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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재미로 입은 ‘핼러윈 코스튬’, 누군가에게 ‘낙인’이 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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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05   2018.11.01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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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핼러윈(Halloween)입니다. 핼러윈은 본디 어린이들이 귀신이나 유령 분장을 하고 사탕을 얻으러다니는 미국의 대표적인 축제였지만, 최근에는 성인들도 일상에서 벗어난 특이하고 재미있는 코스튬(캐릭터나 유명인을 따라하는 분장과 의상·Costume)을 뽐내는 전세계적인 축제로 자리잡았습니다. 한국에서도 매년 이맘때쯤이면 이태원이나 홍대 앞 등에 핼러윈 코스튬을 하고 파티를 즐기는 젊은이들이 많아졌습니다.
 

그러나 재미있는 핼러윈 코스튬이 누군가에게는 ‘낙인’이나 ‘불편’이 될 수도 있습니다. 최근 서구에서는 특정 인종, 성별, 직업을 비하하거나 신체적 특징·장애를 희화화하는 핼러윈 코스튬을 자제하자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모든 종류의 편견이 섞인 표현을 쓰지 말자는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PC)’에 대한 논의가 핼러윈 코스튬에도 적용된 것입니다. 지난 23일(현지시간) 미국 NBC의 유명 앵커 메긴 켈리(47)가 “핼러윈에 백인이 흑인 분장을 하는 것은 인종차별 문제가 아니다”라는 취지의 발언을 해 결국 자신의 이름을 건 방송에서 퇴출당하기도 했습니다. 켈리는 이 방송에서 각 기관과 단체가 금지령을 내린 핼러윈 코스튬에 대해 “‘정치적 올바름’이 지나치게 과한 규제를 가하고 있다”고 발언해 문제가 됐습니다.
 

정말 켈리의 말처럼 핼러윈 코스튬에 대한 규제가 지나친 것일까요? 우리나라에서도 “누군가를 불편하게 하는 핼러윈 코스튬은 결코 재미있지도, 쿨하지도 않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가운데, 핼러윈 코스튬과 ‘정치적 올바름’을 둘러싼 논의를 정리해봤습니다.

 

■“백인 아이가 ‘블랙팬서’ 코스튬을 하고 싶어해요. 어떻게 하죠?”
 

1900년 윌리엄 웨스트의 민스트럴쇼 포스터..

1900년 윌리엄 웨스트의 민스트럴쇼 포스터..

다른 인종의 신체적 특징을 흉내내는 코스튬은 특정 인종에 대한 그릇된 편견을 강화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영미권에서 강력하게 금기시 되고 있습니다.
 

메긴 켈리가 방송에서 퇴출된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백인인 그가 ‘블랙페이스(백인이 흑인 분장을 하는 것·blackface)’가 문제가 없다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블랙페이스는 노예 제도가 남아있던 19세기, 백인 배우가 얼굴을 검게 분장하고 흑인의 민요나 가곡을 노래하던 민스트럴쇼(Minstrel Show)에서 비롯된 것인데요. 이후 100년이 넘도록 백인 배우들은 태운 코르크, 구두약 등으로 얼굴을 칠하고 입술을 과장되게 표현한 채 흑인을 게으르고 무지한 존재로 희화화하는 공연을 계속했습니다. 다행히도 1960년대 이후 흑인 민권 운동이 본격적으로 전개되면서 블랙페이스는 문화적 금기로 자리잡아갔습니다.
 

한국에서는 개그맨 이봉원이 ‘시커먼스’라며 흑인 분장을 해 유명세를 떨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블랙페이스에 대한 문제의식이 공유되면서 얼굴을 검게 칠하는 방송인들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고 있습니다. 지난해 걸그룹 마마무가 단독콘서트에서 흑인인 브루노 마스를 흉내낸다며 얼굴을 검게 칠했다가 인종차별이라는 비판을 받고 공식 사과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영화 <블랙팬서> 마블 스튜디오 10주년 기념 히어로물 <블랙 팬서>의 한 장면.

영화 <블랙팬서> 마블 스튜디오 10주년 기념 히어로물 <블랙 팬서>의 한 장면.

