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용을 펼쳐 수행을 읽다2 본성의 삶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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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1 2019.04.15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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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2019-04-25 12:34:50
본문
본성(本性)의 삶이란
삶이란 한 조각 구름이 일어남이요
죽음이란 한 조각 구름이 스러짐이라오
구름은 본시 실체가 없는 것
죽고 살고 오고감이 모두 그와 같으니
서산대사, 해탈시 中
번민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마음 안에 차곡차곡 쌓아놓고 쟁여놓았던 속내를 혹은 불만을 드러내고 말하기 어려웠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불만성토시대에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야말로 ‘내 얘기 좀 들어줘’의 시대에 살고 있다. 막힌 둑이 헐어져 걷잡을 수 없이 흘러넘치는 물처럼 자기 안의 불만과 생각을 가감 없이 쏟아내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분노와 답답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자기 마음 속 깊이 숨겨두었던 고민들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사실 대부분 남과 관계를 유지하면서 생기는 스스로에 대한 속상함과 불만일 경우가 많다.
“나는 왜 모든 것이 안 될까?”, “왜 남의 눈치를 볼까?”, “원하는 대로 하지 못하는 내가 싫다.” 등의 온갖 고민들을 버리지도 못하고 양 어깨에 가득 짊어진 채 매일을 살아내고 있다.
이렇게 무의식속에서 생겨난 나에 대한 부정적 생각과 감정은 홍수처럼 흘러넘쳐서 제일 중요한 존재인 나를 휩쓸고 지나가버린다. 소중한 자신을 무너뜨리고 결국 스스로는 물론 타인, 세상과의 거리를 더욱 멀게 만들고 있다.
이런 일들이 생긴 원인은 무엇일까? 경제, 사회의 변화와 이에 따른 문화, 풍조가 변화했는데 마음만은 변하지 못해서 생겨난 것이다.
여럿이 함께 살아가던 농경사회에서는 공동체적 생활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한 목표였다. 그리하여 혼자만을 생각하는 것이 이기적인 행동이고 잘못된 것이라고 여겼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약간의 손해와 배려를 늘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떤 경우에는 서운함을 견뎌내지 못하고 토로하는 사람에게 배려가 부족하다는 질타를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힘들고 어려운 상황이 지나고 나면, 내가 했던 마음고생을 공동체 일원들이 알아주고 보상해 주었다. 그러기에 갈등과 분노 혹은 서운한 마음이 있어도 참는 노력을 했고, 이러한 생각과 행동이 공동체 유지를 위한 당연한 행동 범주에 속했었다.
그렇다면 현재의 삶에도 이런 생각과 행동을 적용하는 것이 맞는 것일까? 공동체 사회가 사라진지 오래다. 산업화에 이어 신자유주의라는 새로운 사회현상이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을 하루가 다르게 변화시키고 있다.
사람들은 ‘좀 더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 홀로 뒤쳐지지 않기 위해 일각을 쉬지 못하며 정신없이 살아가고 있다. 몸만 쉬지 못 하는 것이 아니다. 남들보다 앞서야 한다는 위기의식에 자기계발이라는 명목으로 자는 시간을 쪼개가며 끊임없이 변화하려 달려가고 있다. 성공이라는 사회 공동의 성취동기는 사람들을 극성스러운 개인주의로 내몰고 있으며, 주변을 돌아보고 함께 고민을 들어줄 단 일분의 여유조차 주지 않는다. 휴식과 위로가 없는 나날의 연속인 셈이다.
그러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남들과 다르면 안 된다는 생각에 시류에 끌려가는 상반되는 상황에서 마음은 불안과 불편함으로 고생중이다. 여전히 공동체적 관습에 메여있는 것이다.
그런데 공동체 속에서 존재가치의 인정과 소통을 나누던 삶과는 전혀 다른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과거의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을 고수하는 것이 과연 맞는 것일까? 어쩌면 제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입고 가면놀음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지금 우리에는 필요한 것은 현재를 살아가는 데에 필요한 알맞은 행동과 사고방식, 문화의 전환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변화해야 할까? 고민의 첫걸음인 갈등의 원인부터 살펴보면 될 것이다. 내가 지금 겪고 있는 불만과 고민의 시작은 어디에서 왔는가? 내 안의 갈등 즉, 기준점이 나인 생각과 행동을 실현하고 싶은데 타인과의 관계에 얽매여서 하지 못해 생긴 고민병인 것이다. 답답병인 것이다.
