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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길의 사진공책]조명 아래 보일듯 말듯···상상하라, 보일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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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브란트 자화상, 1628. / 라익스미술관 소장 (좌)
Ladies Hats, Hennie, 1985. ⓒ Erwin Olaf, 공근혜갤러리 제공 (우)

빛은 어둠이 강할수록 빛을 발한다. 화가 하르먼스 판 레인 렘브란트(Harmensz van Rijn Rembrandt, 1606~1669)은 빛과 어둠이 공존하는 극적인 그림들을 우리에게 남겨 놓았다. 돌아온 탕자,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등 성서의 인물들과 의사, 민병대 등 동시대 사람들을 그린 그의 그림을 보면 마치 연극 무대의 한 장면을 지켜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조명은 스포트라이트다. 인물에게만 집중된 무대의 조명 효과는 관객과의 거리감을 좁혀 놓았다. 관람객들의 이목을 사로잡는 렘브란트의 마력은 바로 여기에서 비롯된다. 그의 그림들을 연극의 스틸컷이라 가정해 본다면, 무대 감독이나 연출을 맡았을 렘브란트는 스스로 주인공이 되어 무대 위에 오르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그는 다른 화가들보다 월등히 많은 자화상들을 남겨 놓았다.

 

입헌군주제의 네덜란드 왕국은 2019년을 렘브란트에게 헌정했다. 화가의 350주기를 맞아 수도 암스테르담의 국립 라익스미술관은 렘브란트를 다시 돌아볼 수 있는 다채로운 무대를 마련했다. 대표작이자 훼손된 4m가 넘는 화폭의 ‘야경’(The Night Watch, 1642)을 복원하는 야심찬 작업에도 착수했다. 네덜란드의 2019년은 이른바 ‘렘브란트의 해’인 것이다.

 

렘브란트와 연관된 이색적인 사진전도 라익스미술관에서 진행 중이다.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사진작가 어윈 올라프(Erwin Olaf)의 사진과 그림이 짝을 이루는 ‘12×어윈 올라프’ 사진전이다. 렘브란트 이외에 베르메르, 베르스프론크 등 17세기 네덜란드 황금시대를 대표하는 화가들의 그림 11점과 어윈 올라프의 사진 11점을 각각 비교하며 감상하는 전시다. 어윈 올라프의 비디오 작품도 하나 포함됐기 때문에 ‘12×’로 표기됐다. ‘12-’ 혹은 ‘12+’가 아니라 ‘12×’인 것에는 그림과 사진의 어우러짐이 다차원적인 느낌을 줄 것이라는 큐레이터의 전시기획 의도가 담겨 있다.

 

렘브란트와 나란히 걸린 자신의 사진을 보는 어윈 올라프의 감회는 얼마나 감격스러울까? 예술에 관심이 있는 네덜란드 사람들이 대부분 그러했겠지만, 빛과 어둠을 극명하게 다룰 줄 아는 그의 붓놀림에 어윈 올라프가 깊은 인상을 받았던 것은 분명하다. 사진집 작가의 소개글에는 어윈 올라프에게 강렬한 인상을 주었던 렘브란트 ‘자화상’(1628)이 수록돼 있다.

 

스물두 살의 렘브란트 자화상은 얼핏 보면 망친 그림 같다. 얼굴 이목구비가 어둠에 잠겨 있기 때문이다. 젊은 객기였을까? 아니면 그렇게 그릴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 자신을 보여주어야만 하는 자화상을 그리면서 거꾸로 자신의 모습을 어둠에 숨긴 스물두 살의 렘브란트는 어떤 젊은이였을까? 그림의 광원은 분명하고 극명하다. 그의 대부분 그림에서와 마찬가지로 빛은 연극 무대의 조명처럼 강조해야 할 대상만을 비추고 있다. 하지만, 젊은 렘브란트는 무대 조명을 등지고 있다. 기껏해야 얼굴의 한쪽 뺨과 코끝만을 무대에 드러내고 있다. 조금만 돌아선다면 그의 두 눈을 알아볼 수 있을 텐데…. 젊은 렘브란트의 심성을 판단할 수 있는 그의 두 눈은 베일에 가려져 있다. 젊은 날의 렘브란트는 의뭉스러운 존재인 것이다.

