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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가치소비자다” MZ세대가 사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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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연 선임기자 jypark@kyunghyang.com

 

동물권과 환경 의식 3인3색의 일상

서울 홍제동에 사는 김슬기씨(38)의 하루는 오전 7시에 시작된다. 입욕 후 몬스테라, 필로덴드론 등 80여개의 화분에 물을 주고 우유, 온유, 두유, 본드, 귀동이라는 이름의 다섯마리 고양이에게 먹이를 준다. 모두 길냥이들이다. 우유는 동네 꼬마들이 공사장에서 구출했지만 안락사 운명에 처한 아이였고, 두유는 직장동료가 홍수 때 휩쓸려가는 걸 구해온 녀석을 데려다 키웠다. 나머지도 떠돌거나 유기동물보호소에서 데려온 아이들이다.

김슬기씨가 서울 홍제동 자택에서 화초에 물을 주고 있다. / 송호근

김슬기씨가 서울 홍제동 자택에서 화초에 물을 주고 있다. / 송호근



사료 값만 한달에 30만원가량 들지만 회사에서 매달 5만원씩 주는 반려동물을 위한 수당이 도움이 된다. 그가 재직 중인 러쉬코리아에선 1년에 한 번씩 사내에서 여는 비혼식에 참가한 직원에게 축의금으로 50만원과 반려동물 수당을 지급해준다. 결혼하고 출산한 직원과 복지 측면에서 형평성을 맞춰주기 위한 배려다. 김씨는 “10년 전 러쉬코리아 채용 파티에 참가했을 때 20명 정도의 지원자들이 동시에 면접을 봤다”며 “그 자리에서 내가 성소수자임을 밝혔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에서는 동성 결혼이 합법화돼 있지 않은데다 굳이 결혼제도 안에 갇히고 싶지 않아 2년 전 비혼식에 참가했다”고 했다.

그의 방과 욕실에는 동물성 재료가 가미되지 않았고 동물실험도 거치지 않은 제품들만 있다. 화장품이나 세제 하나를 골라도 꼼꼼히 따진다. 용기도 자연에서 분해되는 친환경 소재로 제작된 것이어야 선택한다. 미심쩍은 경우엔 직접 제조사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어 동물실험 및 동물성 재료 가미 여부를 확인하기도 한다.

김슬기씨가 일요일인 지난 8월 1일 서울 양재동 비건요리학원에서 비건 베이커리를 만들고 있다. / 임대혁

김슬기씨가 일요일인 지난 8월 1일 서울 양재동 비건요리학원에서 비건 베이커리를 만들고 있다. / 임대혁



플라스틱 용기 줄이려 배달음식 끊어

플라스틱 용기를 줄이려 배달음식도 끊었다. 코로나19 확산에 따라 요즘 재택근무 중인 김씨는 “예전에는 배달음식을 많이 주문해 먹었는데 재택근무로 집에 있는 시간이 대부분이다 보니, 배달음식으로 인해 플라스틱 용기가 많이 나오는 것을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그래서 “요즘엔 직접 장을 봐 집에서 손수 조리해 먹는다”고 했다.

일요일은 그가 서초구 양재동의 비건 요리학원에 가는 날이다. 비건(Vegan)은 육류는 물론 생선, 알, 유제품, 꿀 등 동물로부터 유래한 식품은 모두 먹지 않는 사람을 말한다. 이곳에서 그는 매주 1회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비건 베이커리 만드는 법을 배운다. 동물을 노동 착취·학대하거나 동물성 원료를 안 넣은 빵이다. 꿀 대신 설탕을 사용하는 식이다.



