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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난 존자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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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의 수헤바퀴

  부처님의 법을 은행금고에 보관하듯  잘 간수해 온 한 사람으로써 목숨을 아끼지 아니하고 간직해 왔던 법의 보배 중에
이렇게 처음 펴 보이신 진리에는 (초전법륜경)도 포함된다.

  부처님의 첫 법문이어서 우리 제자들이 특별히 존중하는 가르침이다.
이제 그 가르침 중에서 사성제의 진리와 관계된 것을 말하라리라.
  "비구들이여!
  비구 수행자들은 낮은 법 두 가지에 의지하지 말아야 한다.
어 떤 것이 낮은 법 두 가지인가?
  성인들의 재산이 아니며 행복의 번영을 가져다주는 것이 아닌 낮고 천한 세속 마을 사람들의 재산이자 범부들의 습관인
깜마 오욕락의 기쁨을 즐기는 것이 하나의 낮은 법이다.

  성인들의 재산이 아니며 행복과 번영을 가져다주는 것이 아닌, 극심한 고통으로 자기 스스로를 피곤하고 힘들도록 괴롭히는
것이 하나의 낮은 법이다.
  이 두 가지 모두를 천하고 저속한 법이라고 부른다.''
                                                                              &&&&&&&&&&&&&&&&&&&&&&&
  처음으로 가르침을 시작하자마자 낮은 법과 그른 길의 두 가지를 들어 보이신다.
이렇게 드러내는 것에는 부처님이 도신 과정과 매우 밀접하게 관계가 있다.
  한 나라의 고귀한 태자 신분으로 깜마 오욕락을 만족할 만큼 누리기도 했었지만 이익은 하나도 없었다.
또 보통사람들이 행하기 어려운 극심한 고행을 했지만 법을 깨닫는 것과는 다른 길이었다.
적당한 때  기억을 떠올려서, 출세간의 지혜를 얻는 것에는 작은 이익도 주지 못하는 두 가지의 낮은 법을 드러내신 다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나 여래는 낮은 법 두 가지를 떠난 중도 수행법을 확실하게 깨달았다.
 나 스스로의 지혜로 틀림없이 깨달았다.
그 수행은 뜨거운 번뇌를 거두며, 특별한 지혜로 잘 알게 하며, 닙바나의 이익을 준다.
    그 중도 수행은 어떤 것인가?
  바르게 봄(삼마대이티), 바르게 생각함(삼마상까빠), 바르게 말함(삼마와싸), 바르게 행함(삼마까만다), 바르게 생명을
이어감(삼마아지와), 바르게 노력함(삼마와야마), 바르게 기억함(삼마사띠), 바르게 머무름(삼마사마디)이다.
  이 여덟 가지를 구족하면 성인의 도를 이룰 수 있다.
 또 여덟 가지 깨달음의 조건을 계(실라), 선정(사마따), 지혜(빤냐)의 닦아야 할 세 가지로도 모을 수 있다.
  계에는 바르게 말함, 바르게 행함, 바르게 생명을 이어감이 속하고, 삼매에는 바르게 노력함, 바르게 생각함이 그에 속한다.
  계에 해당하는 세 가지  중에서 바르게 말함에는 남이 듣기 좋은 말을 꾸며서 말하지 않고 나쁜 말을 삼가는 것도 이에 해당된다.
바르게 행함과 바르게 생명을 이어감도 그와 같다.
계는 넘치지 않도록 잘 단속하여 범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삼매의 세 가지 중에 바르게 노력함은 뒤로 물러나지 않고 힘을 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바르게 기억함은 잊어버림이 없어 법의 뜻에 깊이 들어가 깨끗하고 분명하게 아는 것이며, 바르게 머무름은 법을 보고는 그 앞에
튼튼하고 굳세게 머무는 것이다.
  지혜의 두 가지인 바르게 봄과 바르게 생각함은 서로 같다.
