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가진 것에 만족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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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7 2024.08.04 08:22
본문
네가 가진 것에 만족하라.
'무소유'와 같은 의미의 '공수래공수거'라는 말이 있습니다.
空手來空手去是人生 -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인생이여
生從何處來 死向何處去 - 날 때는 어느 곳에서 왔으며, 갈 때는 어느 곳으로 가는가?
生也一片浮雲起 - 나는 것은 한 조각 구름이 일어나는 것과 같고
死也一片浮雲滅 - 죽는 것은 한 조각 구름이 스러지는 것
浮雲自體本無實 - 뜬 구름 자체는 본래 실체가 없나니
生死去來亦如然 - 죽고 살고 오고 가는 것도 역시 이와 같도다
獨一物常獨露 - 그러나 여기 한 물건이 항상 홀로 드러나
湛然不隨於生死 - 맑고도 고요하여 생사(生死)를 따라가지 않네.
그러나 여기 한 물건이 항상 홀로 드러나 담연이 생사를 따르지 않네.
荀子 正論
얕은 것과는 더불어 깊은 것을 헤아릴 수 없고, 어리석은 자와는 더불어 지혜를 꾀할 수 없으며, 우물 안의 개구리와는 동해의 즐거움을 말할 수 없다.
인생이란?
생소한 길을 처음 가고 있는 나그네와 같은 것이 아닐까?
부지런히 한 눈 팔지 말고 걷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러나 이따금 높은 언덕에 서서 오던 길을 돌아다보며,
앞으로 갈 길을 살펴보아 방향을 바로 정하고, 크게 숨을 들어 마셔 새로이 기운을 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생부지사(生不知死) 생시사지변(生是死之變)
살았다는 것은 환상 아닌 것을 의미한다.
참으로 살았다면 삶과 죽음의 테두리 밖에서 생과 사의 참 모습을 알아야만 비로소 참으로 살았다고 할 수 있다.
만약 살아서 죽음 속의 일을 모른다면 그 살았다는 것은 죽은 것의 한 변형일 뿐이다. 실은 죽음과 같은 것이란 말이다.
노생의 꿈?
당나라 개원 19년에 도사 여옹呂翁이 한단시에 있는 도사 여동번의 집에서 노생을 만남, 청년 노생이 한탄을 하면서 이어지는 이야기.
노생이 자신의 곤궁함을 탄식하자 도사가 주머니 속에서 베개를 내어주며
"이것을 베면 부귀영화를 뜻대로 누릴 것이다."라고 했다.
그 때 사주舍主(집 주인)는 누런 좁쌀로 밥을 짓고 있었는데,
노생이 그 베개를 베고 꿈을 꾸니,
부귀한 집안인 최崔씨의 딸에게 장가를 들어
고관대작에 오르니 영화롭기 비할데 없었다.
늙어서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허락해 주지 않아 관직에서 죽게 되는 순간,
꿈에서 깨니, 밥은 아직 덜 익었다.
이에 여옹이 웃으며,
"인생사는 이 꿈과 같은 것이다."라고 했다.
一切有爲法 - 이 세상 모든 것은
如夢幻泡影 - 꿈같고, 허깨비 같고, 물거품 같고, 그림자 같고
如露亦如電 - 이슬과 같고, 번갯불과 같으니
應作如是觀 - 마땅히 이와 같이 보아야 한다.
이 내용은 세상의 모든 사물을 꿈이나 환각으로 보라는 얘기다.
즉 세계와 우리 인생은 실체가 없는 덧없는 일시적 현상에 불과한데, 우리는 이를 진실하고 영원한 것으로 여기고 있다.
때문에 이러한 미망의 세계로 부터 각성하기 위해서는 모든 사물을 꿈으로 보아야 한다.
옛사람은 꿈에 대해 이렇게 읊었다.
꿈같은 세상에서 꿈꾸는 꿈을 꾸지 말고, 꿈꾸지 않는 꿈을 꿀 줄 알아라. 이러한 꿈이야 말고 참다운 꿈이라고 하겠다.
택암(澤菴) 선사가 말하는 꿈도 이 같은 의미를 나타내고 있다.
제자들이 죽음에 임박한 택암선사에게 사세송(임종시에 남기는 선사들의 게송)을 청하자,
그는 꿈 한 글자에다 " 옳은 것도 꿈, 그른 것도 꿈, 미륵도 꿈, 관세음도 꿈, 진실로 이렇게 보아야 한다고, 부처님은 말씀했지."라는 글을 써주고는 이내 입적했다.
