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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이날’] 한국의 유엔 가입, 42년이나 걸린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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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부터 2011년까지 10년마다 경향신문의 같은 날 보도를 살펴보는 코너입니다. 매일 업데이트합니다. 

[오래 전 ‘이날’] 한국의 유엔 가입, 42년이나 걸린 이유

■1991년 4월8일 ‘8전 9기’ 유엔 가입
한국은 현재 유엔에서 가장 활발한 활동을 하는 나라 중 하나입니다. 각종 구호 활동은 물론 국제평화유지활동에도 적극적으로 나서는 편이죠. 지난 2006년엔 자국 출신 유엔 사무총장을 배출했고, 2015년엔 유엔 경제사회이사회의 의장국을 맡기도 했습니다. 국제 사회에서의 한국의 위상을 생각할 때 그다지 놀라운 일은 아닙니다. 그런데 불과 30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은 유엔에 가입조차 못했던 나라였다는 걸 아시나요? 

30년 전 이날 경향신문에는 “‘유엔 가입 신청’ 안보리 통보”라는 기사가 실렸는데요. 게재 시점 하루 전인 그해 4월7일 “한국은 오는 9월 유엔 총회가 시작되기 전에 유엔 가입을 위한 신청서를 제출할 것”이라고 밝혔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또 “한국은 이에 앞서 지난 5일 안보리 의장에게 보낸 각서”에서 “한국은 올해 중이라도 남·북한 양측이 유엔에 동시 가입하기를 희망하고 있다”며 “대한민국의 유엔 가입은 더 이상 지체 없이 실현돼야 한다는 게 국제사회의 인식”이라고 강조했다고 합니다. 

당시 한국은 선진국은 아니었지만 유엔에 가입조차 못할 정도로 국력이 미미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당시 한국 정부가 유엔 가입을 위해 각서까지 써야 했던 이유가 기사에 짧게 소개돼 있는데요. “한국은 지난 1975년 등 모두 8번에 걸쳐 유엔 가입 신청을 했으나 이 가운데 4번은 소련의 거부권 행사로, 다른 4번은 안보리가 아무 행동도 취하지 않아 가입이 불허됐었다”라고 전합니다. 

1991년 4월8일자 경향신문.

1991년 4월8일자 경향신문.

외교부에 따르면 한국이 처음으로 유엔 가입을 시도한 때는 한국전쟁이 발발하기도 전인 1949년 1월입니다. 그 다음달 안전보상이사회 안건으로 한국의 유엔 가입 문제가 올라갔지만, 소련의 거부권 행사로 부결됩니다. 아시다시피 소련은 당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상임이사국이었습니다. 상임이사국 만장일치제로 운영되는 안보리에서 소련의 반대는 매번 한국의 발목을 잡았습니다. 같은 해 11월 한국의 유엔 가입 신청에 대한 재심 논의가 진행됐지만 소련에 의해 또다시 발목이 잡혔고, 한국전쟁 후인 1955년, 1956년, 1958년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 때문에 한국은 그 이후로 한동안 유엔 가입 노력을 중단하기에 이릅니다. 소련이 반대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적어도 공식적인 이유는 ‘한국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아서’였습니다. 

한국이 첫 유엔 가입신청서를 내기 한 해 전인 1948년 유엔 총회에선 한국을 한반도 내의 유일한 합법 정부로 승인하는 결의가 채택됩니다. 덕분에 한국 정부는 이듬해 한반도 내의 유일한 합법 정부로서 남한의 유엔 단독 가입을 시도합니다. 그러나 소련은 반대합니다. 북한을 한반도 내의 유일한 합법 정부로 인정하고 있었던 소련은 남한의 유엔 가입에 찬성하면 ‘남한을 국가로 인정하는 꼴’이 된다며 거부권을 행사한 것입니다. 

남한 단독으로는 유엔 가입이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 지속되자 한국 정부는 1973년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으로 방향을 틀게 됩니다. 그러나 당시 북한은 ‘남·북한이 따로 유엔에 가입할 경우 분단을 고착화한다’며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소련 역시 여전히 한국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1975년 또 한번의 가입 시도 또한 좌절됩니다. 한반도에 분단선을 그은 강대국 중 하나인 소련이 그 분단선을 빌미로 유엔에의 가입마저도 막은 셈입니다. 

그러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즈음해 소련의 입장에 변화가 생깁니다. 당시 탈냉전 기류에 힘입어 서울 올림픽에는 미국 등 서방 세계는 물론 소련 등 동구권 국가들까지 함께 참여했죠. 한국 정부도 북방외교를 통해 1989년 동구권 국가들과 잇따라 외교관계를 수립하고 1990년 9월엔 소련과도 수교를 하게 됩니다. 그해 중국과도 무역 대표부 설치에 합의하죠. 

당시에도 북한은 ‘통일 후 단일 국가로 가입’을 고집했지만 한국 정부는 유엔 가입 이후 통일을 이뤘던 독일과 예멘의 예를 들며 반박했고, 결국 기사가 게재된 지 한 달 반 가량이 지난 후인 1991년 5월27일 북한도 유엔에 가입하겠다는 뜻을 밝힙니다. 그리고 그해 9월17일 남한이 161번째, 북한이 160번째로 유엔에 동시 가입하게 됩니다. 이후 한국은 1995년 안보리 비상임 이사국으로 선출되고, 2001년엔 유엔 총회 의장국을 맡는 등 빠르게 입지를 넓혀나갔습니다. 

남북한 유엔가입을 승인하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제30차회의. 경향신문 자료사진

남북한 유엔가입을 승인하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제30차회의. 경향신문 자료사진

그런데 말입니다. 그토록 어렵게 이룬 ‘유엔 가입’, 한국의 위상을 높이는 데엔 효과가 있었겠지만 한국의 안보에도 도움이 될까요? 역설적이게도 한국이 UN군의 도움을 받았던 한국전쟁 당시 한국은 유엔 회원국이 아니었습니다. 또한 소련·중국·미국 등 안보리 상임이사국들이 관련된 전쟁에 유엔군이 파병된 사례는 한국전쟁이 거의 유일하다시피했습니다. 당시 소련이 안보리에서 반대표를 던지는 대신 불참을 했고, 중국이 아닌 대만이 상임이사국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행운(?)은 그 이후엔 거의 일어나지 않았죠. 이 때문에 유엔은 강대국이 관계되지 않은 약소국 간의 분쟁에서만 ‘평화유지’를 하는 기구라는 비판을 받아왔습니다. 

유엔은 미얀마에서 군사 쿠데타가 발생한 지 두 달이 지나서야 겨우 규탄 성명 하나를 내놓았죠. 이번에도 혹시 뒤에 ‘강대국’의 이해관계가 버티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박용필 기자 phi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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