김씨는 비건은 아니다. 간헐적으로 비건을 실천하는 플렉시테리언(Flexible +Vegetarian)이다. 김씨는 “환경과 동물권에 대한 관심이 크지만 오랫동안 육식을 해온데다 직장 동료들과 외식할 때도 육류가 안 들어간 음식이 거의 없어 당장 육류 섭취를 끊지는 못한다”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가능하면 식물성 푸드 섭취를 실천하려 노력하고 있다”며 “대중교통을 이용해 왕복 3시간씩 걸리는 비건 요리학원에 다니는 것도 그런 노력의 일환”이라고 설명했다. 출근할 때도 가끔 도시락을 싸간다는 김씨는 “식당에 아주 매운 맛은 고추 3개, 조금 매운 맛은 고추 1개의 표시가 있듯 비건, 오보(Ovo), 페스코(Pesco) 등 유형별 채식주의자들을 위한 별도의 표시가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오보는 육류와 생선, 유제품은 먹지 않지만 동물의 알은 먹는 사람을, 페스코는 해산물과 동물의 알, 유제품은 먹는 것을 말한다. 김씨는 “비건들도 극단적으로 타인에게 고기를 먹지 말라고 요구할 게 아니라 축산업으로 살아가는 농가 문제는 어떻게 할지 등을 같이 고민하며 방법을 모색하는 논의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채식에 운동 함께하니 몸이 확 달라져

육식 대신 ‘채식 또는 식물성 푸드를 지향’하고 ‘가치소비’를 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전 세계적으로 일고 있다. 한국에서도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한 밀레니얼 세대와 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 출생한 Z세대를 통칭하는 용어)를 중심으로 이런 흐름이 확산되고 있다. 가치소비는 자신이 지향하는 가치를 포기하지 않는 대신 가격이나 만족도 등을 세밀히 따져 소비하는 성향을 말한다. 대학내일20대연구소가 전국 만 15세 이상 40세 이하 남녀 900명을 대상으로 지난 1월에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MZ세대 3명 중 1명(27.4%)은 일상에서는 비채식 위주로 먹고 필요에 따라 채식하는 ‘간헐적 채식’을 실천하고 있다. 채식을 실천하는 MZ세대 중에는 붉은 고기(소·돼지)만 섭취하지 않는 폴로(33.1%)가 가장 많았고, 그 뒤를 오보(13.5%), 비건(11.7%)이 차지했다.

조영지씨가 비건식당에서 사온 버거를 먹고 있다. / 조영지씨 제공

조영지씨가 비건식당에서 사온 버거를 먹고 있다. / 조영지씨 제공



그리고 이들의 상당수는 일상에서도 동물권과 환경을 생각하며 물건을 고르고 소비하는 행동을 보이고 있다. 같은 조사에서 음식 주문 배달 시 친환경 포장 용기를 사용하는 브랜드 선호도는 5점 만점에 평균 3.91점으로 상당히 높은 점수로 나타났다.

미국 뉴욕에 있는 한 디자인기업에 취직해 곧 출국을 앞둔 조영지씨(31)는 비건이다. 조씨는 “2년 반 전 악화된 건강 때문에 올바른 식품관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전까지만 해도 조씨는 식탐이 많았다. 고기가 빠지면 밥을 안 먹을 정도로 육식을 좋아했고 가공식도 즐겨 먹었다. 야식을 먹고 잠드는 날도 많았다. 당시 키 163㎝에 체중은 75㎏이었다. 늘 무기력하고 피곤함을 느꼈다. 그는 “안 되겠다 싶어 SNS를 통한 다이어트 코칭 프로그램에 따라 간과 조리과정을 최소화한 자연식물식 섭취와 간헐적 단식을 병행했다”고 말했다. 양 제한 없이 채소, 과일을 먹었고 현미와 옥수수, 감자도 섭취했지만 고기와 생선은 물론 달걀, 우유도 안 먹었다. 명동에 위치한 직장에서부터 약수동 자택까지 걸어 퇴근하는 등 운동까지 병행하니 150일 만에 22㎏이 빠져 53㎏이 됐다. 몸이 가벼워지고 체취도 달라졌다. 그는 “몸의 이런저런 염증도 사라지고 생리주기도 규칙적으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조씨는 “요즘은 비건으로 살아가는 데 크게 불편함이 없다”고 말한다. 2년 전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웠던 비건 메뉴가 프랜차이즈인 롯데리아, 버거킹 등 외식업계에 속속 등장하고 CU 등 편의점에도 종종 비건 간편식이 보이기 때문이다. 조씨는 “제가 있는 위치로부터 전방 몇㎞에 비건식당이 있는지 등의 정보를 알려주는 ‘채식한끼’라는 앱이 있어 낯선 동네에서도 굶지는 않겠다는 생각에 든든하다”고 말했다. ‘채식한끼’는 비건들의 정보공유 커뮤니티로 시작했다가 지난해 7월부터는 자체 온라인 쇼핑몰(www.hanggi.kr)도 운영 중이다.

