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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길의 사진공책]보여주고 싶은 것의 ‘유형화’···너를 찍으니 ‘의미’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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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Train for Another World. [사진공책, 가려진 세계의 징후들] 표지 사진. ⓒ 김창길

The Train for Another World. [사진공책, 가려진 세계의 징후들] 표지 사진. ⓒ 김창길

세상은 바라보는 방식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북아메리카 남서쪽을 침략한 스페인 정복자들은 원주민 주니(Zuni)족의 세상이 자기들이 바라보는 모습과 다르다는 점을 발견했다.

 

“각 씨족은 자연 세계와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바람·겨울·노란색은 북쪽 사람들에게 속했고, 물·봄·푸른색은 서쪽 사람들에게 속했다. 북쪽 사람들은 전쟁을 일으켰으나 서쪽 사람들은 평화를 유지했다. 마을 사람들이 자리를 함께할 때면 북쪽 사람들과 서쪽 사람들은 매와 비둘기처럼 서로 떨어져 앉았다. 주니족에게는 동서남북이라는 4개의 기본 방향 외에도 3개의 수직 방향이 있었다. 하늘과 땅, 그리고 그 사이에 있는 중간 영역이 바로 그것이다. 하늘에서는 세상의 모든 색깔들이 함께 소용돌이쳤다. 그 밑에 있는 땅은 검었다. 중간 영역에서는 모든 것이 모이고 하늘과 땅이 서로 만났다. 주니족은 동물, 자연 요소, 초자연적인 힘, 사회적 책임감, 가족, 종족의 구성원 등 우주에 있는 모든 것을 이 일곱 방향 중 한 곳에 배치했다.”(알렉스 라이트, <분류의 역사> 14쪽)

 

자기 자신을 둘러싼 모든 존재들을 일곱 방향으로 분류하는 주니족의 세계관은 아르헨티나 작가 보르헤스가 쓴 <존 윌킨스의 분석적 언어>의 특이한 분류법을 떠오르게 한다. 보르헤스는 우주를 40개 범주로 파악하려 시도했던 영국 왕립협회 창시자 존 윌킨스 주교의 이야기와 “은혜로운 지식의 하늘 창고”라는 중국 백과사전의 동물 분류법을 소개했다.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는 보르헤스의 분류법이 “기존의 친숙했던 사유 범주를 깡그리 허물어뜨리는 발상의 전환”이라며 그의 텍스트 <말과 사물>의 출발점에 인용했다.

 

“보르헤스의 텍스트에 인용된 ‘어떤 중국 백과사전’에는 ‘동물이 a)황제에 속하는 것, b)향기로운 것, c)길들여진 것, d)식용 젖먹이 돼지, e)인어(人魚), f)신화에 나오는 것, g)풀려나 싸대는 개, h)지금의 분류에 포함된 것, i)미친 듯이 나부대는 것, j)수없이 많은 것, k)아주 가느다란 낙타털 붓으로 그린 것, l)기타, m)방금 항아리를 깨뜨리는 것, n)멀리 파리처럼 보이는 것’으로 분류되어 있다는 것이다.”(미셀 푸코, <말과 사물> 7쪽)

 

유년의 보르헤스는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을 즐겨 읽었다. 보르헤스가 만약 식물에 대한 “어떤 중국 백과사전”을 집필했다면 식물들을 어떻게 분류했을까? 시력이 약해져 결국 실명하는 가족력을 갖고 있었던 보르헤스에게는 확대경이나 현미경과 같은 관찰 도구가 필요하지 않았을까? 끝내 실명의 저주를 피해가지 못했던 보르헤스에게 보여주고 싶은 사진집이 하나 있다. 1928년 독일 사진가 칼 블로스펠트가 발행한 식물도감 사진집 <예술의 원초적 형태들>이다. 보르헤스가 문자로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허물었다면, 칼 블로스펠트는 카메라로 식물 이미지의 고정관념을 해체시켰다. 칼 블로스펠트는 “식물은 완전히 예술적이고 건축학적인 구조로 평가돼야 한다”는 아버지의 신념을 사진으로 찍었다. 카메라는 그가 손수 제작한 것으로 피사체를 45배율까지 확대할 수 있었다. 사진들을 감상한 독일 문예비평가 발터 베냐민의 눈에는 식물의 세계가 인간의 세상으로 보였다.

