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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용을 펼쳐 수행을 읽다.5진짜 경험은 미뤄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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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   2019.05.06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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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장 진짜 경험은 미뤄두고


寒松孤店裡    高臥別區人
近峽雲同樂    臨溪鳥與隣
錙銖寧荒志    時酒自娛身
得月卽帶憶    悠悠甘夢頻

겨울 소나무 외로운 주막에
한가롭게 누웠으니 별세상 사람일세
산골짝 가까이 구름과 같이 노닐고
개울가에서 산새와 이웃하네
하찮은 세상 일로 어찌 내 뜻을 거칠게 하랴
시와 술로써 내 몸을 즐겁게 하리라
달이 뜨면 옛 생각도 하며
유유히 달콤한 꿈꾸리라!
시․김삿갓, 자영(自詠)

 멀게는 해외여행이 자유화가 된 시점부터였겠지만, 가까이로는 토요근무가 직장에서 서서히 사라지면서부터 여가시간 활용과 취미의 스펙트럼이 다양해졌다.. 특히 조금 바지런을 떨면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의 금쪽같은 시간을 내어 재충전의 시간이나 새로운 세상을 경험할 수 있게 되면서 여행이 일반화된 것이 어쩌면 가장 두드러진 변화가 아닐까한다

 TV를 틀면 연령과 시간에 제한을 두지 않고 갈 수 있는 온갖 여행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이 우수수 쏟아진다. 초기의 여행프로그램은 단순히 새로운 여행지를 소개한데에 그쳤다면 지금은 현지의 다양한 분야 혹은 생활을 경험하는 체험여행으로 진화하고 있다. 즉 단순히 관광지를 구경하거나 현지의 맛을 찾아 떠나는 식도락 여행만이 아니라, 현지인의 일상을 공유하는 일상체험여행이나 신앙의 기원을 찾아 떠나는 종교 여행, 아름다운 예술품을 감상하는 예술여행, 여행지와 관련한 지식을 전달해주는 새로운 구성의 인문학 여행까지 그 베리에이션이 몹시 다양하다.

 이러한 프로그램을 접하다 보면, 여행지에 대한 정보뿐만이 아니라 음식, 종교, 예술, 건축, 역사 등의 다양한 인문적 지식까지 얻을 수 있어 일거양득의 프로그램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나도 모르게 시간 가는 줄 모르며 시청하게 된다.
호기심을 가득 안고 프로그램에 빠져들다 보면 그야말로 간단히 TV를 시청하는 것으로 여러 분야에서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정보를 온몸으로 맞게 된다. 어느새 내가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된 듯한 생각이 든다. 프로그램에서도 마치 시청을 하는 것만으로도 직접 체험하고 익혀 지식인이나 혹은 전문가가 될 수 있을 것처럼 방송하고 있다.

 가보지도 않은 맛 집에 대해 마치 내가 직접 맛보고 경험해본 듯 논평을 하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된다. 직접 보지 못한 예술작품에 대한 지식 정보를 술술 설명하고 있는 나를 알아채게 된다.
그런데 과연 저런 프로그램을 시청한다고 해서 혀끝에 닿는 오묘한 그 맛을 내가 진짜로 알게 되는 것일까? 성지순례 프로그램을 시청한다 해서 내게 의지자에 대한 경건한 자세와 신실한 믿음이 생기는 것일까? 예술작품들을 생생하게 느끼고 음미하며 감상할 수 있는 안목이 일순간에 주어지는 것일까? 사실은 관심과 약간의 이해가 생길 뿐 당연히 그렇지 않다. 그런데도 우리는 프로그램을 통해 익힌 지식을 내 것인 양 말하면서 경험과 지식을 직접 익히려 하지 않는다. 왜 그런 것인가?

