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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뇌를 만드는 서른 여섯가지의 물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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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이야기의 주제는 '신하의 체면인 것 같지만 이 속에는 불법의 진리가 들어 있습니다.

사실, (백유경)을 지은 상가세나 스님의 의도는 매우 단순한 것 같지만 이 속에는 불법을 이해시키려는 고도의 장치가 숨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신하는 궤짝 하나를 들고 가라는 왕의 지지셍 스스로의 체면 때문에 거부하다가 오히려 왕의 노여움을 사 36개의 궤짝을 짊어지고 갔다는

이야기입니다.

   여기에서 왕은 법이며, 신하는 어리석은 중생을 뜻하며, 궤짝36개는 인간이 가진 더러운 물질에 대한 비유입니다.

말하자면 인간의 몸에서 나오는 물질, 피,간,폐,장,위,오줌,똥,눈물,침등 서른여섯 가지의 더러운 물질을 뜻합니다.

   즉, 인간의 몸은 오장육부 12지장, 사지와 아홉 개의 구멍이 있는데 이곳에서 항상 더러운 것이 흘러나옵니다.

신하는 그런 자신이 가지고 있는 보이지 않는 커다란 부끄러움을 생각하지 못하고 그저 남에게 보여지는 겉치레만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입니다.

 

   여기에서 '무우'란 근심이 사라진다는 뜻입니다.

인도에서는 기원전 3세기 대륙을 정복했던 아쇼카 왕이 있었습니다.

그가 기원전 297년 불교로 개종하면서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됩니다.

그러나 계속되는 전쟁으로 살생을 피할 수가 없었습니다.

특히 그는 인도의 통일을  위해 남방에 있던 칼링가를 정벌하면서 수십만명이 죽고 다치는 것을 보고 진정으로 '불법을 따르고 사랑하고

가르치는 일에 전념해야겠다고 결심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 후 그는 진리의 다스림'으로 세사을 정복하여 스스로를 전륜성왕이라 불렀습니다.

 

   어릴 적 그의 이름인 아쇼카는 바로 무우라는 뜻입니다.

어머니가 그를 낳을 때 세상의 근심이 없었기 때문에 그의 이름을 무우라고 지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인도를 가보면 불교성지인 아쇼카 석주가 아직 남아 있습니다.

아쇼카 왕이 기둥을 세워 부처님의 말씀과 부처님의 행적을 표시해 두엇는데 부처님이 이 세상에 오신지 2,500여년이 지난 지금에도

부처님의 행적을 찾을 수 있는 흔적이 남은 것은 아쇼가 왕 덕분입니다.

 

   세사을 살다 보면 여우를 피하다가 호랑이를 만난다는 격으로 잘못된 한 가지를 피하려고 하다가 오히려 피해를 본 적이 있을 겁니다.

 

   상가세나 스님은 이 이야기를 지으면서 스스로 해설을 달았습니다.

   '여자의 털 하나가 길위에 떨어져 있었습니다.

그것을 본 바라문이 말하기를 ''나는 계율을 지킨다.''고 하며 손으로도 집으려 하지 

 

   여기에서 여자의  털 하나는 욕정의 상징이라고 볼 수 잇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더럽다고 하여 줍기는 커녕 오히려 계율에 대해 엉뚱한 말을 한것입니다.

말하자면 솥뚜껑보고 놀란 격이라고 할까요?

그냥 그것은 길을 더럽힌 한 갓 쓰레기에 불과한데도 말입니다.

그런데 그런 계율을 엄격하게 지키던 바라문은 그런 말을 한 순간, 욕정에 사로잡힌 범부로 전락한 것입니다.

겨우 여자의 털 하나가 떨어진것을 보고 계율을 생각했던 자체가 이미 계율을 파괴했다는 말입니다.

때문에 그는 그보다도 더한 서른여섯 가지의 번뇌를 오래전부터 지니고 있었는지 모릅니다.

참으로 놀라운 법문이라 할 수 있으며, 재미있는 비유입니다.

 

   우리는 이야기속의 신하나 해설편의 바라문처럼 겉치레만 중시하는 사람이 아닌가를 반성해 보아야 합니다.

예를 들면, '좋은 옷을 입는다, 좋은 차를 탄다, 좋은 집에 산다'등등 형편이 별로 좋지도 못한데 사치에 젖어 잇거나 허영심에 들떠

자신의 신분에 맞지 않게 낭비를 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법구경'과 '진구품'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습니다.

   '허공에 나는 새는 발자국을 남기지 않듯이공부하는 사문은 오직 헛된 마음이 없으며, 사람은 겉치레를 중요하게 여기지만 부처님은

깨끗하여 거짓이 없다'는 뜻입니다.

 

저희 스님들은 항상 머리를 깎고 승복을 입고 다닙니다.

그래서 스님들을 두고 '방포원정 상요청규 이성동거  필수화목 즉 '가사입고 삭발하였으니, 항상 규칙을 따라야 하며, 여러 다른 성품이 모여

사니 반드시 화목해야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내 마음이 편하고 극락이기 때문에 겉치레에 신경쓰지 않습니다.

말하자면 겉모습이 아닌 내 안에 모습을 잘 지키고 서로 화합하고 규칙을 잘 지키는 게 스님들의 삶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만약 속가의 사람들이 이와 같이 산다면 세상은 정말 좋을 겁니다.

   고려 말의 승려인 야운 선사는 후학들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범유하심자 만복자귀의 ,마음을 하심하여 겸손하면 온갖 복이 스스로 돌아온다.'

   하심이란 스스로 자신을 낮추는 마음을 뜻하는데, 이런 사람은 많은 복이 찾아온다는 말입ㄴㅣ다.

 

 또한 그는 '실체가 없는 허황된 집착은 고뇌만 더하고 겉치레의 위의는 텅 비고 썩은 배와 같으니, 벼슬이 높을수록 마음을 낮게 가지고

도가 높을수록 뜻을 낮게 하라.'

 

   인간의 참된 행복은 마음자리의 정돈 없이는, 그 어떤 허욕으로도 채울 수 없으며 이룰 수도 없습니다.

따라서 인간의 행복과 불행을 물질로 가늠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며, 하심하여 마음의 자유를 얻는 것만이 진실한 행복입니다.

또한 하심은 남에게 꺼리낌없으므로 자유의 기본이 되며, 남을 진실하게 존중하므로 모든 것의 근본이 된다고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자신의 가식을 벗어 버려야만 합니다.

 

   요즘 절의 행자실에 가면 '하심과 묵언' 두 단어가 벽에 적혀 있습니다.

하심이란 자기 마음을 낮춘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묵언은 말을 하지 않고 침묵을 지킨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행자 수업의 첫 번째 과제가 바로 묵언입니다.

 

   옛날 통도사 홍법 스님이라는 분이 계셧습니다.

벌써 돌아가신지 40년이 되셧는데, 이 스님은 객 스님이 찾아오면 항상 '어서 오십시오.''

하고 늘 걸망을 받아 들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또한 객스님들의 고무신을 깨끗하게 다 씻어 놓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침 공양때 보니 그분이 바로 통도사 주지 였던 것입니다.

실로 하심의 극치라고 할수 있습니다.

이와같이 진정한 하심은 그 사람이  가진 수행의 척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께서도 하심 하는 마음, 겉치레에 휘둘리지 않는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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