그러니 원인을 바꾸면 결과가 바뀌듯이 내가 기준이 되어 생각한 대로 살면 고민병은 말끔히 해소될 수 있다. 즉 타고난 나의 성품을 원칙으로 삼아 행동하라는 뜻이다.
혹자는 이 말을 들으면 이기주의를 떠올린다. 그러나 여기에 언급한 내 기준의 바탕은 사리사욕(私利私慾)이 아니다. 나의 타고난 본성(氣質)에 기대어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사고는 이익에 근거를 둔 이기주의와 엄연히 다르다. 본성(本性)이라 함은 선악(善惡)이나 시비(是非)의 개념이 내포되어 구분된 것이 아니다. 그저 타고난 바 즉 기질(氣質)인 것이다.
함께 살아가는 세상에서 혼자만의 생각을 주장하는 것이 선(善)이라고 말한다면 이기주의자라는 비난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렇지 않다. 자신의 본성이 가리키는 느낌과 판단을 믿고 행동하는 것이 긍정적인 결과를 낳는다. 오히려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시선 때문에 포기하면서 생기는 내 안의 부정적 감정과 분노를 감당하고 조절하기 위해서 소비되는 나의 감정노력이 더 큰 손실이다. 『중용(中庸)』을 보면, 도와 본성을 따르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天命之謂性 率性之謂道 修道之謂敎
이 세상의 원리가 곧 나의 본성이고
본성을 따르는 것이 도이며
도를 잘 연마하는 것이 바로 공부이다.
『중용(中庸)』 제1장 中
사실, 도(道)는 하나이기에 나의 본성과 세상의 이치가 다르지 않다. 그렇기에 도(道)에 맞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 본성을 가리지 않고 이를 따르는 것이 바로 도리에 맞는 삶인 것이다. 본성을 중시하는 것이야 말로 천리(天理)에 순응하는 삶이라고 볼 수 있다. 다만, 본성을 따르는 삶을 사는 데 있어서 주의해야 할 것은 반드시 도를 잘 연마하는 것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연마되지 않은 자신의 생각이 본성의 발현이라고 자칫 착각하여 행동하는 것의 위험성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할 수 있다. 본래 진면목을 갖고 있는 나(我)로서 본성을 견지하고 그에 의지하면 바른 삶을 살아갈 것이다. 그러나 인연과 업에 의해 몸에 배어진 오랜 습(習)과 근본적인 욕망에 치우쳐 그릇된 생각과 삿된 판단으로 잘못 생각하고 행동하게 된다. 그 결과 타고난 자성으로부터 멀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를 바꾸기 위하여 성심을 다하여 쉬지 않고 수행함으로써 자성을 견지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더 나아가 현실에서의 삶에 다름에 대한 타인의 걱정과 비난 혹은 비웃음에 대한 감정소비를 과감히 떨쳐버리면 또 다른 도전의 세상이 열릴 것이고 내 본성대로 살아가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본성대로 살아가는 자신을 대면할 때, 자기 결정권이 갖는 행복감을 맛볼 것이다.
본성을 바탕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며 그 결과를 겸허히 수용하는 연습을 하여야 한다. 또한 지금 나의 생각과 행동이 과연 본성(性)에 맞는 것인지에 대하여 늘 철저히 자기를 점검하여야 한다. 이것이 수행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수행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일상에서 작은 한 생각들을 실천하는 것이 바로 수행인 것이다. 돌이켜 참회하고 생각하며 정확하고 알맞은 표현을 연마하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자.
늘 못해본 일과 못가본 길로 인해 우리는 늘 아쉬워한다. 그러기에 본성대로 사는 연습을 하면, 과거와 현재, 내 삶에 대한 아쉬움이 더 이상은 없을 것이다. 또한 수행의 경험치가 쌓여 내 삶의 지혜를 이룰 것이다.