 

어윈 올라프의 사진 속 인물들도 의뭉스럽기는 마찬가지다. 그의 사진 모델들은 도무지 속내를 알 수 없다. 저마다 비밀을 갖고 있지만 입은 굳게 다물고 있다. 렘브란트와 동시대를 살았던 화가 베르스프론크의 그림 ‘파란 드레스를 입은 소녀’(1641)는 어윈 올라프의 ‘Hope - Portrait 5’(2005)와 짝을 이루었다. 사진 속 노란 원피스를 입은 숙녀는 그림 속 파란 드레스를 입은 소녀처럼 우리를 정면으로 응시하고 있다. 숙녀나 소녀나 눈빛은 아주 또렷하다.

 

먼저 파란 드레스의 소녀를 살펴보자. 발그레진 두 볼과 코는 소녀가 화가 앞에서 홀로 포즈를 취하는 일이 꽤나 부끄러운 일이었음을 알려준다. 하지만 화가를 빤히 쳐다보는 소녀의 새까만 두 눈동자에는 소녀 이상의 강렬함이 담겨 있다. 입꼬리를 올리고 있는 진분홍빛 입술은 어떠한가? 라익스미술관 설명에 따르면 당시에는 어린이를 크기만 작은 성인으로 표현했다고 한다. 소녀의 의상도 마찬가지다. 비록 사이즈는 어린아이 것이나 옷감을 꾸민 장식들은 어른의 것과 다름없다. 화려한 금장 무늬, 섬세한 레이스, 우아한 진주 목걸이와 팔찌를 걸친 소녀의 모습에 성숙함과 순진함이 교차하고 있다.

 

‘파란 드레스를 입은 소녀’ 그림 옆에는 노란 드레스를 입은 숙녀의 사진이 걸려 있다. 그림 속 소녀가 몇 살 더 먹으면 사진으로 찍은 젊은 숙녀의 모습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엄마가 입혀주는 화려한 외출복을 입어야만 하는 아동 시기를 지나온 사진 속 숙녀는 심플하지만 고급스러운 느낌의 노란 원피스를 입고 우아한 머리 스타일로 나이보다 성숙함을 보여주고 싶어 하는 눈치다. 붉은 립스틱 때문에 그런 것일까? 눈빛은 꽤 도발적이다. 전체적인 얼굴은 무표정하다. 하지만 그것은 관람객을 속이는 가면일 것이다. 숙녀의 손을 보자. 방문을 열 수는 없다는 듯, 오른손으로 문틀을 잡고 문 앞을 지키고 있다. 그녀 뒤의 방에선 보여주기 싫은 어떤 사건이 펼쳐지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숙녀의 왼손 동작이 그런 난처한 상황에 대한 확증을 불러일으킨다. 의혹의 시선에 따가움을 느낀 그녀의 몸은 본능적으로 어깨와 목을 손으로 어루만지며 자신을 보호하고 있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천연덕스러운 표정 연기는 거의 성공했지만 그녀의 몸은 거짓말을 하지 못했다. 얼굴은 페르소나라는 가면으로 가릴 수 있겠지만 몸뚱이는 본능을 따랐던 것이다.

 

무엇을 숨기고 있다는 또 다른 단서는 사진 오른쪽 아라비아 숫자와 알파벳이다. 사진이 찍힌 장소는 분명 숙녀가 살고 있는 집이 아니다. 어느 누가 가정집 방문에 ‘2A’라는 숫자를 달아놨겠는가? 그곳은 아마도 호텔일 가능성이 많다. 부모 몰래 호텔에 있던 숙녀는 불청객의 호출을 받고 황급히 문밖을 나선 것이다.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 젊은 여성의 표정…. 나는 27년 전에 이런 의뭉스러운 모습의 젊은 여성을 본 적이 있다. 데이비드 린치 감독의 <트윈 픽스>에 등장하는 금발머리 로라 팔머의 모습이다. 1993년 30부작으로 방영된 외화 시리즈 <트윈 픽스>는 로라 팔머의 창백한 시신이 발견되면서 시작된다. 두 개의 산봉우리에 둘러싸인 작은 마을은 충격에 휩싸인다. 예쁘고 착실하기로 소문난 고등학생 로라 팔머를 죽인 사람은 누구였을까? 범인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FBI 요원 데일 쿠퍼는 로라 팔머의 숨겨진 퇴폐적인 모습을 발견한다. 로라 팔머만 그런 것이 아니다. 평범해 보이는 마을 사람들은 저마다 뒤틀린 욕망과 기괴한 얼굴들을 감추고 있었다.