 현실의 우리들은 작은 짬조차 만들 수 없을 만큼 일상이 바쁘다는 이유 혹은 핑계를 대며 ‘진짜 경험’을 미루고 있다. 업무적으로 혹은 경제적으로 부담된다고 재단(裁斷)하며 내 앞의 일을 멈추고 일어나 실천할 용기를 내지 않는다. 부러워만 할 뿐 직접 실천하지 않는 게으름을 피우는 것이다.
그리하여 진정한 맛과 멋, 지식을 가질 수 있는 다양한 삶의 경험을 미룬 체 TV를 시청하는 대리만족을 하고 있는 것이다. 저 수많은 프로그램들이, 방송인들의 대리 체험이 나를 대신하고 있는 것이라며 스스로에게 위안을 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곤 알려주는 정보를 직접 경험한 것 인양 떠들어댄다. 으스대며 주워들은 지식을 ‘내 것’처럼 천연덕스럽게 이야기하고 있다. 
사실, 우리네 삶은 늘 팍팍한 현실이어서 작은 짬이나 여류를 줄 수 있을 만큼 녹록하지 않다. 그러니 현실에 매인 상황을 아주 무시할 수 없기에 고단한 삶의 핑계와 위안을 그럴 수 있다고 이해한다. 또한, 삶의 언저리에 있는 사람들 모두가 각기 처해있는 환경이 다르니 그 맛과 멋을 꼭 경험하는 것이 정답이라는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현실이 그렇다 하여 다른 이의 경험치를 계속 내 것인 양 이야기할 것인가? 진정한 맛과 멋을 알기위한 노력을 등한시하고 계속 현실에 묶인 체 ‘대리만족’에 안주할 것인가? 여전히 내가 맛 본양 음식에 대해 이야기하고 내가 다 알고 있는 것처럼 TV에서 들은 얕은 나의 지식을 전부 내보일 것인가? 이런 상황에 대해 중용에서는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人莫不飮食也 鮮能知味也.

사람은 모두 마시고 먹지만 그 맛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중용(中庸)』 제4장

 우리는 습관적으로 먹고 마신다. 반복적인 삶 시간 속에서 깨어있지 않기 때문에 습관에 매몰된 의식은 내가 하는 행동의 맛과 멋을 자각하지 않는다. 그러기에 삶의 중요한 모든 순간이 습관으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맛과 멋을 느낀다는 것이 얼마나 희귀한 일이 되었는가!
진실로 그렇다. 현재 있는 자리에서 나를 돌아본다면 습관적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일상에 매몰되어 현실을 핑계  삼아 게으름을 이유로 ‘진짜’를 살아가려 노력하지 않는 것이다. 

 깨어있는 의식과 감각으로 직접 느끼지 않는다면 일상으로 행하는 모든 일들조차 진정한 맛을 알기란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기에 ‘멋’에 대한 앎의 욕구와 뜻이 확고히 있다면 습관에 메여있어서는 안 된다. 타인의 체험을 내 것인 양하는 ‘대리만족’에 안주하거나 ‘주워듣기’식의 지식충전에 멈춰서는 안 된다. 언제나 자각이 이루어지도록 늘 깨어있어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 내 삶의 전장터인 현실에 ‘발’이 묶여 있다면 ‘손’과 ‘머리’, ‘모든 감각’을 아끼지 말고 부지런히 사용해야 한다.

머리로만 하는 수행으로 진정한 깨달음을 이룰 수 없듯이 직접 만지고 느끼고 가봐야 하는 것이다. TV시청을 하는 쉬운 방법이 아닌 책을 읽고 생각과 지식을 키워야 하며, 경험을 통해서 감각을 길러야 한다. 나의 뇌에 다양한 지식을 보충해주고 끊임없는 호기심을 키워주며, 적당한 경험으로 만족을 주어야 한다. 비록 관심과 생각을 성장시키는 과정이 느리고 힘들어 꾸준히 실천하기 어렵다하여도 책을 통해 지식을 쌓아가고 경험을 통해 감상의 수준을 높여야 할 것이다. 

식재료에 대한 이해와 조리법, 음식문화를 아는 것과 함께 직접 먹어보는 사람이 진정한 맛을 느끼는 사람인 것이다. 성지가 조성된 종교적 배경과 지역적 환경, 역사를 알아서 지식이 쌓아감과 동시에 직접 성지를 순례하는 순례자가 되어 내 믿음의 대상인 의지하는 이를 참배하고 그로 인해 경외심과 믿음이 생기는 것이 진짜 종교체험을 하는 것이리라. 건축의 아름다움, 미술작품의 아름다움, 음악의 아름다움 또한 그러하다. 박물관이든 건축물이든 공연장이든 내 발로 가서 보고 듣고 만져봄으로써 오롯이 내 것으로 체득되는 완상의 즐거움이 진정한 맛을 느끼는 순간이 아닐까?
‘앎’의 과정에 대한 지루함과 어려움을 이겨내다 보면 어느새 맛과 멋을 ‘아는’경지에 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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