이것은 탐심, 성냄, 어리석음이 되는 나쁜 생각에서 벗어나는 것을 뜻한다.
중도 수행 여덟가지 닦아야 할 세 가지 등, 어떻게 말하든지 뒤의 일곱 가지에 앞서서 첫 번째인 바르게 봄(바른 견해)이 우선
갖추어져야 한다.
바른 견해가 갖추어지지 않은 나머지 하나씩은 도의 부분이 될 수 없다.
                                          &&&&&&&&&&&&&&&&&
    그러면 바르게 본다는 것은 무엇인가?
  닙바나를 사실대로 바르게 아는 지혜이다.
  닙바나는 무엇이 바르고 무엇이 사실인가?
  모든 고통이 다하여 없음이 바르고, 모든 고통이 다하여 없음이 사실이다.
그래서 고통이 모두 소멸해 없는 진리라고 부르기도 한다.
  고통이 없는 진리가 분명히 있지만 사실대로 바르게 알지 못하는 것은, 고통을 고통이라고 바르게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고통은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이라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통, 무상, 무아 등 세 가지의 특성을 연결하는 고의 진리를 먼저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말하는 법은 성인들이 아는 고의 진리이다.
  다시 태어남은 고통이다.
늙음도 고통이다.
병듦도 고통이다.
죽음 역시 고통이다.
좋아하는 것과 헤어지는 것도 또한 고통이다.
좋아하지 않는, 생명이 있거나 생명이 없는 것들과 만나고 함께 하는 것도 고통이다.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도 고통이다.
줄여서 말한다면 집착하는 몸이 모두 고통이다.''
  부처님께서 구분해 보여 주셨던 고통으로, 다른 곳에서도 말하셨지만 이 최초의 가르침에서도 필요한 만큼 말씀하셨다.
온 세상에 널리 퍼져서 어떻게 할 수 없을 만큼 많은 고통이 이 작은 부분에 모두 들어 있다.
  고의 진리에서 말슴하셨던 이 고통 중에는몸에 관계된 고통과 마음에 관계된 고통이 포함 되어 있다.
그 중에서 바른 견해로 금방 벗어날 수 있는 고통은 어떤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고통이 완전히 소멸해 없는 진리에 들어 있을 것이다.
앞에서 보았던 고통들은 저절로 생겨날 수 없으며, 어떤 이유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그래서 고통의 원인이 되는 진리를 이어서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여기에 말하는 법은 성인들이 아는 고통이 원인이 되는 진리이다.
목마르게 원하는 것은 새로운 생이 생기게 한다.
좋아하고 푹 빠져서 헤어날 줄 모르게 만든다.
갖가지 대상의 깜마 오욕락에 집착하게 한다.
이러한 갈애는 세 가지가 있다.
  모양, 소리, 냄새,맛,닿음 등 바깥 대상에 탐닉하는 것과 마음의 인식 작용이 차례로 이어져서 영원할 것이라고
집착하는 것, 죽으면 모든 것이 끝이라고 생각하는 것, 이 세 가지이다.''
  이 세상에는 많은 고통이 있지만, 그 고통의 뿔는 이 세 가지 갈애이다.
부처님께서는 고통의 원인이 되는 진리 다음에 고통이 완전히 소멸한 진리를 계속하여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여기에 말하는 법은 성인들이 아는 고통이 완전히 소멸한 진리이다.
그 고통의 원인이며 뿌리가 되는 갈망을 남김없이 뽑아버려서 다한 것,모든 갈애에서 벗어나서 집착이 없는 것이 고통이
완전히 소멸한 진리이다.''
  고통이 완전히 소멸한 진리를 말씀하신 것에서 고의 원인이 다했음을 지적하신 것에 주의해야 한다.
고의 진리에 보였던 고통 중에서 몸의 고통은 이 세상에서 육신을 가지고 생활하고 있는 동안에는 부처님이나 아라한,
어떤 성인이라도 벗어나지 못한다.