동물권과 환경을 생각해 만든 제품들/ 러쉬 제공

동물권과 환경을 생각해 만든 제품들/ 러쉬 제공



조씨는 비건레스토랑도 자주 이용한다. 그곳에서 대체육을 이용한 요리를 즐겨 먹는다. 지난 7월 28일에도 점심은 비건이 아닌 친구와 함께 서울 용산구의 ‘바이두부’에서, 저녁은 방배동의 ‘남미 플랜트랩’에서 먹었다. 조씨는 “오랫동안 비건인 친구들은 고깃덩어리를 봐도 먹거리로 안 보이고 동물 사체의 일부로 보이며 냄새도 역겹다고 하는데 저는 그렇지 않다”며 “원래 고기를 좋아했기 때문에 고기냄새가 맛있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그는 “그럴 때 대체육을 이용한 음식을 먹으면 욕구가 가라앉는다”며 “요즘은 모양과 맛과 향이 실제 고기와 대체육이 크게 다르지 않아 만족스럽다”고 했다.

그는 “심리적 편안함도 자연식물식 섭취가 준 선물”이라고 말했다. 처음에는 건강을 위해 시작했지만 점차 지구환경과 동물권에 대해 눈을 뜨면서 자신이 공익과 생명권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에 스스로 안도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 결과 조씨 역시 일상에서의 가치소비를 중시한다. 그는 항상 넉넉한 가방을 들고 다닌다. 가방 안에는 빈 도시락통과 텀블러가 들어 있다. 편의점 등에서 주는 비닐봉지 대신 가방에 넣고, 빵이나 커피 등을 구매할 때는 도시락통과 텀블러에 담아오기 위해서다. 당연히 음료를 마실 때도 빨대는 사양한다. 물티슈도 되도록 안 쓰려고 노력한다. 모두 분해가 안 돼 지구에 부담을 주는 플라스틱 쓰레기를 줄이기 위함이다. 그는 “제 주변에는 고기는 포기하지 못해도 동물성 성분이 포함 안 된 화장품만 쓰는 등의 노력을 하는 친구들은 많다”며 “조금만 부지런하면, 또 조금만 내려놓으면 우리가 사는 공동체를 위한 일에 일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니스프리 제공

이니스프리 제공



일회용품 줄이며 가치소비 실현

서울외고 2학년에 재학 중인 이기윤군(17)은 페스코(Pesco)다. 즉 소와 돼지 등 붉은 고기는 안 먹지만 해산물과 동물의 알, 유제품은 먹는다. 이군은 중학교 2학년 때까지만 해도 고기를 무척 좋아했다. 그의 이런 식성이 바뀐 계기는 대안학교 입학이었다. 초등학생 때 미국으로 건너가 9학년까지 다니고 2019년 귀국한 그는 중3 시절을 인천시 강화군에 소재한 기숙 대안학교에서 보냈다. 학교에서 육식과 동물권, 축산업의 실태와 환경오염 등의 상관관계에 대해 배우는 시간이 있었다. 학생들 사이에서 “실상이 그렇다면 우리도 채식을 실천해보자”는 움직임이 일었다. 전교생 30명 중 절반이 동의했다. 이들은 학교에 채식 메뉴를 건의하고 비건이 됐다. 이군은 “채식을 실천하니 속이 편안해지고 체력도 오히려 좋아졌다”며 “고등학교에 입학하니 학교에 채식 식단이 따로 없기 때문에 비건 생활에 어려움이 있어 타협점으로 페스코를 선택했다”고 말했다. 그는 “처음 육식을 끊었을 때는 고기 먹고 싶은 욕구를 의지로 참았지만 지금은 봐도 먹고 싶지 않다”며 “유통과정 등에서 벌어지는 동물권의 침해가 자동으로 먼저 떠오르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군의 어머니도 아들의 생각에 동의하면서 가족의 식단엔 육식이 전혀 올라오지 않는다.

