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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성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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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9   2015.05.10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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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성의 눈물- 박선영의 남편들에게
 

젊고 퉁퉁한 남자를 보면 전에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는데 요사이는 다시 한 번 쳐다본다. 젊은 나이에 몸매관리를 안한 것이 감점요인이었는데 이제는 아니다. 큰아이가 딱 그렇기 때문이다. 워낙 제 아버지를 닮아 뼈가 굵은 체형인데다 육류를 좋아하고 게을러서 살이 쪘다. 아이한테는 관리 좀 하라고 잔소리를 하면서도, 그런 유형을 만나면 왠지 이해를 하게 되었다.
또 머리숱이 적은 아이들을 보면 괜히 안쓰러워서 쳐다보게 된다. 둘째아이가 어렸을 때 머리숱이 너무 없어서 친구들한테 ‘대머리독수리’라고 놀림을 받기도 했기 때문이다.

친정어머니는 ‘애 셋만 키우면 천사가 된단다.’라고 늘 얘기하셨다.
그때는 무슨 말인지 몰랐다. 자식들이 속 썩이는 걸 겪으면 마음이 넓어진다는 뜻이라 여겼다. 그런데 지금은 알겠다. 많은 자식을 둬도 열이면 열 명이 다 다른 성격이기 때문에 그만큼 인간에 대한 이해가 넓어진다는 뜻 같다.

아이를 둔 엄마들은 세상이 다르게 보인다. 불교에서 늘 ‘모든 것이 연결돼있다’고 말하는데, 아이를 두면 자연스레 그걸 깨닫는다.
내가 겪은 사례를 몇 가지 들어보겠다.
임신했을 때, 나는 회를 먹지 못했다. 평소에는 회를 좋아했는데, 임신하면서 바로 회를 먹고 싶지가 않았다. 내가 생명을 품고 다른 생명을 해친다는 게 께름칙했다. 깊이 생각하지도 않았고 작정하지도 않았지만 자연스럽게 그렇게 됐다.

한번은 생선의 알을 먹는 그림을 보았는데, 너무나 혐오스럽고 화가 났다. 평소에 그런 것들을 잘 먹다가 자기가 임신하니 그런다고, 편협하다 욕먹을 수도 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가끔은 뇌가 아니라 몸에서 반응하는 일들이 있는 거니까.
내가 둘째아이 낳을 때까지 우리 집에서 함께 산(얹혀 산) 내 여동생은 큰아이, 그러니까 저의 첫 조카를 보고나서 세상이 다르게 보인다고 했다. 지하철에서 아기를 보면 쫓아가서 몇 개월 됐나 묻고 눈을 떼지 못하겠다며, 하다못해 길에서 만나는 강아지도 다시 보인다고 했다. 이모가 그러니 엄마는 어떻겠는가.

아이가 조금씩 성장하면서 엄마가 바라보는 세상에 대한 눈높이도 그만큼 커간다. 아이가 중학생이 되면 중학생들이 다시 보이고 고등학생이 되면 또 그 또래들이 새롭다. 그런데 자라온 세월, 그러니까 더 어린 시절은 잊히는가 하면 그건 아니다. 조금 덜 하긴 하지만 나는 아직도 아기, 유치원생, 초등학생들을 보면 완전한 남처럼 느껴지질 않는다. 우리 아이들이 지나온 세월이라 느껴진다. 지나온 세월은 없어지지 않고 다만 지금보다 옅은 그림으로 남아있는 것이다.

언제였더라. 화성에서 유치원 아이들이 수련원 화재로 여러 명 죽은 적이 있었다. 큰아이를 낳고 1, 2년 쯤 지났던 걸로 기억한다. 나는 며칠간 지하철로 출퇴근하면서 울었다. 그 어린 생명들이 불속에서 얼마나 당황했을까 생각하니 가슴이 너무 아프고, 우리 아이가 앞으로 커나가기에 세상이 너무 불안전하고 무섭게 느껴졌다.

학교폭력으로 자살하는 아이들이 뉴스에 나와도 남의 일 같지 않았다. 폭력을 휘두르는 아이도 내 아이의 친구이고, 당하는 아이도 그렇다고 느꼈다. 세상의 모든 아이들이 하나의 끈으로 연결된 것처럼 나는 느낀다. 어느 때인가는, 길거리 노숙자 중 젊은이를 보고 갑자기 모성이 확 느껴지는 경험도 했다. 저 멀리 아프리카 아이들이 신발 없이 다니느라 생채기가 난 발을 보고도 울고, 가족들의 생계를 돕느라 공장에서, 광산에서 일하는 조막만한 손을 보고도 운다. 참으려고 해도 이미 눈물이 저 혼자 주룩 떨어져 버린다.

그러니, 세월호 사건은 어떻겠는가.
아이들이 죽는 걸 손 놓고 봐야 했던 이 땅의 어미들, 그 마음이 어떠했겠는가.
물론 내가 많이 울보인 건 맞다. 하지만 난 정신적으로 건강한 편이다. 단지 우리 아이들과 다른 아이들이 다르지 않은 생명이라는 걸 몸으로 마음으로 알고 있는 것뿐이다.
1년이 흘렀다. 세월이 약이라고 했다. 그래서 큰일을 당한 사람도 미치지 않고 산다고 했다. 흐르는 물처럼 담담히 잊혀지면 좋겠다. 하지만 세월호 사건은 우리에게 고인 물이 됐다. 지난 1년을 돌아보면 아무것도 나아진 게 없다. 사건이 일어난 시점에서 하나도 마무리 된 게 없다. 고인 물은 썩는다. 썩어가고 병들어간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하는 게 맞다. 하지만 유가족 뿐 아니라 이 땅의 엄마들의 가슴을 이토록 아프게 하면서 그렇게 말하면 안 된다. 이러면 잊히지 않는다. 함께 병이 들어갈 뿐이다.
엄마가 병들면 아이들도 건강하지 못하게 된다. 대한민국이 모두 병들어간다.

난 지금 이글을 어떻게 끝맺을지 모르겠다. 이대로 끝을 맺으면 무책임해보일 것만 같다. 하지만 난 처음부터 대책을 말하려고 하지 않았고, 그저 엄마들이 1년이나 지나도 계속 우는 게 이상한 게 아니라는, 지극히 당연하다는 이야길 하고 싶었을 뿐이다. 지겨우니 그만 울라고 하면서 인상 찌푸리지 말자고 부탁하고 싶었을 뿐이다.

그래도 당신이 원하는 결론이 뭐냐 묻는다면, 자식 잃은 부모의 소원대로 해달라고 하련다. 그 부모들이 천천히 진정하고 가슴에 온전히 자식을 묻는 걸 보면 우리, 다른 엄마들도 자기 자리로 가서 제 자식들을 지킬 수 있을 것 같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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