떻게 믿을 수 있냐며 화를 냄’이라는 민원도 접수됩니다. 제품 판매가 이어진 2010년과 2011년에도 인체 유해성을 묻는 민원은 이어집니다.
가습기 살균제 ‘가습기 메이트’의 인체 유해성 여부를 묻는 민원들. | 이정미 의원실 제공
임신부·신생아가 있는 가정에서 제품의 유해성을 따지는 질문이 특히 많았습니다. ‘신생아가 있는 방에서 사용해도 되는지 문의’(2004년 2월18일), ‘신생아에게 무해한지 문의’(2004년 2월26일), ‘임산부가 있는 집에서 사용해도 되는지 문의’(2004년 4월12일), ‘약산성이라는 문구가 있는데 신생 아기 있을 때 사용해도 되는지 문의’(2004년 1월27일), ‘가습기 메이트가 신생아에게 유해하지 않은 지 문의’(2005년 1월7일) 등이 대표 사례입니다. ‘신생아실에서 사용해도 전혀 유해하지 않은지 문의’(2008년 12월26일)라는 민원도 있습니다.
한 사용자는 2003년 12월 22일 ‘가습기를 일상 생활에 밀접하게 사용하고 있는데 임신부도 (가습기살균제) 사용이 가능한가요? 화학약품이 많이 들어간 것 같은데 임신부들이 가습기 메이트를 쓰다 보면 영향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아 좀 걱정이 되네요’라고 구체적으로 자신의 임신 사실을 알리며 유해성 여부에 대한 답을 구했습니다. 해당 민원인이 답변을 받았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가습기 메이트의 성분과 원료를 궁금해하는 민원인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민원 내역을 보면 ‘인체에 무해한 원료로 만들었는지 문의’(2004년 2월13일), ‘가습기 메이트 정확한 화학성분을 문의. 자세하고 구체적인 사항을 알고 싶다고 하여 연구소에 연결해드림’(2004년 10월4일) 등이 있습니다.
2010년 2월8일에는 ‘정확한 성분이 표시되지 않아 문의 드린다. 주요 성분과 화학성분까지 알려주시기 바란다’는 민원이 애경산업에 접수됩니다. 해당 민원은 이틀 뒤 부실한 답변을 받은 정황도 확인됩니다. 2010년 2월10일 동일한 민원인은 “예상한 답변이 왔다. 소비자보호원이나 식약청 통해서라도 성분내용 확인하도록 하겠다. 확인된 내용을 영업에 방해가 되지 않는다면 포털 게시판 등에 게재할 생각이다”라고 애경산업에 전합니다.
가습기 살균제 ‘가습기 메이트’ 성분 문의 민원에 ‘좀 모자라는 듯’이라고 대응하는 대목. | 이정미 의원실 제공
민원 내역에는 애경산업의 대응이 일부만 나와 있습니다. 애경산업은 제품 판매를 중단하기 불과 몇 개월 전인 2011년 2월 한 고객의 민원에 “‘면역력이 약한 유아나 노약자가 있는 가정에서는 가습기메이트를 사용하시는 것이 더욱 좋다’고 안내 요망”이라고 답했습니다. 제대로 된 유해성 검증 시도가 있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2005년 1월27일에는 “가습기 메이트를 수영장에 넣고 사용해도 되는지”를 묻는 민원이 애경산업에 접수됩니다. 이에 애경산업은 “몸에 닿거나 호흡하는 것은 인체 무해하나 식품 등록이 되어 있지 않아 먹으면 안 된다”고 답합니다. 호흡시 인체 무해함을 민원인에게 강조한 것입니다.