 

FBI 요원 데일 쿠퍼가 로라 팔머의 실체를 발견한 곳은 ‘붉은 방’이다. 노크하고 손잡이를 돌려 문을 열고 들어갈 수 있는 현실 속의 방은 아니다. 명상이나 꿈을 통해 들어갈 수 있는 붉은 방은 무의식의 공간이자 죽음의 정령들이 지배하는 지하세계다. 붉은 커튼으로 둘러싸인 음산한 응접실에 섬뜩한 존재들이 출몰한다. 몽환적인 재즈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는 난쟁이, 팜므파탈의 모습을 한 로라 팔머, 악령에 사로잡힌 로라 팔머의 아빠…. 붉은 방의 로라 팔머는 알쏭달쏭한 말을 남기고 <트윈 픽스> 시리즈를 종결했다. “25년 후에 다시 만나요.” 25년이 지난 2017년, 린치 감독은 후속 <트윈 픽스> 시리즈를 선보였다. 로라 팔머는 붉은 방에서 빠져나왔을까?

 

<트윈 픽스>의 붉은 방을 방금 빠져나온 듯한 소녀가 찍힌 사진작품 하나가 있다. 셀프 포트레이트 사진을 줄곧 찍어온 미국 작가 신디 셔먼(Cindy Sherman)의 사진 ‘무제96(Untitled #96, 1981)’이다. 당시 20대 중반의 신디 셔먼은 아직 성인이 되지 못한 소녀의 모습을 자신의 카메라 앞에서 연기했다. 타일 바닥에 누운 소녀는 사진 찍히기 전에 어떤 사건을 겪었던 것이 분명하다. 붉게 달아오른 소녀의 얼굴은 아직 식지 않은 상태다. 베르스프론크의 그림 ‘파란 드레스를 입은 소녀’의 불그스레한 두 뺨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느낌이다. 소녀의 손동작을 살펴보자. 어윈 올라프의 노란 드레스를 입은 숙녀처럼 신디 셔먼의 손에도 사건의 단서가 있다. 아직은 어색한 붉은 매니큐어를 칠한 왼손, 그리고 구겨진 신문 조각을 움켜쥐고 있는 오른손. 체크무늬 치마는 헝클어져 있다. FBI 수사관처럼 사진의 신문 조각을 확대해 보았다. 광고란이다. 알아볼 수 있었던 유일한 문자는 ‘클럽(Club)’. 도대체 소녀는 왜 신문 광고 조각을 움켜쥐고 있는 것일까?

 

신디 셔먼의 성공적인 사진들은 어떤 사건의 흔적들을 품고 있는 장면들이 많다. 사진이 찍히기 전이나 후, 모종의 사건이 전개될 것이라는 암시를 하고 있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영화의 스틸컷 같다. 1977년부터 찍은 신디 셔먼의 ‘무제 필름 스틸(Untitled Film Stills)’ 시리즈는 할리우드 흑백영화의 한 장면과 별반 차이가 없다. 다른 점이라면 영화에 출연한 여배우로 등장한 신디 셔먼의 표정이 예사롭지 않다는 것이다. 불안, 혹은 불만에 가득 찬 눈빛은 신디 셔먼이 연기하고 있는 사진 속 세계가 제대로 된 세상은 아니라는 암시를 준다.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느낌, 이것은 신디 셔먼은 물론 어윈 올라프의 사진들에서도 발견된다. 차이가 있다면 암시의 강도다. 신디 셔먼의 암시는 올라프와 비교하자면 꽤 직설적이다. 신디 셔먼의 ‘무제96’은 소녀의 얼굴 표정, 옷차림, 손동작 등의 단서들을 통해 성적인 암시를 강하게 풍기고 있다. 반면 올라프는 숨은그림찾기처럼 평범한 장면들 속에 부조리한 단서들을 빵 부스러기를 흘리듯 남겨 놓았다.

 

“내가 가장 보여주고 싶은 것은 완벽한 세계가 내포하고 있는 균열이다.”

 

어윈 올라프가 말한 자신의 사진세계다. 그리고 그가 보여주고 싶은 부조리한 세계는 사진에 확연히 드러나 있지 않다. 무심코 본다면 그의 사진들은 명품 브랜드의 광고 사진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우아한 세계는 자세히 들여다보면 균열들이 갈라져 있는 불완전한 세계이다. 노란 원피스의 숙녀는 부조리한 이면의 세계를 보여주지 않으려고 문 앞을 지키고 있는 파수꾼이다. 만약 당신이 이 문을 연다면 다칠 수도 있다고 그녀는 경고한다. 물러서면 지는 것이다. 올라프의 세계를 보고 싶은 관객들이라면 손전등을 들고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듯이 사진 속 균열들을 찾아 나서야 한다.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갈라진 틈 하나만 찾아낸다면, 그 우아한 세계는 조금씩 허물어져 갈 것이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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