가치소비를 실천하는 게 있냐고 묻자 이군은 “일회용품을 줄이기 위해 텀블러를 들고 다니고, 배달음식을 주문할 때도 일회용 수저는 가져오지 말라고 한다”고 말했다. 그는 “가방 속에도 항상 쇠젓가락을 넣고 다닌다”고도 말했다.

몽쥬르 제공

몽쥬르 제공




MZ세대, 건강과 윤리·환경 중요시

MZ세대의 이러한 움직임의 기저에는 ‘건강’, ‘윤리’, ‘환경’에 대한 의식이 있다.

MZ세대인 이지연 동물해방물결 대표는 “한국에서 최근 2~3년 사이 동물권 운동이 활발해지고 축산으로 인한 동물들의 고통에 대한 정보도 많아지면서 이에 대해 공감을 많이 하는 세대가 MZ세대”라고 말했다. 그는 “이들이 좀더 환경친화적이고 동물들에게 폐가 덜 되는 방향의 의식 있는 선택을 하려 하면서 이것이 식생활의 변화는 물론 동물성 제품이나 서비스도 소비하지 않으려는 생활양식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여기에 반려견·반려묘 등 반려동물 가구가 크게 늘어난 것도 동물권에 대한 인식이 높아진 이유라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과거와 달리 강아지와 고양이를 가족의 일원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증가하면서 다른 동물의 생명에 대한 인식도 크게 제고됐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온라인을 통해 탈육식하려는 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정보를 쉽게 접할 수 있는 것도 이러한 인구 증가의 한 요인”이라고 말했다.

아로마티카 제공

아로마티카 제공



MZ세대 중심의 채식 또는 식물성 푸드 지향과 윤리적 소비는 환경 파괴에 대한 경계심이 높아진 것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축산업은 기후위기의 주된 요인으로 꼽힌다. 전 세계적으로 교통수단에서 13%, 축산업에서 18%의 온실가스가 배출되고 있기 때문이다. 축산업의 온실가스 주범은 메탄가스인데, 메탄은 주로 소 같은 반추(되새김)동물의 장내 발효 과정과 소, 돼지, 닭의 분뇨 처리 과정에서 나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고기를 얻기 위해 지난 50년간 전 세계 열대우림의 3분의 2가 파괴됐고, 1960년 이후 가축 방목지와 가축 사료 재배를 위해 아마존 열대우림의 70%가 사라졌다. 윤순진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폭염과 초대형 산불, 기록적 홍수, 한파, 폭설 등 지구온난화에 의한 참사가 전 세계적으로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있는 데 대한 경각심이, 특히 젊은층일수록 강하다”며 “기후위기 대처 방안으로 식생활 개선에 나서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윤 교수는 또 “이들은 플라스틱 쓰레기 대란, 바다로 흘러들어간 플라스틱 쓰레기로 인한 해양동물들의 고통, 또 그로 인해 결국 인간이 미세플라스틱을 섭취해 건강을 해친다는 정보 등을 다른 세대보다 더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며 “그 결과가 가치소비로 이어지고 있다”고 해석했다.

< 박주연 선임기자 jypark@kyunghyang.com>

원문보기: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dept=115&art_id=202108091410051#csidx1d210b5569ab3528e8c08eecedec7f5 onebyone.gif?action_id=1d210b5569ab3528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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