그런데 최근 대중문화에서 유색인종 캐릭터의 활약이 두드러지면서, 핼러윈에서의 블랙페이스가 계속 금기로 남아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가 시작됐습니다. AP통신에 따르면 올해 핼러윈에는 흑인 히어로물 ‘블랙팬서’ 코스튬을 하고 싶어하는 백인 아이가 많아지면서 부모들의 고민이 깊어졌다고 합니다. 모든 인종의 아이가 흑인 영웅을 가질 수 있도록 격려해야 한다는 입장과, ‘블랙팬서’가 흑인이라는 점이 캐릭터의 정체성을 만든다는 것을 유념해야한다는 입장이 부딪치고 있는 상황입니다. 지난해에는 디즈니 애니메이션 ‘모아나’의 공식 코스튬 복장이 주인공 폴리네시아인의 피부색을 표현하기 위한 ‘갈색 바디수트’를 포함했다는 점에서 비슷한 논쟁을 촉발했습니다.
 

피부색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다른 민족·인종의 문화를 단순 코스튬으로 소비하는 것에 대한 문제제기도 꾸준히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핼러윈 코스튬으로 기모노를 입고 게이샤 분장을 하거나, 터번을 쓴 채 폭탄 모형을 들고 ‘테러리스트 아랍인’을 표현하는 것, 머리에 깃털을 꼽고 아메리칸 원주민을 흉내내는 것 등은 특정 문화권에 대한 잘못된 고정관념을 강화시키는 결과를 낳는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코스튬을 반대하기 위해 2011년 미국 오하이오 대학 학생들은 “우리는 문화다, 코스튬이 아니다”라는 캠페인을 전개하기도 했습니다.
 

2011년 미국 오하이오 대학 학생들이 전개한 ‘우리는 문화다, 코스튬이 아니다’ 캠페인 포스터

2011년 미국 오하이오 대학 학생들이 전개한 ‘우리는 문화다, 코스튬이 아니다’ 캠페인 포스터

2011년 미국 오하이오 대학 학생들이 전개한 ‘우리는 문화다, 코스튬이 아니다’ 캠페인 포스터

2011년 미국 오하이오 대학 학생들이 전개한 ‘우리는 문화다, 코스튬이 아니다’ 캠페인 포스터

■“간호사는 ‘섹시한’ 직업이 아닙니다”
 

지난해 페이스북 페이지 ‘간호학과, 간호사 대나무숲’에는 핼러윈에 등장한 선정적인 간호사 코스튬을 비판하는 글들이 연이어 올라왔습니다. 몸에 꽉 끼도록 변형한 간호사 유니폼에 망사스타킹, 가터벨트를 곁들이는 복장이 여성 간호사를 성적 대상으로 격하시키고 직업적 품위를 떨어뜨린다는 지적입니다. 이처럼 핼러윈 코스튬에서 간호사, 승무원, 경찰, 교사 등 특정 직업군을 성적 코스튬으로 소비하는 것을 지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여학생 교복을 변형한 코스튬 역시 미성년 여성에 대한 성적 대상화를 부추긴다는 비판에 직면했습니다.
 

직업 비하와 별개로 ‘섹시함’을 지나치게 강조한 여성 복장 자체에 대한 비판도 많습니다. 여성의 성적인 매력을 지나치게 강조한 핼러윈 코스튬이 여성을 동등한 인간이 아닌 단순한 성적 대상으로 격하시키고 전통적인 성역할을 강요하기 때문에 문제가 있다는 주장입니다.
 

마가렛 애트우드의 소설 ‘시녀이야기(the handmaid’s tale)’를 원작으로 한 미국 훌루(Hulu)의 10부작 드라마 ‘시녀이야기’ 일부

마가렛 애트우드의 소설 ‘시녀이야기(the handmaid’s tale)’를 원작으로 한 미국 훌루(Hulu)의 10부작 드라마 ‘시녀이야기’ 일부

온라인 쇼핑몰 ‘얀디’에서 판매하던 ‘용감한 붉은 처녀’ 코스튬

온라인 쇼핑몰 ‘얀디’에서 판매하던 ‘용감한 붉은 처녀’ 코스튬

지난 9월 미국에서는 코스튬 복장을 판매하는 온라인 쇼핑몰 ‘얀디’에서 ‘섹시한 시녀 의상’이 상품 목록에서 삭제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용감한 붉은 처녀’라는 상품명으로 판매된 이 의상은 마가렛 애트우드의 소설 ‘시녀이야기(the handmaid’s tale)’에 등장하는 붉은 망토 옷에서 따온 것입니다.
 

