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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난존자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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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타빨라 장로의 법문


  땅이 기름지고 날씨가 적당하여서 언제나 곳간이 그득하기 때문에 톨라꼬티까라고 부르는 큰 마을이 꾸루국(현재의 뉴델리)에
있었다.
그 꾸루국의 꼬라비아 왕의 동상도 그 마을 근처에 있었다.
그 큰 마을은 대중 가운데 야타빨라 존자의 고향이기도 하다.
  야타빨라는 그 마을에서 가장 큰 장자의 아들로 편안하게 살았었다.
그가 어른이 되고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부처님과 상가 대중이 그 마을에 도착했다.
  야타빨라는 부처님의 병문을 듣고 우리와 같이 비구가 되기를 희망했으나 부모님의 허락을 얻지 못했기 때문에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는 외아들이었기 때문에 부모님을 수행자가 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하나뿐인 아들과 헤어지고 싶지 않은 것처럼 그 많은 재산이 왕의 소유로 들어가는 것 역시 참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아들이 없는 이의 재산은 왕이 소유하게 되어 있었다.
  그래서 아들에게 수행자가 되지 말고, 속세에 살면서 많은 보시로 선근 공덕을 쌓도록 말했다.
그러나 야타빨라는 부모님의 생각을 받아 드릴 수 없었다.
복을 짓는 것과 윤회를 벗어나는 길을 어떻게 비교할 수 있는가?
  언젠가는 죽어야 하고, 죽은 다음에 이 재산과 자식이 무엇이란 말인가?
다시 돌고 돌아야 하는 윤회의 찌꺼기가 될 뿐인 것을.................
  그래서 비구가 될 수 있는 허락을 얻든지 이 자리에서 죽든지 둘 중 하나는 이루어지겠지 하는 생각으로 맨땅 위에 드러누웠다.
음식은 물론 물도 마시지 않았다.
이렇게 7일이 지나자 내 아들이 수행자가 되어 떠나는 것보다 차라리 죽은 것이 났다고 생각하던 부모도 결국은 자식을 이길 수
없었다.
  ''아무려면 죽는 것보다는 낫겠지.............''
                                                              &&&&&&&&&&&&&&&&&&&&&&&&&&&&&&&&&&&
  그래서 야타빨라리라는 이름을 얻었다.
이처럼 굳건한 신심으로 비구가 되었기 때문에 '신심으로 비구가 된 사람 가운데 첫째가는 이'라는 특별한 칭호를 받았다.
  상가마시 장로와 야타빨라 장로는 모든 번뇌를 끊은 것이 같다, 부모와 친척 그리고 부인의 유혹을 받은 것도 같다.
그러나 법을 깨달은 장소와 유혹을 받은 곳은 다르다.
상가마시 장로는 숲 속 절에서 법을 깨다다고 제따와나 정사에 돌아왔을 때 유혹을 받았으며, 야타빨라 장로는 제따와나 정사에서
법을 깨닫고 고향인 톨라꼬티까에 다시 갔을 때 유혹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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