택암은 유형이든 무형이든 세상 일체의 것을 꿈으로 보았다.
꿈이야말로 상대적 인식의 세계를 벗어난 깨달음의 경지이니, 선사의 73년 생애가 꿈 한 글자로 응결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일체를 꿈으로 보았으며, 꿈에 철저한 인생을 살았다고 하겠다.
[장자][제물론(齊物論)]에는 장자가 나비가 된 유명한 이야기가 있다.
어느 날 장자는 나비가 된 꿈을 꾸었다.
희희낙락 즐거워하며 하늘을 날아다니느라 자기가 꿈에 나비가 된 것도 잊어버리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눈을 뜨고 보니 자기는 다름 아닌 인간 장주(莊周 : 장자의 이름)였던 것이다.
생각건대, 장주가 꿈에서 나비가 된 것인지 아니면 나비가 장주가 된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장자가 깨닫게 된 절대 세계는 꿈이든 현실이든 혹은 나비가 됐든
장주가 됐든 모두가 실재(實在)속에서 이루어진 하나의 변화일 따름이다.
요컨대 만물은 일체이며 하나라는 것이다.
장자는 꿈속에서 자신을 잊고 나비가 됐다.
이처럼 자신을 잊어버리는 꿈이야말로 선 수행자들이 지향해야 할 꿈인 것이다.
단무지 선사 이야기
택암(1573~1645) 선사는 일본의 10대 선사에 드는 훌륭한 스님이다.
단마국(지금의 兵庫縣)의 출석 사람으로 아버지는 출석 성주 야마나 쇼오젠의 가신이었다. 택암은 호이며, 법명은 종팽이다.
어느 날 도꾸가와 이에미쓰 장군이 택암 선사가 머물고 있는 동해사를 찾아왔다.
도꾸가와 이에미쓰는 도요또미 히데요시가 죽은 뒤 에도 막부시대를 연 도꾸가와 이에야스가의 제3대 장군이다.
그는 전국시대의 다른 장수들이 그랬던 것처럼 정토淨土를 구한다는 명분으로 전쟁을 하였기에, 평소 스님을 존경하며 찾아다녔다.
일본에서는 니찌렌日蓮 스님의 ‘예토를 싫어하고 정토를 좋아한다厭離濊土 欣求淨土’는 것을 장수들이 따르게 되어 그것이 하나의 전통이 되었다.
택암 선사와 장군이 담소를 나누다가 공양 때가 되었다.
시봉 스님이 공양거리를 걱정하여 선사에게 묻자,
그는 누구에게나 그랬던 것처럼 늘 먹던 그대로 차려오라고 했다.
시봉이 미안해 하며 올린 상에는 밥 한 그릇과 간장, 그리고 말린 무우로 만든 반찬이 있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선사와의 법담에 마음이 가 있는 장군은 맛있게 공양을 하며 연신 맛 칭찬에 바빴다.
“참으로 맛있는 대접입니다. 이게 무엇입니까?”
“맛있기는…… 무말랭이요.”
“무말랭이라? 호오! 이걸 어떻게 만듭니까? 양념은?”
“어떻게 만들기는… 그저 쌀겨와 소금에 절이기만 하면 될 뿐…”
장군은 병영에 돌아가서도 입맛이 없을 때면 동해사에서 택암 선사와 먹었던 무말랭이가 그리웠다. 그래서 부하에게 시켜서 만들어 먹어보니 여전히 맛이 있었다.
산해진미에 익숙하고 갖가지 양념에 맛들여 있던 입맛에 담백한 무말랭이 맛이 새로웠던 것이다. 그래서 장군은 부하에게 말했다.
“앞으로 내가 택암을 가져오라고 하면 이것을 가져오너라.”
택암澤庵을 일본말로 발음하면 ‘다꾸안’인데, 그 말이 우리나라로 들어와
‘다꾸안, 다꾸앙, 닥꽝, 닥광’ 등으로 불리게 된 것이다.
순 우리말은 ‘단무지’이다. 단무지는 ‘단 무 김치’라는 말인데, 그 옛날 도시락 반찬에 빠질 수 없었던 추억의 반찬이며 지금도 전 국민이 애호하고 있다. 그런데 단무지에 이렇게 수행승의 청빈한 삶이 담겨 있음을 아는 이는 드물다.
