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 정서 복지 초석이 될 불교 선명상”
유기준 상지대 교수요즈음 1977년 출판된 경제학자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의 <불확실성의 시대>를 다시 꺼내서 뒤적이고 있다. 내가 경제학 관련 깊은 지식은 없지만, 그의 현대사회 특성이라는 ‘불확실성’의 그늘이 단순히 경제적 문제를 넘어 우리 사회 전반 그리고 생애주기의 전(全) 세대로 확장되고 있음을 체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사회를 주도하는 지도 원리가 사라진 불확실성 시대”라는 지적과 “불확실한 미래라는 건 사람의 마음에 커다란 불안감과 우울증을 심을 수 있다”는 말이 더욱 걱정과 염려로 다가온다.
최근 우리 사회의 인구 구조적 문제에 따른 심각한 출산율 저하, 생산 인구의 감소, 초고령화 시대 진입 그리고 이에 따른 지역소멸의 위기는 경제·사회·문화·환경 그리고 지역적 문제로 연결돼 국민과 국가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그동안 이기적인 자원 남용의 반대급부로 돌아와 인류 삶의 터전을 위협하는 재난과 기아 등 기후 위기의 위험, 혁신 기술의 급속한 발달로 문명의 혜택 수혜와 동시에 부과되는 사회·경제·윤리적 부작용인 기술혁명의 그늘이 또한 인간의 존재와 인류의 존속을 크게 위협하고 있다. 인류가 직면한 복잡하고 다양하고 또한 예측할 수 없는 불확실성 시대의 위기는 개인의 불안과 고통의 사회적 스트레스를 낳고, 이는 사회적 상처가 되고 또 사회적 우울증이 되어 대중의 정서적 위기로 확산·확대된다.
불확실성을 넘어선 최근의 ‘초불확실성 시대’의 경제적·사회적·문화적·환경적 위기감으로 인한 대중의 사회적 스트레스와 상처라는 이 정서적 질병은 과연 누가 어루만지고 치유해 줄 것인가? 물론 국민의 정서적 안정을 돌보고 국민 삶을 보호하는 일차적 책임과 의무는 국가에 있다. 국가는 극단의 불확실성 시대에 안정적인 경제·사회·환경·정치적 대응으로 국민의 정서적 안정과 삶을 돌보고 이를 기반으로 국민통합과 국가 경쟁력을 키우는 것이 분명한 역할이고 기능이다.
국민소득 3만5000불 시대를 살고 있는 이제는 국민 자존감을 지킬 수 있는 정서 관리를 통한 국민 행복을 세심하게 살펴봐야 할 시점이다. 경제 성장 중심의 정책에 초점을 두고 모두가 쉼 없이 달려왔지만, 이쯤에서 국민 정서적 안정에 대한 모두의 고민과 숨 고르기가 필요할 듯하다. 국민의 정서적 안정에 대한 국가와 국민의 관심이 곧, 정서 복지의 시작이다.
종교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공감·공유의 인류 보편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또한 경제, 정치 분야에서 다룰 수 없는 대중의 정신문화와 정서적 부분을 오랫동안 담당해 온 종교만의 특별한 가치도 있다. 이러한 가치성으로 종교는 대중의 스트레스, 갈등, 소외 등 현대 사회문제 해결의 영향력을 갖고 있기도 하다. 어쩌면 종교가 지닌 이러한 특별한 가치는 지금 우리 사회가 앓고 있는 정서적 질병을 어루만지고 치유할 수 있는 사회간접자본으로서 종교의 역할과 기능을 기대하게 한다.
나는 불교가 지닌 전통성과 역사성 그리고 종교로서 보편적 기능과 가치를 떠나, 불교의 최고 가치라고 할 수 있는 ‘선(禪)명상’의 정신·정서적 불안과 고통에 대한 치유력과 회복력에 주목하고 있다. 나아가 불교 유산으로서의 선명상이 지닌 공익적 가치성과 확장성에 더욱 더 특별한 의미를 두고 있다. 한국불교는 대중들 삶의 근간으로 우리 일상생활과 밀접한 연계성을 가지고 발전해 왔다. 우리의 전통 종교로서 한국불교의 역사·문화적 중요성은 이미 세계적으로 그 가치와 기능이 인정받고 있음은 물론이다.
나는 이와 함께 우리 불교의 장소적 가치와 정서적 가치 또한 매우 중요한 의미와 기능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불교 사찰이 입지한 생태적 장소성과 마음챙김의 정서적 교감성은 불교의 중요한 생태적·정서적 유산으로 그 가치가 재조명되고 재정립되어야 한다. 사찰림, 순례, 선명상, 사찰음식, 복합적인 요소로서 템플스테이 등이 대표적인 생태적·정서적 유산의 사례이며 대중의 사회적 상처와 정서적 치유를 위한 공익적 가치를 지닌 유산이며 자산이다.