문제는 이 소설이 여성을 오직 자궁을 가진 생식 기관으로 취급하는 디스토피아를 그린 페미니즘 작품이라는 것입니다. 이 작품에서 붉은 망토는 ‘출산용으로만 관리되는 여성’인 ‘시녀’에게 강요되는 복장으로 여성에 대한 사회적 억압을 상징합니다. 그런데 얀디는 이 이야기를 차용해 망사 스타킹을 가미한 ‘섹시한 시녀 의상’을 만들어 판매한 것입니다. 작품의 의도를 훼손한 성차별 행위라는 지적이 빗발쳤습니다. 논란이 거세지자 얀디는 “해당 코스튬이 여성 권리 운동을 표현하고자 한 당초 제작 의도와 달리, 여성에 대한 억압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면서 “사이트에서 삭제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정신질환은 놀이기구도, 호러 영화도, 핼러윈 코스튬도 아니다”
 

31일 아마존에서 검색한 구속복 코스튬 복장

31일 아마존에서 검색한 구속복 코스튬 복장

‘정신병동 환자’ 핼러윈 코스튬 역시 문제가 됩니다. 이 코스튬은 정신질환자들을 자극시킬 뿐만 아니라, 정신질환에 대한 잘못된 고정관념을 부추기는 결과를 낳을 수 있습니다. 온라인 매체 버슬은 정신병동 환자 코스튬이 “‘정신질환자는 폭력 성향을 타고났거나 악령이 깃든 존재’라는 편견을 강화시키며 이러한 편견은 정신질환 치료을 막는 가장 강력한 장애물이 되고 있다”면서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비유를 담은 핼러윈 코스튬을 지양해야 한다”고 전했습니다.
 

UCLA 임상의 조 피에르 박사는 “정신질환은 놀이기구도, 호러 영화도, 핼러윈 코스튬도 아니다”라면서 “(핼러윈에) 어린아이들에게 (정신질환자에게 입히는) 구속복을 입히거나 본인이 착용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심리학 저널을 통해 밝히기도 했습니다. 2014년 미국 오스틴의 정신질환협회는 “구속복을 입은 ‘정신병 환자’ 코스튬은 몰이해에서 비롯한 낙인을 지속시킨다. 핼러윈에는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에 더욱 신경써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이밖에도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거나 낙인을 찍는 핼러윈 코스튬에 대한 반성과 지적은 끊임없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미국 ABC뉴스에 따르면 2016년 미 온타리오주의 한 프랑스어학교는 학부모들에게 자녀의 핼러윈 코스튬이 다른 사람들에게 불쾌감을 주는지 확인할 수 있는 체크리스트를 보냈습니다. 아이가 준비한 코스튬이 가상의 인물이거나, 신화 속 인물을 표현한 것이라면 괜찮지만 특정 문화에 대한 고정관념을 강화시키거나 자신과 다른 피부색을 표현해야 하는 복장이라면 지양해야 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 체크리스트에는 핼러윈을 맞아 소녀처럼 꾸미고자 하는 소년의 복장이 여성의 몸이나 특성을 모욕하는 것은 아닌지 확인해야 한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었습니다.
 

이후 이 체크리스트는 전 세계적으로 핼러윈 코스튬에 대한 다양한 논의를 일으켰다고 합니다. 이를 보도한 ABC뉴스는 “어쩌면 이러한 체크리스트는 성인에게도 필요할 것”이라며 “당신의 코스튬이 취약 계층을 모욕하지 않는지, 또 인종차별적·성차별적·동성애 혐오적이지는 않는지 등을 확인해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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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혜 기자 kim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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