 

1928년에 발행된 칼 블로스펠트의 &lt;예술의 원초적 형태들&gt;에 수록된 마늘꽃, 공작고사리 줄기, 호박 줄기, 투구꽃(왼쪽부터) 사진들이다. / Karl Blossfeldt

1928년에 발행된 칼 블로스펠트의 <예술의 원초적 형태들>에 수록된 마늘꽃, 공작고사리 줄기, 호박 줄기, 투구꽃(왼쪽부터) 사진들이다. / Karl Blossfeldt

꽃 순이 돋아나는 투구꽃 = 여성 댄서의 춤사위
 

달팽이처럼 돌돌 말린 고사리 = 가톨릭 성직자가 손에 든 주교 지팡이
 

돌부채의 꽃 = 대성당의 장미창
 

쇠뜨기 줄기 = 고대 그리스 건축물의 기둥

 

확대된 미시의 세계는 인간의 눈으로 파악할 수 없었던 또 다른 이미지들을 선사했다. 발터 베냐민은 이 사진들을 카메라가 일깨워준 시각적인 무의식의 세계라고 했다. 사진을 감상하며 정신분석학 용어를 빌려온 것이 흥미롭다. 베냐민의 생각을 이어가자면, 최초의 식물 확대 사진을 찍은 칼 블로스펠트는 예술적이고 건축학적인 구조가 잠복돼 있는 식물의 징후(symptom)들을 읽어낸 사진가였던 셈이다.
 

식물도감 같지 않은 책의 제목은 중요한 내용들을 함축하고 있다. 베냐민을 연구한 에스터 레슬리 정치미학 교수의 지적처럼 칼 블로스펠트의 <예술의 원초적 형태들>은 생물학자 에른스트 헤켈의 <자연의 예술적 형태들>(1899~1904)의 제목을 따르는 것 같다. 다른 점이 있다면 정교한 삽화가 사진으로 바뀌었다. 베냐민도 헤켈의 책을 알고 있는 듯 “예술에 앞서서 존재하는 밑그림이라는 의미에서 원초적 형태들이 아니라, 만들어져 있는 모든 것 속에서 처음부터 형태로 작용하고 있었다는 의미에서 원초적 형태들”이라고 <꽃들의 새로움>(1928)에 대한 글을 잡지 ‘문학 세계’에 기고했다.
 

에스터 레슬리는 생전 뛰어난 과학자로 불리기를 원했던 독일 대문호 괴테의 책 <식물 변태론>(1790)이 사진가에게 영감을 주었을 것이라 추측했다. 정원을 산책하다 우연히 발견한 기형 장미꽃 관찰에서 시작된 괴테의 식물론이다. 괴테는 수술과 암술이 있어야 할 장미꽃의 중심에 줄기가 올라와 있는 기형의 장미꽃 한 송이를 발견했다. 괴테의 섬세한 관찰은 또 다른 기이한 형태를 발견했는데, 꽃 중심에서 올라온 기형의 줄기에 작은 빨간색 꽃잎과 녹색 잎사귀가 붙어 있었다. 괴테는 잎이라는 형태가 결국에는 꽃과 뿌리와 줄기로 변형된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자연 속에 다양한 형태는 몇 가지 본질적이고 원초적인 형태들이 변태를 일으킨 결과물”이라는 것이 괴테의 식물론이다.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반에 외젠 아제가 촬영한 파리의 모습들이다. / Eugene Atget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반에 외젠 아제가 촬영한 파리의 모습들이다. / Eugene Atget

자연의 예술적이며 원초적인 형태를 촬영한 블로스펠트의 목적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제공하기 위한 것이었다. 동시대를 살았던 프랑스 사진가 외젠 아제(Eugene Atget·1857~1927)의 촬영 목적 또한 블로스펠트와 같았다. 하지만 그 둘의 사진은 실용적인 목적을 넘어섰다. 사진 자체가 미학적으로 훌륭했다. 개성이 다른 만큼 표현 방식은 달랐다. 아제가 남긴 사진들을 바라보는 지금의 관객들은 그의 사진들을 초현실주의로, 독일 사진가 블로스펠트의 사진은 신즉물주의로 분류한다.
 

신즉물주의를 따랐던 당대 사진가들은 감정을 배제한 냉철한 시선으로 사물들을 바라볼 것을 주장했다. 예리한 포커스와 강한 명암 대비로 물질적인 느낌을 현상하려 했다. 주교 지팡이처럼 붙들고 싶은 촉감이 느껴지는 고사리 줄기 사진을 위해 블로스펠트는 긴 노광 시간과 인화 시간을 할애했다. 파리의 새벽을 사랑했던 아제에게도 긴 노출 시간이 필요했다. 둘의 사진을 쉽게 설명하자면 이렇다. 블로스펠트의 사진은 <걸리버 여행기>에 등장하는 소인족 릴리푸트가 바라본 세계다. 아제의 사진은 밤새도록 범인을 찾아 헤매던 형사가 새벽녘에야 결정적인 단서를 발견했던 범죄의 장소들이다.
 