고였던 물이 한 방울씩 움직여 시냇물을 만나 강으로 스며들어 흘러가면 어느새 큰 바다에 도달해 있는 것처럼 관습과 문화, 타인의 시선에 갇혔던 삶을 본성대로 사는 삶으로 한걸음씩 내딛는 수행하다보면 어느새 큰 도에 이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삶이란 한 조각 구름이 일어남이요
죽음이란 한 조각 구름이 스러짐이라오
구름은 본시 실체가 없는 것
죽고 살고 오고감이 모두 그와 같으니
서산대사, 해탈시 中
번민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마음 안에 차곡차곡 쌓아놓고 쟁여놓았던 속내를 혹은 불만을 드러내고 말하기 어려웠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불만성토시대에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야말로 ‘내 얘기 좀 들어줘’의 시대에 살고 있다. 막힌 둑이 헐어져 걷잡을 수 없이 흘러넘치는 물처럼 자기 안의 불만과 생각을 가감 없이 쏟아내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분노와 답답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자기 마음 속 깊이 숨겨두었던 고민들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사실 대부분 남과 관계를 유지하면서 생기는 스스로에 대한 속상함과 불만일 경우가 많다.
“나는 왜 모든 것이 안 될까?”, “왜 남의 눈치를 볼까?”, “원하는 대로 하지 못하는 내가 싫다.” 등의 온갖 고민들을 버리지도 못하고 양 어깨에 가득 짊어진 채 매일을 살아내고 있다.
이렇게 무의식속에서 생겨난 나에 대한 부정적 생각과 감정은 홍수처럼 흘러넘쳐서 제일 중요한 존재인 나를 휩쓸고 지나가버린다. 소중한 자신을 무너뜨리고 결국 스스로는 물론 타인, 세상과의 거리를 더욱 멀게 만들고 있다.
이런 일들이 생긴 원인은 무엇일까? 경제, 사회의 변화와 이에 따른 문화, 풍조가 변화했는데 마음만은 변하지 못해서 생겨난 것이다.
여럿이 함께 살아가던 농경사회에서는 공동체적 생활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한 목표였다. 그리하여 혼자만을 생각하는 것이 이기적인 행동이고 잘못된 것이라고 여겼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약간의 손해와 배려를 늘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떤 경우에는 서운함을 견뎌내지 못하고 토로하는 사람에게 배려가 부족하다는 질타를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힘들고 어려운 상황이 지나고 나면, 내가 했던 마음고생을 공동체 일원들이 알아주고 보상해 주었다. 그러기에 갈등과 분노 혹은 서운한 마음이 있어도 참는 노력을 했고, 이러한 생각과 행동이 공동체 유지를 위한 당연한 행동 범주에 속했었다.
그렇다면 현재의 삶에도 이런 생각과 행동을 적용하는 것이 맞는 것일까? 공동체 사회가 사라진지 오래다. 산업화에 이어 신자유주의라는 새로운 사회현상이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을 하루가 다르게 변화시키고 있다.
사람들은 ‘좀 더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 홀로 뒤쳐지지 않기 위해 일각을 쉬지 못하며 정신없이 살아가고 있다. 몸만 쉬지 못 하는 것이 아니다. 남들보다 앞서야 한다는 위기의식에 자기계발이라는 명목으로 자는 시간을 쪼개가며 끊임없이 변화하려 달려가고 있다. 성공이라는 사회 공동의 성취동기는 사람들을 극성스러운 개인주의로 내몰고 있으며, 주변을 돌아보고 함께 고민을 들어줄 단 일분의 여유조차 주지 않는다. 휴식과 위로가 없는 나날의 연속인 셈이다.
그러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남들과 다르면 안 된다는 생각에 시류에 끌려가는 상반되는 상황에서 마음은 불안과 불편함으로 고생중이다. 여전히 공동체적 관습에 메여있는 것이다.
그런데 공동체 속에서 존재가치의 인정과 소통을 나누던 삶과는 전혀 다른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과거의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을 고수하는 것이 과연 맞는 것일까? 어쩌면 제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입고 가면놀음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지금 우리에는 필요한 것은 현재를 살아가는 데에 필요한 알맞은 행동과 사고방식, 문화의 전환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변화해야 할까? 고민의 첫걸음인 갈등의 원인부터 살펴보면 될 것이다. 내가 지금 겪고 있는 불만과 고민의 시작은 어디에서 왔는가? 내 안의 갈등 즉, 기준점이 나인 생각과 행동을 실현하고 싶은데 타인과의 관계에 얽매여서 하지 못해 생긴 고민병인 것이다. 답답병인 것이다.
