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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6시간 노동제’ 보리출판사의 실험]4시 칼퇴근 ‘오후가 있는 삶’…“회사요? 잘 굴러갑니다”파주 | 조미덥 기자 z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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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60   2015.06.21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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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철야 근무를 당연시하는 출판계 그 한가운데서 벌어진 실험
ㆍ2001년 주5일제를 도입한 윤 대표의 또 다른 ‘싸움’이었다.

2012년 대선에서 민주통합당 대선후보 경선에 나선 손학규 후보의 ‘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캐치프레이즈가 화제가 됐다. 야근이 일상화된 한국 직장인들에게 저녁 시간을 돌려줘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큰 공감을 얻은 것이다. 근로기준법에는 ‘하루 8시간 근무’가 보장돼 있지만, 현실에서 ‘저녁 6시 칼퇴근’은 꿈만 같은 일이다. 한국인의 연간 평균 노동시간(2013년)은 2163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중 멕시코(2237시간)에 이어 2위고, OECD 평균(1770시간)에 비해선 393시간이나 많았다.

그런데 파주출판단지에는 오후 6시도 아니고 오후 4시면 ‘칼퇴’를 하는 회사가 있다. 철학자 윤구병 선생(72)이 대표로 있는 보리출판사다. 보리출판사는 2012년부터 오전 9시 출근해 오후 4시 퇴근하는 ‘하루 6시간 노동제’를 실험했다. 지난달엔 실험 3년을 맞아 ‘하루 6시간 노동제’가 성공적으로 정착했다는 보고서를 내놨다. 하루 6시간만 일하고도 회사가 굴러갈 수 있을까. 지난 16일 의구심과 궁금증을 안고 보리출판사를 찾았다.




‘하루 6시간 노동제’를 3년 전부터 실시하고 있는 보리출판사 직원들이 지난 16일 경기 파주시 파주출판단지에 있는 사옥 앞에 모여 출판사에서 출간된 책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정지윤기자 color@kyunghyang.com




■여유시간 줄이면 6시간 근무로 ‘충분’

오후 1시10분, 점심 식사를 마친 보리출판사 직원들은 이미 근무 모드에 돌입해 있었다. 예전 같으면 커피를 마시고 인터넷도 했지만 직원들은 ‘하루 6시간 노동제’ 시행 후 4시 안에 일을 마치기 위해 여유롭던 오후 휴식시간을 줄였다. 오후 3~4시에 자주 있던 간식타임도 사라졌다. 이를 아쉬워하는 직원들도 있지만 4시 퇴근의 꿀맛(?)에 비할 바가 아니라는 게 중론이다.

직원들은 6시간 내에 일을 마치기 위해 자발적으로 노력했다. 가장 먼저 여러 사람이 모이는 내부 회의를 줄였다. 각자 업무에 보다 집중하기 위해서였다. 작가나 외부업체와의 미팅은 가급적 업무시간 내에 하기 위해 사전에 계획을 세웠다. 주말에 하는 외부행사나, 신간이 나오면 으레 돌던 인사도 없앴다. 보리출판사는 “하루 6시간 노동제를 제안한 것은 회사지만 정착시킨 것은 노동자들 스스로의 노력”이라고 평가했다.