사진의 표현 방식과 분야는 달랐지만 두 사진가는 그들의 고객을 위해 다양한 메뉴를 작성하는 데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아제는 파리 도심의 후미진 구석구석을 사진에 담았고, 블로스펠트는 남들이 눈여겨보지 않았던 식물의 세부 목록을 메뉴에 담았다. 미술사가들은 한 분야의 사례들을 수집해 유형별로 분류하는 작업을 ‘유형학’(typology)적인 사진이라 한다. 의도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두 사진가는 그들만의 세계에서 유형들을 수집하고 분류해 하나의 원형을 추출하기 위한 사진 작업을 진행했다.
 

동시대를 살았던 열정적인 사진 수집가가 있다. 독일 사진가 아우구스트 잔더의 사진 유형학 분야는 인간이었다. 그는 자신이 태어난 지역인 쾰른 주위에서 다양한 직업, 사회적 계층과 계급을 보여줄 수 있는 원형들을 찾아 나섰다. <20세기의 사람들>이라는 타이틀을 내건 그의 백과사전식 작업 목록은 600여장의 인물사진이었다. 분류 방식은 북아메리카 원주민 주니족처럼 7가지 방향이었다. 농민, 장인, 예술가…. 하지만 독일 땅에는 우월한 아리안족의 초상들만 있다고 믿었던 나치는 아우구스트 잔더의 1929년 사진집 <시대의 얼굴> 사진 원판들을 압수해 파기했다. 나치는 자연생태론에 영향을 받은 잔더의 분류법을 폐기한 것이다.
 

보르헤스는 “인간은 임의적이지만 자신의 체계를 확립하는 일을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고 했다. 욕심 많은 사진가들도 자기 자신만의 체계로 정리한 사진 목록들을 촬영하는 일을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지난 9월 세상을 떠난 사진작가 로버트 프랭크가 60여년 전 미국을 사진에 담기 위해 작성한 촬영 목록을 살펴보자.

 

“밤이 내린 도시, 주차장, 슈퍼마켓, 고속도로, 자동차 세 대를 소유한 사람과 한 대도 소유하지 못한 사람, 농부와 그의 아이들, 새집과 기울어진 판잣집, 취향의 받아쓰기, 장엄한 꿈, 광고, 네온 불빛들, 지도자의 얼굴들, 그를 따르는 얼굴들, 가스탱크와 우체국들과 뒤뜰들….”(제프 다이어, <지속의 순간들> 18쪽)

 

1955년 구겐하임 재단의 지원으로 미국을 횡단하는 장거리 자동차 여행을 하며 로버트 프랭크는 700여통의 필름을 소진했다. 그리고 300여장의 원판을 인화한 사진들을 상징들, 자동차들, 표지판 등의 범주로 분류했다. 1959년 발행된 사진집 <미국인>들은 로버트 프랭크가 사진으로 만든 미국에 대한 백과사전이었던 것이다. 수전 손택의 말을 빌린다면 미국은 로버트 프랭크에게 “사진 찍히기 위해 존재하는” 세계였다.

 

김창길의 사진공책들

김창길의 사진공책들

2017년 봄부터 연재했던 ‘사진공책’ 기사 목록은 이번으로 30개를 넘겼다. 보르헤스식 유쾌한 분류법이나 미리 계획한 각본은 없었다.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사진들에게 그럴듯한 주석을 달며 짜깁기를 하니 종종 새로운 텍스트가 나오기도 했다. 주석의 참고인은 존 버거와 롤랑 바르트를 자주 소환했다. 그동안 썼던 공책의 목록들을 살펴봤다.
 

“중국의 탱크맨과 람보, 끝내 찍히지 못한 아메리칸드림, 혁명의 아이콘 체 게바라, 6월의 피에타 이한열, 바다에서 피어오른 혁명의 불씨 김주열, 한일협정을 반대하는 무언의 데모, 아우슈비츠라는 지옥에서 건진 4컷, 아부그라이브 교도소의 학대….”
 

하나의 사진 읽기가 끝나갈 때마다 또다시 읽어야 할 사진 목록이 떠올랐다. 가령, 아프리카 야생동물 사냥 인증사진을 다룬 “트로피 사냥 인증샷”에 대한 기사는 “전쟁 트로피 사진”이라는 다른 소재로 연결됐다. 하지만 지난 사진공책에 쓴 “체 게바라에게 보낸 편지”를 끝으로 다른 소재가 이어지지 않았다. 쉼표를 찍으라는 이야기라 생각했다. 한 단계 높은 안목을 길러야 했던 것이다.
 

지난 8월 그동안 썼던 사진공책에서 어떤 유형을 뽑아내 <사진공책, 가려진 세계의 징후들>이라는 한 권의 책으로 묶어주신 출판사 ‘들녘’에 감사의 말을 전한다. 글을 계속 써야 한다고 채근했던 편집주간님에게는 블로그(photonote.khan.kr)로 이어가겠다는 변명을 남긴다.
 

사진공책의 지면 연재를 이제 마친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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