서울대에서 독성실험을 했고 독성이 없다는 내용으로 민원인을 응대하고 있는 대목 | 이정미 의원실 제공
애경산업이 민원인에게 거짓 대응을 한 정황도 있습니다. 검찰 수사 결과 애경산업은 SK케미칼이 1994년 당시 이영순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에게 의뢰한 흡입 독성 실험 자료를 제품 판매 시점인 2002년부터 갖고 있었던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서울대 보고서에는 ‘안전하다’는 결론이 아니라 ‘추가 실험이 필요하다’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2009년 12월8일 애경산업에는 ‘아이가 가지고 있다가 (가습기 메이트) 조금 먹은 것 같은데 괜찮을지 문의’라는 민원이 들어옵니다. 애경산업은 “독성시험(서울대학)도 했음. 독성이 없어 큰 문제가 되지는 않지만 염려되시면 병원에 가 보시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하심. 큰 문제는 없을 거라고 함”이라고 답변합니다.
2011년 4월15일과 2011년 5월11일에도 인체 유해한 제품인지 묻는 민원이 들어옵니다. 애경산업은 약 한 달 간격으로 들어온 두 민원에 같은 답변을 합니다. 애경산업은 “개발 초기 동물실험 통해서 호흡기 무해함을 실험했고 가습기 메이트는 물에 희석해서 사용하기 때문에 문제가 생길 가능성은 적다고 안내”라고 민원처리를 했습니다. 미국 식품의약청(FDA)에서 검증 받은 향균제를 썼다는 답변도 했습니다.
애경산업은 2011년 2월16일 ‘가습기 메이트는 살균제 쪽의 허가를 득하기 위해 미국, 일본 등 전문자료를 제출해 허가 받은 제품이다’, ‘애경은 기본적으로 가습기 메이트 관련 안전성 자료를 갖고 있다’고 민원인에게 설명합니다.
가습기 살균제 ‘가습기 메이트’가 인체 무해하다고 답변한 애경산업의 민원 내역 | 이정미 의원실 제공
인체 유해성과 관련된 민원 대응 의지가 부족한 정황도 눈에 띕니다. 2007년 11월 어린아이와 남편 모두 가습기살균제 사용 후 호흡기 불편을 호소했다는 민원과 2008년 1월 가습기메이트를 넣으면 자꾸 목이 따갑고 눈이 아프다는 민원인에 대해 각각 ‘치약으로 교환 처리’라고만 적었습니다. 2008년 9월 한 민원인이 성분을 자세하게 따져 묻자 이를 두고 ‘좀 모자라는 듯;; 결국 연구소 XX차장님이 고객과 직접 통화’라고 정리했습니다.
지난달 30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지방법원에서 인체 유해성이 있는 물질로 만든 가습기살균제 ‘가습기메이트’를 판매해 소비자에게 피해를 끼친 혐의(업무상과실치사상) 등을 받는 안용찬 전 애경산업 대표가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법정으로 들어서고 있다. | 권도현 기자
가습기 메이트를 제조한 SK케미칼과 판매한 애경산업이 공동으로 무책임하게 대응한 대목도 눈에 띕니다. 애경산업은 2009년 1월20일 “가족 모두가 독감에 걸렸다. (가습기 메이트) 성분이 의심된다”는 민원을 접수하고 SK케미칼에 분석을 의뢰합니다.
SK케미칼은 같은 해 2월25일 애경산업에 보낸 답변에서 “가습기 메이트 사용 후 감기에 걸렸다는 일반 소비자의 클레임(민원)은 상식적으로 억지에 가깝고, 실험 결과를 송부할 필요한가 생각까지 드네요”라고 답합니다. SK케미칼은 “(가습기 메이트) 성분이 바이러스를 만들어 낸다는 연구 결과는 인류 역사상 나오지 않은 상태입니다^^”라고도 언급하는데요. 애경산업은 “제품 결과 이상이 없기 때문에, 따로 (민원인에게) 연락드리지 않음”이라고 민원 내역에 적어놨습니다.
애경산업은 “SK케미칼의 제품이다보니 SK케미칼에서 받은 사용법과 제품설명 등에 근거해 응대했다”고 밝혔습니다.
<윤지원·김원진 기자 yjw@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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