그러니 원인을 바꾸면 결과가 바뀌듯이 내가 기준이 되어 생각한 대로 살면 고민병은 말끔히 해소될 수 있다. 즉 타고난 나의 성품을 원칙으로 삼아 행동하라는 뜻이다.
혹자는 이 말을 들으면 이기주의를 떠올린다. 그러나 여기에 언급한 내 기준의 바탕은 사리사욕(私利私慾)이 아니다. 나의 타고난 본성(氣質)에 기대어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사고는 이익에 근거를 둔 이기주의와 엄연히 다르다. 본성(本性)이라 함은 선악(善惡)이나 시비(是非)의 개념이 내포되어 구분된 것이 아니다. 그저 타고난 바 즉 기질(氣質)인 것이다.
함께 살아가는 세상에서 혼자만의 생각을 주장하는 것이 선(善)이라고 말한다면 이기주의자라는 비난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렇지 않다. 자신의 본성이 가리키는 느낌과 판단을 믿고 행동하는 것이 긍정적인 결과를 낳는다. 오히려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시선 때문에 포기하면서 생기는 내 안의 부정적 감정과 분노를 감당하고 조절하기 위해서 소비되는 나의 감정노력이 더 큰 손실이다. 『중용(中庸)』을 보면, 도와 본성을 따르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天命之謂性 率性之謂道 修道之謂敎
이 세상의 원리가 곧 나의 본성이고
본성을 따르는 것이 도이며
도를 잘 연마하는 것이 바로 공부이다.
『중용(中庸)』 제1장 中
사실, 도(道)는 하나이기에 나의 본성과 세상의 이치가 다르지 않다. 그렇기에 도(道)에 맞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 본성을 가리지 않고 이를 따르는 것이 바로 도리에 맞는 삶인 것이다. 본성을 중시하는 것이야 말로 천리(天理)에 순응하는 삶이라고 볼 수 있다. 다만, 본성을 따르는 삶을 사는 데 있어서 주의해야 할 것은 반드시 도를 잘 연마하는 것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연마되지 않은 자신의 생각이 본성의 발현이라고 자칫 착각하여 행동하는 것의 위험성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할 수 있다. 본래 진면목을 갖고 있는 나(我)로서 본성을 견지하고 그에 의지하면 바른 삶을 살아갈 것이다. 그러나 인연과 업에 의해 몸에 배어진 오랜 습(習)과 근본적인 욕망에 치우쳐 그릇된 생각과 삿된 판단으로 잘못 생각하고 행동하게 된다. 그 결과 타고난 자성으로부터 멀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를 바꾸기 위하여 성심을 다하여 쉬지 않고 수행함으로써 자성을 견지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더 나아가 현실에서의 삶에 다름에 대한 타인의 걱정과 비난 혹은 비웃음에 대한 감정소비를 과감히 떨쳐버리면 또 다른 도전의 세상이 열릴 것이고 내 본성대로 살아가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본성대로 살아가는 자신을 대면할 때, 자기 결정권이 갖는 행복감을 맛볼 것이다.
본성을 바탕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며 그 결과를 겸허히 수용하는 연습을 하여야 한다. 또한 지금 나의 생각과 행동이 과연 본성(性)에 맞는 것인지에 대하여 늘 철저히 자기를 점검하여야 한다. 이것이 수행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수행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일상에서 작은 한 생각들을 실천하는 것이 바로 수행인 것이다. 돌이켜 참회하고 생각하며 정확하고 알맞은 표현을 연마하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자.
늘 못해본 일과 못가본 길로 인해 우리는 늘 아쉬워한다. 그러기에 본성대로 사는 연습을 하면, 과거와 현재, 내 삶에 대한 아쉬움이 더 이상은 없을 것이다. 또한 수행의 경험치가 쌓여 내 삶의 지혜를 이룰 것이다.
고였던 물이 한 방울씩 움직여 시냇물을 만나 강으로 스며들어 흘러가면 어느새 큰 바다에 도달해 있는 것처럼 관습과 문화, 타인의 시선에 갇혔던 삶을 본성대로 사는 삶으로 한걸음씩 내딛는 수행하다보면 어느새 큰 도에 이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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