'무소유'와 같은 의미의 '공수래공수거'라는 말이 있습니다.
空手來空手去是人生 -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인생이여
生從何處來 死向何處去 - 날 때는 어느 곳에서 왔으며, 갈 때는 어느 곳으로 가는가?
生也一片浮雲起 - 나는 것은 한 조각 구름이 일어나는 것과 같고
死也一片浮雲滅 - 죽는 것은 한 조각 구름이 스러지는 것
浮雲自體本無實 - 뜬 구름 자체는 본래 실체가 없나니
生死去來亦如然 - 죽고 살고 오고 가는 것도 역시 이와 같도다
獨一物常獨露 - 그러나 여기 한 물건이 항상 홀로 드러나
湛然不隨於生死 - 맑고도 고요하여 생사(生死)를 따라가지 않네.
그러나 여기 한 물건이 항상 홀로 드러나 담연이 생사를 따르지 않네.
荀子 正論
얕은 것과는 더불어 깊은 것을 헤아릴 수 없고, 어리석은 자와는 더불어 지혜를 꾀할 수 없으며, 우물 안의 개구리와는 동해의 즐거움을 말할 수 없다.
인생이란?
생소한 길을 처음 가고 있는 나그네와 같은 것이 아닐까?
부지런히 한 눈 팔지 말고 걷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러나 이따금 높은 언덕에 서서 오던 길을 돌아다보며,
앞으로 갈 길을 살펴보아 방향을 바로 정하고, 크게 숨을 들어 마셔 새로이 기운을 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생부지사(生不知死) 생시사지변(生是死之變)
살았다는 것은 환상 아닌 것을 의미한다.
참으로 살았다면 삶과 죽음의 테두리 밖에서 생과 사의 참 모습을 알아야만 비로소 참으로 살았다고 할 수 있다.
만약 살아서 죽음 속의 일을 모른다면 그 살았다는 것은 죽은 것의 한 변형일 뿐이다. 실은 죽음과 같은 것이란 말이다.
노생의 꿈?
당나라 개원 19년에 도사 여옹呂翁이 한단시에 있는 도사 여동번의 집에서 노생을 만남, 청년 노생이 한탄을 하면서 이어지는 이야기.
노생이 자신의 곤궁함을 탄식하자 도사가 주머니 속에서 베개를 내어주며
"이것을 베면 부귀영화를 뜻대로 누릴 것이다."라고 했다.
그 때 사주舍主(집 주인)는 누런 좁쌀로 밥을 짓고 있었는데,
노생이 그 베개를 베고 꿈을 꾸니,
부귀한 집안인 최崔씨의 딸에게 장가를 들어
고관대작에 오르니 영화롭기 비할데 없었다.
늙어서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허락해 주지 않아 관직에서 죽게 되는 순간,
꿈에서 깨니, 밥은 아직 덜 익었다.
이에 여옹이 웃으며,
"인생사는 이 꿈과 같은 것이다."라고 했다.
一切有爲法 - 이 세상 모든 것은
如夢幻泡影 - 꿈같고, 허깨비 같고, 물거품 같고, 그림자 같고
如露亦如電 - 이슬과 같고, 번갯불과 같으니
應作如是觀 - 마땅히 이와 같이 보아야 한다.
이 내용은 세상의 모든 사물을 꿈이나 환각으로 보라는 얘기다.
즉 세계와 우리 인생은 실체가 없는 덧없는 일시적 현상에 불과한데, 우리는 이를 진실하고 영원한 것으로 여기고 있다.
때문에 이러한 미망의 세계로 부터 각성하기 위해서는 모든 사물을 꿈으로 보아야 한다.
옛사람은 꿈에 대해 이렇게 읊었다.
꿈같은 세상에서 꿈꾸는 꿈을 꾸지 말고, 꿈꾸지 않는 꿈을 꿀 줄 알아라. 이러한 꿈이야 말고 참다운 꿈이라고 하겠다.
택암(澤菴) 선사가 말하는 꿈도 이 같은 의미를 나타내고 있다.
제자들이 죽음에 임박한 택암선사에게 사세송(임종시에 남기는 선사들의 게송)을 청하자,
그는 꿈 한 글자에다 " 옳은 것도 꿈, 그른 것도 꿈, 미륵도 꿈, 관세음도 꿈, 진실로 이렇게 보아야 한다고, 부처님은 말씀했지."라는 글을 써주고는 이내 입적했다.