따라서 불교 유산은 단지 종교적 자산만이 아닌 공공선 기능의 사회적·정서적 자산으로 이에 대한 모두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특히, 불교의 대표적인 정서적 유산 및 자산인 선명상은 아직까지 대중을 위한 공익적 가치로서 미흡한 대중의 인식과 활용 수준이 매우 아쉬운 부분이다. 선명상의 공익적 가치를 더욱 높이는 것은 무엇보다 수행자와 불자 중심의 수행과 더불어 대중의 보편적 가치로의 확산에 달려있다.
현재 우리 사회는 각종 사회적 병폐 등 다양한 불확실성의 사회적 스트레스로 인해 대중의 사회적·정서적 질병 관리라는 긴급한 공공 수요가 형성되어 있다. 반면 불교는 불교 유산이 지닌 정서적 가치와 기능, 관련 시설로서 물리적 자산, 그리고 인적 자원 요소들 등 대중의 정서 치유 서비스 수용에 대한 공급 요소의 기본 구조를 갖추고 있다. 이는 우리 사회의 정서적 치유 관련 사회적 수요와 불교의 공급 기능의 정합성을 의미한다. 결국 불교가 지닌 정서적 유산은 대중의 정서 관리를 위한 기본적인 틀을 이미 형성하고 있다. 다만 선제적이고, 적극적인 혁신을 통해 ‘대중 누구나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선명상 대중화를 위한 구조를 어떻게 만들고, 어떻게 정착시킬 것인가?’가 관건이다. 선명상의 대중화가 우리 사회에 활기를 불어넣고, 성장을 촉진 시켜 사회 안정의 극적인 전환을 이룬다면, 이는 곧 선명상이 성장의 문화로 우리 사회에 자리 잡게 되는 것이다.
선명상 대중화는 대중들이 가정, 학교, 직장, 휴가지 등 일상에서 자유로운 시간에, 자유로운 활동으로서, 자유 의지로 선명상을 행할 수 있음을 전제로 한다. 이를 위해, 공급자로서 불교는 선명상의 대중화의 제약 또는 한계 요인에 대한 자체적 점검과 개선이 필수적이다. 몇 가지 제약 요인을 제시하면 첫째, 선명상은 부처님께서 직접 경험했던 깨달음과 열반으로 행하는 실천 수행 방법으로 수행자 중심의 관념성, 추상성, 전문성 요인들에 대한 일반 대중의 접근을 위한 구조로의 변환이 필요하다. 둘째, 선명상의 대중적 수행도 역시 학습을 통한 가치 전달과정으로 일반 대중에게 보다 쉽고 용이한 학습과 전달 방식이 필요하다. 셋째 수용자들의 다양성에 대한 생애주기 세대별 맞춤성을 확보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대중을 위한 선명상은 삶의 방식으로서 실천과 습관화가 매우 중요한 부분으로 아를 위한 시설과 프로그램의 수용자(대중) 연결성과 접근성 등에 대한 체계적 검토가 또한 필요할 것이다.
불확실성의 위기 확대와 문제해결 능력 약화는 대중의 정서적 혼란과 사회적 혼란을 초래할 수 있고 방치할 경우, 상상을 넘는 사회 구조적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 이 어려운 사회 상황을 반전의 기회로 삼아 대중의 사회적·정서적 질병을 관리해야만 한다. 이것이 바로 국민 행복이고, 사회 통합이며, 국가의 경쟁력이다. 국민의 행복 관리는 국가의 책임과 의무이지만 국가만이 해결할 수는 없다. 사회간접자본 가치를 지닌 종교도 대중의 사회적·정서적 혼란과 불안정 회복이라는 사회적 가치 향상의 중요한 동력원으로서 역할이 필요하다.
국가의 경제적 수준, 국민 삶의 수준, 그리고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사회적 복잡성과 다양성을 고려할 때, 대한민국 국가 차원의 정서적 복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분명 필요한 시점이다. 대중의 정서적 고통과 불안의 치유가 곧 정서적 복지의 시작이고, 불교 선명상 대중화는 대한민국 정서형 복지에 초석을 놓을 수 있는 일이다. 대중의 정서적 안정과 사회적 불안 치유를 위한 불교 선명상의 대중적 접근은 불교의 사회적 가치 확대이고, 종교 정의의 정립이며, 나아가 자연스러운 포교 가치의 실현이다. 대중의 정서적 질병을 치유할 수 있는 선명상 대중화에 대한 종단의 노력과 함께 불교 유산의 공익적 가치 구현에 대한 국가의 협력과 지원 그리고 국민의 불교 유산 가치에 대한 인식 전환은 초불확실성 위기에 대한 사회 대응력을 갖추는 것이다. 이는 곧, 우리 삶의 정상적인 회복이다.
[불교신문 3764호/2023년4월1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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