월간지나 단행본 마감을 앞두고 철야근무를 당연시하던 문화도 바뀌었다. 기획부 김성재 살림꾼은 “출판계에선 밤샘 작업이 당연한 관행처럼 이어져왔는데, 젊은 편집자들은 근무 형태가 바뀌니 금방 그에 맞춰 적응하더라”며 “안된다고 생각하지 말고 고정관념을 깨는 것이 중요하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오후 4시가 되니 월간지 ‘개똥이네 놀이터’의 마감(18일)을 앞둔 잡지팀과 디자인팀을 제외한 대부분의 직원들이 짐을 꾸려 퇴근했다. 직원들은 육아와 취미생활, 장보기 등 각자 퇴근 후 계획을 얘기하며 회사 문을 나섰다. 직원들은 “월간지 마감이 아니라면 해가 질 때까지 야근할 일은 없다”고 했다. 연장근로는 한 달에 18시간으로 제한되고, 그걸 넘으려면 상관에게 사유서를 제출해야 한다. 연장근로한 시간에 대해서는 수당을 주지 않고 대체휴가로 보상한다. 연장근로를 마음껏 늘리고 돈으로 보상을 받으면 ‘하루 6시간 근로제’ 취지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지난해 보리출판사 직원들의 연평균 노동시간은 연장근로를 합쳐 1417시간으로, OECD에서 네 번째로 노동시간이 적은 덴마크(1411시간)와 비슷했다. 편집부 김누리씨(30)는 “지금은 4시 안에 일을 마무리하도록 적응했고, 일이 조금 남으면 자발적으로 30분 정도 추가근무를 한다”면서 “다시 ‘8시간 근무’로 돌아가 6시까지 회사에 묶여 있어야 한다면 견디지 못할 것 같다”고 말했다.

■ 퇴근 후 취미활동 하거나 가족과 보내

‘오후 4시 퇴근’은 직원들의 ‘저녁’을 크게 바꿔놓았다. 오후 6시 퇴근할 땐, 몸이 아파 병원을 가거나 학부모로서 자녀 학교에 방문하기 위해 회사의 양해를 구해야 했지만 이젠 퇴근 후에 가도 넉넉하다. 남들 한참 일할 시간에 퇴근하니 교통체증도 피할 수 있다. 집이 멀어서 파주에 셋방을 얻어 살던 한 직원은 ‘6시간 노동제’를 시행하면서 서울 도봉구에서 집밥을 먹으며 출퇴근할 수 있게 됐다.





퇴근 후 운동이나 취미생활을 하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김용란 이사는 동네 주부 뮤지컬단에서 활동하면서 배우가 되겠다는 어린 시절 꿈을 이뤘다. 지난해엔 무대에 서서 정식 공연을 하기도 했다. 잡지팀 한 직원은 “6시에 퇴근하면 집에 가서 저녁을 먹기 바쁘지만 4시에 퇴근하면 영화를 한 편 봐도 저녁 먹을 시간이 남고, 영화관도 한산해서 좋다”고 말했다.

결혼한 직원들에겐 가족과 함께할 시간이 많아진 것이 가장 큰 소득이다. 김성재 살림꾼은 “예전엔 주말에 일주일치 장을 한꺼번에 보곤 했지만 요즘은 퇴근 후 아이들이랑 함께 자전거를 타고 가게에 가서 장을 본다”고 말했다.



배우자의 퇴근이 늦으면 본인이 어린이집에서 자녀를 데려오고, 퇴근 후 해가 지기 전에 아이들과 놀이터에서 놀아줄 수 있다는 것도 달라진 점이다. 두 아이를 둔 40대 초반 남성 직원은 “내가 일찍 퇴근해서 아이를 돌보는 만큼 아내는 육아에서 자유로울 수 있으니 6시간 근무가 우리 가족의 시간을 벌어준 셈”이라고 했다.

아직 내부에서 해결해야 할 과제도 있다. 예를 들어 디자인 부서는 업무량이 많다보니 디자이너 3명이 지난해 연장근로로 적립한 시간이 206시간이고 대체휴가로 쓰지 못한 적립 시간도 1인당 평균 30시간에 이른다. 영업팀에 많은 외근의 경우엔 시간 적립 기준을 마련하지 못해 외부에서 연장근무를 하더라도 시간 적립을 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특정 내근 부서에 혜택이 몰리는 부서 간 형평성의 문제다. 또 근무시간이 짧아지다보니 직원들 사이에 교류할 시간이 줄어들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보리출판사는 이에 대해 노사가 함께 해결 방법을 찾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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