택암은 유형이든 무형이든 세상 일체의 것을 꿈으로 보았다.
꿈이야말로 상대적 인식의 세계를 벗어난 깨달음의 경지이니, 선사의 73년 생애가 꿈 한 글자로 응결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일체를 꿈으로 보았으며, 꿈에 철저한 인생을 살았다고 하겠다.
[장자][제물론(齊物論)]에는 장자가 나비가 된 유명한 이야기가 있다.
어느 날 장자는 나비가 된 꿈을 꾸었다.
희희낙락 즐거워하며 하늘을 날아다니느라 자기가 꿈에 나비가 된 것도 잊어버리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눈을 뜨고 보니 자기는 다름 아닌 인간 장주(莊周 : 장자의 이름)였던 것이다.
생각건대, 장주가 꿈에서 나비가 된 것인지 아니면 나비가 장주가 된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장자가 깨닫게 된 절대 세계는 꿈이든 현실이든 혹은 나비가 됐든
장주가 됐든 모두가 실재(實在)속에서 이루어진 하나의 변화일 따름이다.
요컨대 만물은 일체이며 하나라는 것이다.
장자는 꿈속에서 자신을 잊고 나비가 됐다.
이처럼 자신을 잊어버리는 꿈이야말로 선 수행자들이 지향해야 할 꿈인 것이다.
단무지 선사 이야기
택암(1573~1645) 선사는 일본의 10대 선사에 드는 훌륭한 스님이다.
단마국(지금의 兵庫縣)의 출석 사람으로 아버지는 출석 성주 야마나 쇼오젠의 가신이었다. 택암은 호이며, 법명은 종팽이다.
어느 날 도꾸가와 이에미쓰 장군이 택암 선사가 머물고 있는 동해사를 찾아왔다.
도꾸가와 이에미쓰는 도요또미 히데요시가 죽은 뒤 에도 막부시대를 연 도꾸가와 이에야스가의 제3대 장군이다.
그는 전국시대의 다른 장수들이 그랬던 것처럼 정토淨土를 구한다는 명분으로 전쟁을 하였기에, 평소 스님을 존경하며 찾아다녔다.
일본에서는 니찌렌日蓮 스님의 ‘예토를 싫어하고 정토를 좋아한다厭離濊土 欣求淨土’는 것을 장수들이 따르게 되어 그것이 하나의 전통이 되었다.
택암 선사와 장군이 담소를 나누다가 공양 때가 되었다.
시봉 스님이 공양거리를 걱정하여 선사에게 묻자,
그는 누구에게나 그랬던 것처럼 늘 먹던 그대로 차려오라고 했다.
시봉이 미안해 하며 올린 상에는 밥 한 그릇과 간장, 그리고 말린 무우로 만든 반찬이 있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선사와의 법담에 마음이 가 있는 장군은 맛있게 공양을 하며 연신 맛 칭찬에 바빴다.
“참으로 맛있는 대접입니다. 이게 무엇입니까?”
“맛있기는…… 무말랭이요.”
“무말랭이라? 호오! 이걸 어떻게 만듭니까? 양념은?”
“어떻게 만들기는… 그저 쌀겨와 소금에 절이기만 하면 될 뿐…”
장군은 병영에 돌아가서도 입맛이 없을 때면 동해사에서 택암 선사와 먹었던 무말랭이가 그리웠다. 그래서 부하에게 시켜서 만들어 먹어보니 여전히 맛이 있었다.
산해진미에 익숙하고 갖가지 양념에 맛들여 있던 입맛에 담백한 무말랭이 맛이 새로웠던 것이다. 그래서 장군은 부하에게 말했다.
“앞으로 내가 택암을 가져오라고 하면 이것을 가져오너라.”
택암澤庵을 일본말로 발음하면 ‘다꾸안’인데, 그 말이 우리나라로 들어와
‘다꾸안, 다꾸앙, 닥꽝, 닥광’ 등으로 불리게 된 것이다.
순 우리말은 ‘단무지’이다. 단무지는 ‘단 무 김치’라는 말인데, 그 옛날 도시락 반찬에 빠질 수 없었던 추억의 반찬이며 지금도 전 국민이 애호하고 있다. 그런데 단무지에 이렇게 수행승의 청빈한 삶이 담겨 있음을 아는 이는 드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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