  마음의 고통은 바로 고통의 원인이 되는 진리와 이어져 있다.
그래서 그 원인, 즉 갈망을 빼버린다면 마음의 고통은 사라져 조용해 진다.
그러기 위해서는, 즉 고통이 다한 진리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현재 행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현재 행하는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생명이 살아 있는 금생에서다.
이 생명이 있는 동안 이 몸의 고통은 없을 수 없다.
부처님과 아라한들도 비켜 갈 수 없는 그 고통들을 슬픈 통곡과 모든 뜨거운 번뇌들과 연결되지 않고 틀림없이 확실하게
소멸함을 현재 금방 체험할 수 있는 법, 소멸의 진리들을 사실대로 바르게 알았을 때, 그대로 중도 수행으로 부르는 바른 길로
수행하는 일이 따른다.
  그래서 소멸의 진리 다음에 도의 진리, 그 번뇌가 소멸한 곳에 이르도록 수행하는 길을 이어서 말씀하신다.
중도 수행을 보일 때 도의 진리를 설명해 보였다.
  여기에사성제의 진리를 구분한 다음, 사성제 진리를 모두 모아서 ''진리를 아는 지혜','할일을 아는 지혜','깨달은 줄 아는 지혜'라는
세 가지 지혜로 다시 구분하였다.
  진리를 아는 지혜는 사성제의 진리를 사실대로 바르게 아는 지혜이다.
할 일을 아는 지혜는 사성제의 진리에 행해야 할 일을 아는 지혜이며, 깨달은 줄 아는 지혜는 이미 깨달았음을 사실대로
바르게 아는 지혜로, 이 둘은 뜻이 다르지 않고 시간을 구분할 때만 다르다.
  진리 네 가지, 사성데 진리에서 해야 할 일은 고의 진리로 구분하는 일이다.
이것은 관찰하는 것과 관찰할 것을 구분해서 아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다음은 고의 원인의 진리로, 버릴 줄 아는 것이며 집착을 버리는 것이다.
소멸의 진리는 현재를 대상으로 해야 한다.
도의 진리는 거듭 거듭 수행하는 것이다.
  여기에 그 진리와 그 진리가 하는 각각 다른 일이 있다.
이 네 가지 일 중에 필요하고 중요한 것은 닙바나를 현재에 행하는 것뿐이다.
그 일을 함과 동시에 남은 일 세 가지로도 같이 해서 마치는 것이다.
도의 지혜로 현재 행하는 것은 소멸의 진리 한 가지뿐이다.
남은 진리들은 해야 할 일을 다 해서 마친 다음 뜻으로 만나는 것뿐이다.
  사서제 진리를 세 가지 지혜로 세 번씩 거듭하여 열두 번이 된다.
이 열두 가지와 ㅅㅏ성제 진리로  소멸의 진리를 현재 행하는 바른 견해와 연결하여 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초전법륜경)의 가르침에서 진짜 부처님이 틀리없음을 승인하는 부분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  &&&&&&&&&&&&&&&&&&&&&&&&

    ''비구들이여!
  어느 때 이 사성제 진리에 각각 지혜 세 가지씩으로 열두 가지를 있는 사실대로 바르게 아는 지혜가 나 붓다에게 깨끗하게
드러났다.
그때에 나는 온 세계에 붓다가 된 것을 사람과 천인들이 아는 것을 승낙하였다.''
  ''나에게 생겼던 도를 다시 생각하는 지혜가 분명해졌다.
나의 아라한 과와 반대되는 것들이 무너뜨릴 수 없다.(어떤 장애도 받지 않는다) 이 몸의 태어남이 마지막 생이다.
다음에 다시 태어날 일은 없다.''
  이미 수행하여 얻은 도와 과를 다시 돌아보아서 아는 이러한 지혜가 분명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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