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이날’]12월28일 자녀 비행기 태워 서울로 레슨…스카이캐슬이 하루아침에 생겼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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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50 2019.12.31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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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부터 2009년까지 10년마다 경향신문의 같은 날 보도를 살펴보는 코너입니다. 매일 업데이트합니다.
■1979년 12월28일 자녀 비행기 태워 서울로 레슨…스카이캐슬이 하루아침에 생겼을까
김상민 디자인기자
지휘자 정명훈은 그의 세계적인 지휘 실력 외에 어머니의 교육열로도 유명합니다. 그의 어머니 이원숙 여사는 일곱 남매 중 세 사람을 훌륭한 음악가로 키웠습니다. 명화(첼로), 경화(바이올린), 명훈(피아노 및 지휘) 남매는 ‘정트리오’라고도 불리죠. 음악을 하지 않은 나머지 자녀들도 교수나 의사 등으로 자랐습니다.
2011년 세상을 떠난 이원숙 여사는 한국 ‘자식 교육의 신화’로 불렸는데요. 이처럼 열성적인 자식 교육이 ‘치맛바람’이라는 차별적인 용어로 불리던 시절도 있었지요. 40년 전 오늘 경향신문에는 이른바 ‘음악계 치맛바람’이 소개됐습니다.
기사는 이원숙 여사의 교육열 사례로 시작됩니다.
“스스로도 ‘맹렬여사’나 ‘극성파’로까지 자처했던 이 여사는 경화양의 뒷바라지를 위해 미국까지 쫓아가 불고기집을 경영할 정도였다. 결과는 성공했고 지금은 아무도 그녀를 탓하는 사람이 없다. ‘지금까지 든 비용이 그녀가 운영하는 미즈백화점 3개값은 될 것’이란 소문도 우리네 인정감각으로는 양해사항이 될 뿐 아니라 더 나아가 훌륭한 모성상으로까지 비친 까닭이요, 예술이란 게 처음부터 평준화를 무시하고 천재교육을 해야 하는 당위성 때문이기도 하다.”
이어 해외 음악가들의 사례도 함께 소개됐는데요.
“베토벤의 아버지는 술주정뱅이였지만 자식을 훌륭한 음악가로 키우기 위해 망치를 들고 베토벤의 뒤를 쫓아다녔으며 모차르트의 어머니는 모차르트를 따라 잘츠부르크에서 파리까지 다니며 뒷바라지를 하다 피로에 지쳐 파리에서 객사했다. 파가니니도 예외는 아니어서 ‘아버지의 폭행 때문에 자신이 있게 됐다’고 실토할 정도.”
2019년 현재 상식으로 볼 때 ‘아동 학대’에 해당하는 훈육법이 나열됐습니다. 1979년만 해도 이런 행동이 교육열이 지나친 부모의 ‘기행’ 정도로만 여겨졌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1979년 12월28일자 경향신문 5면
기사는 그러나 항변하듯 다음과 같은 설명도 곁들였습니다.
“앞의 예들이 너무 지나친 감은 있지만 ‘왜 음악을 해야 하느냐’는 절박한 당위성을 알지 못하는 어린 나이 때부터 피아노 앞에 앉아야 하는 음악가의 숙명으로서는 이처럼 지나친 극성이 양해되기도 한다. 어릴 때부터 부모의 바른 판단과 조직적이고 철저한 교육, 헌신적인 뒷바라지가 따를 때 그 아이는 튼튼한 기초를 통해 대성의 문을 두드릴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음악가로 성장하는 데 적당한 치맛바람은 오히려 필요하다는 논리가 성립되지만 지나칠 때는 추해지게 마련이다.”
당시 추하다고 손가락질 받은 ‘지나친 치맛바람’은 다음과 같았다고 합니다. 주로 음악에 대한 조예가 없으면서, 그저 부를 과시하거나 부모의 못다 한 꿈을 자녀에게 강요하는 경우였는데요.
“음악을 모르니까 선생님의 ‘이름’에만 현혹되어 무조건 명성있는 교수만 찾는다. 심지어 레슨용 자가용을 두고 있는가 하면 지방에 있는 아이들이 비행기를 타고 서울의 이름있는 선생집을 찾아 레슨을 받는다는 사실은 이제 공공연한 비밀이 돼버린지 오래다.”
부모들의 이 같은 행태는 ‘유능한 선생’의 정의마저 바꿔놓았다고 기사는 지적합니다. ‘아이를 철저하게 잘 지도하는 선생보다 실력이야 있건없건 콩쿠르나 대학입시 혹은 외국 유학의 다리를 잘놓는 선생’이 우대받는 사회가 돼버렸다고요.
그러면서 “판단능력이 없는 많은 부모들이 일으키는 치맛바람은 돈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바로 돈바람”이라고 평가했습니다.
40년이 지난 지금도 한국의 높은 교육열은 전 세계에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언젠가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한국의 교육 방식을 두고 칭찬을 아끼지 않기도 했죠.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지나치면 모자란 것만 못한 법이죠. 과도한 교육열로 인한 부작용은 지금도 곳곳에서 목격되고 있습니다.
‘스카이캐슬’의 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던 2019년도 곧 저뭅니다. 오는 2020년 한국은 이 캐슬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최민지 기자 mi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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